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던 동료가 갑작스레 회사를 떠난 뒤, 우리 팀은 그 빈 책상을 한동안 치우지 못했습니다. 머그컵과 달력이 그대로인 자리 — 치우자니 야박하고 두자니 아픈 그 책상 앞에서 우리는 꽤 오래 서성였죠.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그 서성임을 블록버스터의 규모로 겪어야 했던 영화입니다. 티찰라를 연기한 채드윅 보스먼이 2020년 우리 곁을 떠났고, 마블은 그 빈자리 앞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미리 분명히 해둡니다. 이 영화를 보스먼을 향한 추모로 받아들이고 눈물로 배웅한 관객들의 감상은 온전히 정당합니다. 이 글이 옮기는 혹평의 과녁은 이 영화의 정체성이나 재현이 아니라 각본과 완성도입니다. 결말과 쿠키까지 다루는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 원본 리뷰어의 명시 평점을 따라,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3점입니다.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리뷰: 빈 왕좌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추모의 문장부터 옮깁니다. 우리가 보스먼을 잃고 슬퍼했던 것은 그가 남긴 작품들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보여줄 수 있었던 재능과 가능성 때문이었다는 것 — 그는 좋은 배우였고 멋진 배우였으며, 캡틴과 토니가 떠난 MCU의 차세대 리더처럼 보이던 사람이었다는 것. 혹평으로 악명 높은 이 리뷰 전체에서 가장 따뜻한 대목입니다. 영화의 출발도 그 애도를 닮았습니다. 원인 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티찰라, 오빠를 구하지 못한 슈리의 오열, 그리고 장례 행렬에서 이어지는 — 환호성 대신 침묵으로 채워진 — 마블 로고의 엄숙함. 리뷰어조차 가슴이 뭉클했다고 인정하는 도입부죠(출처: IMDb — Black Panther: Wakanda Forever).
이야기는 비브라늄에서 출발합니다. 와칸다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졌던 금속이 바다 밑에서도 발견되고, 미국의 탐사팀이 정체불명의 수중 종족에게 전멸당합니다. 그들의 정체는 탈로칸 — 음파로 정신을 홀리고 헬기를 맨손으로 끌어내리는, 세이렌의 전설을 닮은 해저 왕국입니다. 왕위를 이은 라몬다 여왕의 강경한 국제회의 연설을 두고 리뷰어는 뜻밖에 개연성을 옹호합니다. 시빌 워에서 남편 티차카 선왕을 잃은 와칸다로서는 그 엄중함이 당연하다는 것. 그리고 탈로칸의 왕이자 신이라 불리는 네이머가 나타나 요구합니다. 비브라늄 탐지기를 만든 천재를 넘기라 — 그 천재가 MIT의 열아홉 살 공대생 리리 윌리엄스입니다. 리리를 데리러 간 슈리와 오코예는 탈로칸의 습격에 슈리와 리리를 빼앗기고, 네이머는 포로인 슈리에게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스페인 침략기의 마야 문명에서 역병을 피해 푸른 약초를 먹고 바다의 종족이 된 사람들 — 정글의 민족이 해저의 왕국을 세운 이 기원 설정을 리뷰어는 인상적이라 호평하죠.
