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투표를 하러 간 날을 기억합니다. 기표소 커튼을 닫고 도장을 꾹 눌러 찍던 몇 초 — 솔직히 그날의 저는 그 종이 한 장이 조금 귀찮기까지 했습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인 줄 알았으니까요. 영화 1987은 그 당연함의 영수증입니다.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강동원 — 쟁쟁한 배우들이 기꺼이 조각이 되어준 723만의 실화. 실존하는 분들의 이야기인 만큼 이 글은 담담하게 쓰려 합니다. 강동원 배우가 맡은 인물의 정체는 큰 스포일러라 본문에서는 접어두고 문답에서만 다루며,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1987 영화 리뷰: 서류 한 장으로 덮으려던 죽음1987년 1월 14일, 남영동의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의 대학생 박종철이 숨을 거둡..
누구에게나 전송 버튼을 누른 직후 심장이 내려앉은 기억이 하나쯤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친구 험담을 하필 그 친구에게 보낸 밤이었죠 — 전송 취소가 가능한 5초가 그렇게 길고 짧을 수가 없었습니다. 완벽한 타인은 그 5초의 공포를 두 시간으로 늘인 영화입니다. 극 중 대사처럼, 휴대폰은 인생의 블랙박스니까요. 유해진, 조진웅, 염정아, 이서진이 뭉쳐 529만 관객의 마음을 잠금 해제한 이 영화의 제작 비하인드를 감독 코멘터리 기반으로 총정리합니다. 결말과 반전까지 담았으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완벽한 타인 리뷰: 1,500만 원짜리 첫 장면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저녁 식사에 모인 오랜 친구들이 그날 밤 수신되는 모든 전화와 메시지를 ..
함께 일하던 동료가 갑작스레 회사를 떠난 뒤, 우리 팀은 그 빈 책상을 한동안 치우지 못했습니다. 머그컵과 달력이 그대로인 자리 — 치우자니 야박하고 두자니 아픈 그 책상 앞에서 우리는 꽤 오래 서성였죠.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그 서성임을 블록버스터의 규모로 겪어야 했던 영화입니다. 티찰라를 연기한 채드윅 보스먼이 2020년 우리 곁을 떠났고, 마블은 그 빈자리 앞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미리 분명히 해둡니다. 이 영화를 보스먼을 향한 추모로 받아들이고 눈물로 배웅한 관객들의 감상은 온전히 정당합니다. 이 글이 옮기는 혹평의 과녁은 이 영화의 정체성이나 재현이 아니라 각본과 완성도입니다. 결말과 쿠키까지 다루는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 원본 리뷰어의 명시 평점을 따라, 제 점수는 ..
학창 시절, 친구의 수학 숙제를 베끼다 들킨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한마디가 치명적이었죠. 답이 틀려서가 아니라 풀이 과정이 토씨 하나까지 같아서 걸린 거란다 — 베낄 거면 좀 바꿔서 베끼지. 조인성, 남주혁 주연의 안시성 리뷰를 쓰며 그 교무실의 공기가 떠올랐습니다. 544만 관객을 모은 이 사극을 향한 혹평의 핵심이 정확히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리 밝혀두면, 이 영화를 추석 오락물로 유쾌하게 즐긴 감상은 정당합니다. 이 글은 그와 별개로 완성도를 따지는 비평이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 역사적 결말이라 스포일러 걱정은 없습니다.안시성 리뷰: 칭찬은 선택과 집중, 그게 전부안시성은 88일간 당 태종의 20만 대군을 막아낸 고구려 안시성 전투의 실화를 그린 사극입니다. 원본 리뷰어의 너..
자가격리 2주를 겪어본 사람은 압니다. 집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그리고 상상력만 있다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거실이 헬스장이 되고 베란다가 카페가 되던 그 기억 때문에, 앤트맨과 와스프의 오프닝에서 저는 묘한 동질감으로 웃었습니다 — 가택연금 2년 차의 스캇 랭이 집 안에 골판지 미로를 짓고 드럼을 치며 버티는 풍경에서요. 폴 러드와 에반젤린 릴리의 이 유쾌한 마블 영화를 소개합니다. 결말은 적지 않았으니 관람 전이어도 괜찮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5점입니다.앤트맨과 와스프 리뷰: 가택연금 2년 차의 환영배경부터 정리합니다.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 어벤져스를 유엔 산하에 두려는 협정을 놓고 반대한 캡틴과 동의한 아이언맨 편으로 히어로들이 갈라져 싸웠고, 캡틴..
공룡 영화를 보면서 운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브라키오사우루스 한 마리 때문에.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은 어린 시절 공룡 백과의 화산 페이지를 통째로 실사화한 전반부와, 지하실 공포물로 쪼그라드는 후반부 사이에서 극과 극으로 갈리는 문제작입니다. 25년 치 애정을 가진 찐팬도 이 영화만큼은 완전한 편을 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결말 내용이 포함된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리뷰: 화산이 터지는 순간, 꿈의 장면이 완성됐습니다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쥬라기 월드 시리즈 2편의 연출은 콜린 트레보로우가 아닌 J.A. 바요나가 맡았습니다. 원래 1편 감독인 트레보로우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9의 연출직으로 옮겨가면서 생긴 공백이었습니다. 바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