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친구의 수학 숙제를 베끼다 들킨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한마디가 치명적이었죠. 답이 틀려서가 아니라 풀이 과정이 토씨 하나까지 같아서 걸린 거란다 — 베낄 거면 좀 바꿔서 베끼지. 조인성, 남주혁 주연의 안시성 리뷰를 쓰며 그 교무실의 공기가 떠올랐습니다. 544만 관객을 모은 이 사극을 향한 혹평의 핵심이 정확히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리 밝혀두면, 이 영화를 추석 오락물로 유쾌하게 즐긴 감상은 정당합니다. 이 글은 그와 별개로 완성도를 따지는 비평이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 역사적 결말이라 스포일러 걱정은 없습니다.
안시성 리뷰: 칭찬은 선택과 집중, 그게 전부
안시성은 88일간 당 태종의 20만 대군을 막아낸 고구려 안시성 전투의 실화를 그린 사극입니다. 원본 리뷰어의 너스레처럼 스포일러라 할 게 없는 영화죠. 양만춘 장군이 안시성에서 당나라 대군을 막아낸다는 결말은 역사적 사실이니까요. 544만 관객을 모으며 그해 추석 극장가의 승자가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인정할 미덕도 분명합니다. 이것저것 쑤셔 넣다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 되곤 했던 추석 대작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액션 하나만 정해 죽어라 팠다는 선택과 집중. 화면 곳곳에서 수많은 엑스트라와 스태프들의 피땀이 느껴진다는 노고의 인정까지. 그런데 리뷰의 다음 문장이 서늘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에 해줄 수 있는 칭찬은 이게 전부라고. 그리고 열심히 한 것은 내세울 일이 아니라고 — 세상 사람 누구나 열심히 살며, 그 노고는 이미 관객 수로 충분히 보상받았을 거라고요.
본격적인 비판은 "한국 사극 사상 최고의 액션신"이라는 세간의 상찬을 반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영화와 액션신은 애당초 분리될 수 없다는 것 — 액션만 보러 영화관에 가는 사람은 없으며, 영화를 봤는데 액션신만 멋있었다는 평은 피자를 먹었는데 밀가루 맛이 좋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비유죠. 아저씨의 액션이 멋진 진짜 이유는 장면의 독창성만이 아니라 단순하고 힘 있는 서사, 그리고 인물의 감정과 클라이맥스가 액션과 함께 터졌기 때문 — 액션을 잘 찍는 것보다 관객을 그 액션에 몰입시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원칙론입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안시성의 액션은 열심히 찍었다는 느낌만 줄 뿐 감흥이 일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다음 섹션의 본론입니다.
혹평 이유: 베끼는 것도 제대로 못했다
리뷰어의 표현을 빌리면 이 영화의 액션은 잡탕 부대찌개입니다. 할리우드 공성전 영화들의 명장면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어 장면마다 원본이 떠오른다는 것. 사례 분석이 집요합니다. 설현이 처음 등장하는 침실 시퀀스는 아마겟돈의 그 유명한 장면 — 브루스 윌리스가 벤 애플렉의 방에 들이닥치는 — 의 구조를 그대로 옮겼는데, 문제는 원본의 기능까지는 옮기지 못했다는 분석입니다. 마이클 베이의 그 장면은 정신없는 소동 속에 주인공 부녀와 사윗감의 성격과 관계를 전부 압축해 전달하는 반면, 안시성의 해당 장면은 그때까지 진중하게 그려지던 양만춘이 갑자기 제 성깔을 못 이겨 부하에게 활을 쏘는 — 캐릭터의 일관성만 무너뜨리는 — 장면이 됐다는 것. 관객이 얻는 정보라곤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사실뿐인데 그건 멜로 연기 한 컷이면 해결될 일이고, 덤으로 조선 이전엔 쓰이지 않던 "오빠"라는 호칭의 고증 문제까지 짚습니다.
고구려 무사들이 싸울 때마다 걸리는 슬로모션은 300의 냄새가 짙은데, 300은 무려 12년 전 영화 — 유행을 12년 지나 따라 하면 촌스럽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 공성 병기와 몇몇 장면은 킹덤 오브 헤븐에서 프레임 단위로 겹쳐 변명의 여지가 없는 수준이고, 가면을 쓴 당나라 정예 부대는 300의 이모탈을 닮았는데 — 원본의 가면이 야습 부대의 은신과 공포 조성이라는 기능을 가졌던 것과 달리, 대낮에 움직이는 이 육군의 가면은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 아무 기능이 없습니다. 요컨대 베끼는 것조차 제대로 못 했다는 거죠.
