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간 야구장에서, 경기가 끝난 뒤 펜스에 매달려 선수들을 향해 공책을 흔들던 기억이 있습니다. 끝내 사인은 받지 못했지만 그날의 간절함만은 아직 선명하죠.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보다가 그 펜스 앞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의 어린 주인공이 아픈 몸으로 동대구까지 내려가는 이유가 바로 그 사인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차승원이 12년 만에 코미디로 돌아온 가족 영화이고, 이 글은 후반의 반전과 결말을 적지 않았으니 관람 전이어도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힘을 내요 미스터 리 리뷰: 카리스마를 벗은 차승원차승원이라는 배우의 이력부터 짚고 갑니다. 마약 조직의 보스, 북한군 장교, 경찰을 갖고 노는 천재까지 — 카리스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얼..
몇 해 전 어느 봄, 휴대폰 달력이 알림을 띄웠습니다. 할머니 생신. 돌아가신 지 두 해가 지났는데 지우지 못한 알림이었죠. 한참을 들여다보다 그해에도 결국 지우지 못했습니다. 그 날짜를 지우는 일이 꼭 한 사람을 한 번 더 보내드리는 일 같아서요. 영화 생일은 그 지우지 못하는 날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생일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난 날이라는 뜻과, 남아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날들이라는 뜻 — 설경구와 전도연의 이 영화는 그 두 번째 뜻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생일 모임 장면은 이 글에 적지 않았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5점입니다.생일 영화 리뷰: 멈춰 있는 집해외에서 일하던 정일(설경구)이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그는 불청객입..
면허를 따고 처음 고속도로 진입로에 올라선 날을 기억합니다. 가속 차선에서 페달을 밟자 계기판 바늘이 낯선 영역으로 넘어가던 순간 — 무섭고, 시끄럽고,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죠. 시속 100킬로미터의 초보에게도 그랬으니 시속 300킬로미터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심장은 어떤 모양일까요. 포드 V 페라리는 그 심장을 두 시간 반 동안 관객의 가슴에 이식하는 영화입니다. 원본 리뷰어의 경고가 재밌습니다.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지만, 자동차를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관람을 재고하라고 — 너무 좋아서 미쳐버릴 수 있으니까. 맷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의 실화 드라마이고,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포드 V 페라리 리뷰: 자존심이 ..
새해 다이어리의 첫 장에 버킷리스트를 적던 시절이 있습니다. 오로라 보기, 마라톤 완주, 피아노 다시 배우기 — 해가 바뀌어도 목록은 그대로였고, 언젠가부터는 적는 것조차 그만뒀죠. 시간이 많다고 믿는 사람의 여유였을 겁니다. 퍼펙트맨은 그 목록 앞에서 정반대의 처지에 놓인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없는 남자와, 시간밖에 없는 남자. 설경구와 조진웅의 블랙코미디이고, 이 글은 결말을 적지 않았으니 관람 전이어도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5점입니다.퍼펙트맨 리뷰: 시간이 없는 남자, 시간밖에 없는 남자영기(조진웅)는 부산 바닥의 건달입니다. 주먹 하나로 굴러온 인생이지만 요령은 없어서 조직에서도 밀려나는 신세죠. 사고를 치고 법정에 선 그에게 내려진 판결은 집행유예와 사회봉..
고등학생 때 다리를 다쳐 한 달간 목발을 짚은 적이 있습니다. 그 한 달을 버티게 해준 건 목발이 아니라 짝꿍의 어깨였어요. 가방을 대신 메주고 계단에서 팔을 내주던 녀석 — 대신 저는 그 친구의 수학 숙제 전담이었죠. 서로의 부족한 칸을 채워주던 그 계약 같은 우정을, 나의 특별한 형제를 보며 내내 떠올렸습니다. 신하균과 이광수, 이솜이 나오는 실화 모티브의 드라마이고, 이 글은 결말 직전의 법정 장면까지만 다루니 관람 전이어도 괜찮습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5점입니다.나의 특별한 형제 리뷰: 서로의 몸과 머리오프닝부터 이 관계의 문법이 나옵니다. 은행에 온 두 남자. 서류를 써달라는 직원에게 못 쓴다고 답하는데, 동행이 대신 써도 된다는 안내에도 못 쓴답니다. 이 대화의 주어가 한 사람이 ..
DC 팬으로 산다는 건 오래 사귄 연인에게 반복적으로 서운해지는 일과 비슷합니다. 다크나이트의 기억으로 버티다가 개봉일마다 극장에 달려가고, 나오면서 변명거리를 찾는 것. 그래서 아쿠아맨은 아예 기대를 접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극장에 앉아 내내 든 생각은 하나였어요. 아니, DC가… DC 영화가 이럴 리가 없는데. 제임스 완 감독, 제이슨 모모아 주연의 이 물속 히어로물에 대한 반전 호평 리뷰이고, 줄거리 언급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5점입니다.아쿠아맨 리뷰: 기대를 접자 바다가 열렸다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됩니다. 육지에서 히어로 노릇을 하던 혼혈 왕자 아서(제이슨 모모아)가, 인간과의 전쟁을 선언한 아틀란티스의 왕이자 이복동생 옴(패트릭 윌슨)을 막기 위해 전설의 삼지창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