그러나 구출 과정의 희생이 전쟁의 방아쇠가 됩니다. 와칸다를 덮친 첫 공격에서 라몬다 여왕은 리리를 구하고 대신 목숨을 잃고, 홀로 남은 슈리는 네이머의 팔찌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하트 허브를 재현해 새로운 블랙팬서로 다시 태어납니다. 선조들의 세계에서 그녀를 맞이한 이가 오빠도 어머니도 아닌 사촌 에릭 킬몽거였다는 것은 리뷰어가 이 영화의 몇 안 되는 재미로 꼽는 설정 — 전통에 반해 살아온 슈리라는 인물의 정체를 비추는 거울이니까요. 전쟁, 마지막 순간 복수 대신 자비를 택하는 슈리, 동맹, 그리고 엔딩의 폭로 — 티찰라와 나키아 사이에 아들 투생이 있었다는 — 까지가 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혹평 이유: 장면은 그럴듯한데, 연결하면 구멍
혹평의 뼈대는 한 문장입니다. 장면 하나하나는 그럴듯한데 연결해서 보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것. 라몬다 여왕의 최후가 대표 사례로 해부됩니다. 그 장면 자체는 숭고하고 배우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그런데 연결해 보면 애초에 리리가 와칸다에 있는 이유부터 억지입니다. 학교 잘 다니던 학생을 일에 휘말리게 한 것이 와칸다이고 그 명령자가 라몬다이며, 딸이 잡혀 있다는 이유로 상대의 말을 들어볼 외교적 시도 하나 없이 구출 작전부터 감행해 전쟁의 빌미를 준 것도 와칸다죠. 싸울 이유가 없는 두 문명을 각본이 억지로 싸움 붙이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리리 윌리엄스 비판은 더 신랄합니다. 시빌 워가 티찰라와 피터 파커라는 두 신인을 등장 몇 분 만에 서사와 고뇌까지 입혀 데뷔시킨 것과 달리, 리리에게는 아무런 서사도 갈등도 행동 원리도 주어지지 않은 채 이야기에 끌려다니기만 한다는 것. 그리고 더 뼈아픈 지적은 윤리의 공백입니다. 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온 열아홉 학생이 전쟁터에 투입되자마자 거리낌 없이 사람을 향해 무기를 쏘아대는데, 영화는 그 살상의 무게에 대해 아무 고민도 시키지 않습니다. 자신이 만든 무기의 결과에 충격받아 군수산업을 접었던 토니 스타크의 각성과 정확히 반대 방향 — 아이언맨의 후계자라는 캐릭터를 이렇게 다뤄도 되느냐는 것이죠. 반면 전쟁을 선포한 당사자인 슈리는 정작 마지막에 손을 더럽히지 않는 비대칭까지. 물론 그 자비는 오빠의 유지를 잇는 장면으로 설계된 것이지만 — 역시, 장면만 보면 괜찮고 연결하면 구멍입니다.
네이머에 대한 평가는 양가적입니다. 히어로 코믹스 역사상 최초로 하늘을 난 유서 깊은 안티히어로이고 마야 문명 기원의 재해석도 좋았으나, 연출이 그의 '헐크급' 위력을 끝내 납득시키지 못한다는 것 — 과시할 상대가 헬기와 전투기뿐이고 발목의 날개는 위협적이기보다 앙증맞다는 촌평입니다. 최종 전투는 혹평의 정점입니다. 세계 최강국이라던 와칸다의 초라한 병력, 전술 없는 백병전, 전반부의 불사신 같던 탈로칸 병사들이 후반엔 평범하게 쓰러지는 설정 증발, 그리고 슈리와 네이머가 함께 날아오르며 싸움을 멈추라 외치자 양군이 거짓말처럼 전쟁을 끝내는 결말 —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왔다는 것. 여기에 리뷰어가 1편부터 유지해온 세계관 질문이 겹칩니다. 초과학 문명을 자처하면서 왕위는 일대일 결투로 가리고 전장에선 창칼을 드는 설정 — 전통이라는 이름의 이 전근대적 묘사가 과연 이 세계관이 기리고자 하는 공동체에 대한 예우인가, 오히려 실례가 아닌가 하는 재현 윤리의 질문입니다. 슈리의 블랙팬서에 대한 평가도 조심스럽지만 분명합니다. 문제는 배우가 아니라 연출이라는 것 — 오빠의 수트와 다른 고유 기능도, 슈리만의 시그니처 무브도 설계하지 않아 1편의 액션과 비교하면 허전함이 두드러진다는 것. 리뷰어는 여기서도 선을 긋습니다. 같은 영화의 오코예와 도라 밀라제는 충분히 강인해 보였다고 — 이것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슈리라는 캐릭터 연출의 문제라고요.
숭고한 장면들과 허술한 연결, 매력적인 설정들과 증발하는 규칙 — 이 영화의 3점은 조각이 아니라 조립에 매겨진 점수입니다.
추모와 영화 사이: 평가의 방식에 대한 질문
이 리뷰의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영화 바깥을 겨눕니다. 이 영화를 둘러싼 상찬의 상당수가 완성도가 아니라 '누가 중심에 서 있는가'를 근거로 삼는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죠. 리뷰어의 선긋기를 그대로 옮깁니다.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도 흑인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도 좋고 오히려 환영하며, 자신은 여성의 시선이 영화계에 얼마나 필요한지 자주 말해온 사람이라고 — 정체성의 진전은 격려하고 칭찬할 일이지만, 그것이 서사의 구멍과 액션의 빈곤까지 덮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히어로 영화의 평가 기준은 히어로 영화의 완성도여야 한다는 원칙론입니다. 이 원칙에 동의하든 않든, 이 리뷰의 3점이 그 위에 서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균형을 위해 반대편을 적습니다. 이 영화가 수행한 애도의 무게는 실재합니다. 보스먼의 흔적을 CG로 재현하는 대신 부재 자체를 이야기로 삼은 선택, 쿠키에서 다음 세대로 추모를 잇는 마무리는 많은 관객에게 위로였고 — 라몬다를 연기한 안젤라 바셋은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를 수상하고 MCU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연기 부문 후보에 오르며 그 감정의 진실함을 공인받았습니다. 탈로칸의 수중 미학과 의상·음악의 성취도 분명하고요. 추모와 영화 사이 — 이 작품의 자리는 그 사이 어딘가일 것이고,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점수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리뷰어의 저울은 영화 쪽으로 기울었고, 그 자리에서의 3점입니다. 제 점수도 그 기준을 따라 3점으로 적되 — 추모의 저울로 이 영화를 안아준 관객들의 눈물까지 틀렸다고 말하는 숫자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둡니다.
덧붙이는 물음 둘
Q. 쿠키 영상이 있나요?
A. 크레딧 중간에 하나 있습니다. 해변에서 슈리가 나키아의 아들 — 티찰라의 아이, 투생 — 을 만나는 장면으로, 소년의 또 다른 이름이 티찰라라는 것이 밝혀지며 추모가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이 영화의 쿠키는 떡밥이라기보다 애도의 마침표에 가까우니, 본편의 평가와 무관하게 끝까지 자리를 지킬 가치가 있습니다.
Q. 혹평이 이렇게 많은데, 그래도 볼 이유가 있을까요?
A. 있습니다 — 추모의 기록으로서요. 전편을 사랑했거나 채드윅 보스먼이라는 배우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장례식 오프닝과 침묵의 마블 로고, 그리고 마지막 쿠키만으로도 이 영화는 한 번 볼 이유가 됩니다. 보스먼이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 경기장에서 아이에게 가면을 선물하던 그 일화들 — 는 이 블로그의 인피니티 워 리뷰에 적어두었으니, 함께 읽으시면 이 영화의 애도가 더 깊게 다가올 겁니다.
빈자리를 기리는 법
그 빈 책상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가 끝내 배운 것은, 빈자리를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리를 어설프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더 잘 해내는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와칸다 포에버가 아픈 것은 추모가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그 추모를 받치는 영화의 기둥들이 흔들려서죠. 떠난 왕의 이름에 값하는 다음 이야기를 이 시리즈는 아직 빚지고 있고 — 그 빚을 갚는 날, 와칸다 포에버라는 구호는 비로소 완성될 겁니다. 채드윅 보스먼 배우의 명복을, 이 글의 마지막 줄에서 다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