전쟁 영화는 다 비슷하지 않느냐는 반론도 미리 차단합니다. 300의 장면은 트로이에 등장하지 않고, 트로이의 장면은 킹덤 오브 헤븐에 없다 — 그런데 안시성에는 그 영화들의 장면이 모조리 등장한다는 것. 창작자가 남의 것을 가져다 쓰는 문제는 돈이나 규모가 아니라 자존심과 양심의 문제라는 일갈로 액션 비판은 닫힙니다.
참고한 것과 옮겨 적은 것의 차이 — 이 리뷰가 안시성의 액션에 들이대는 잣대는 그 한 줄입니다.
사극 액션의 함정: 액션 뒤에 영화가 없었다
스토리텔링으로 넘어가면 진단은 더 혹독해집니다. 출발점부터 상식이 흔들린다는 것. 연개소문이 사물(남주혁)에게 안시성으로 가 양만춘을 죽이라 명하는 설정은 — 역사에 없는 창작이야 그렇다 쳐도 — 당나라 대군이 쳐들어오는 마당에 최전방에서 싸울 아군 장수를 암살하는 것이 누구에게 무슨 이득이냐는 질문 앞에 무너집니다. 긴장감을 위해 심은 첩자 설정은 정작 긴장을 만들지 못합니다. 양만춘의 사람됨에 사물이 흔들리는 과정이 초반에 다 보여서, 관객 모두가 그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것을 아는 채로 영화를 보게 되기 때문이죠.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아련한 눈빛 연출에 대한 지적도 있는데, 이렇게 옮기겠습니다 —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로 관객을 낚는 연출은 게으르다는 것, 그리고 그 시선을 차라리 사물의 눈으로 양만춘이라는 인물을 탐구하는 창으로 썼어야 했는데 영화는 그 기능조차 해내지 못한다는 것.
기능 없는 장면들의 목록은 깁니다. 어차피 한마음으로 싸울 두 부관의 으르렁 설정, 웃기지 않는 개그, 그리고 완벽하게 불필요한 러브라인과 상투적인 사망 플래그 대사까지. 진짜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연인을 잃은 설현이 홀로 적진을 가로질러 당 태종을 저격하는 장면 — 리뷰어가 한국 사극 사상 최고의 무리수로 꼽는 대목입니다. 이 장면이 성립하려면 20만 대군이 침투자 한 명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대전제가 필요한데, 그 순간 20만을 이끌고 온 황제는 병사 한 명의 기습에 죽을 뻔한 인물이 되어버리고 — 그런 상대에게 죽을 각오로 맞서 싸우는 고구려인들의 격까지 함께 깎입니다. 한 장면의 욕심이 영화 전체의 토대를 흔든 셈이죠. 신녀 캐릭터는 이 영화의 캐릭터 소비 방식을 요약합니다. 소개도 서사도 없이 국보를 사유물처럼 들고 다니고, 행동의 동기가 설명되지 않으며, 존재 가치가 양만춘의 손에 신물을 쥐여주는 전달자 역할로 소진되고, 퇴장마저 기능으로 소비되는 인물. 리뷰어의 원칙론이 여기서 나옵니다 — 좋은 영화일수록 캐릭터가 기능적으로만 소비되는 일이 없고, 기능으로 쓰이고 버려지는 캐릭터가 많을수록 그 영화는 무너져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곁가지의 대가로 정작 주인공이 실종됩니다. 이 영화의 양만춘은 "조인성의 얼굴을 한 착한 사람"일 뿐 매력적인 인물이 되지 못하는데, 그것은 배우의 죄가 아니라 — 흥행을 위해 이것도 저것도 넣어야 했던 각본이 배우에게 연기할 공간을 주지 않은 탓이라는 진단입니다. 본전을 뽑겠다는 욕심이 영화의 질을 떨어뜨린 역설. 균형을 위해 반대편도 적습니다. 544만 관객의 선택은 실재했고, 토산 전투를 비롯한 물량의 공성전을 큰 화면으로 즐기는 극장값의 재미도 분명 있습니다. 머리를 비우고 보는 추석 오락물로 이 영화를 즐긴 감상은 정당합니다. 다만 이 리뷰가 던지는 질문은 유효하죠. 우리는 언제까지 '열심히 찍었다'와 '잘 만들었다'를 혼동할 것인가. 점수는 4점입니다.
복습 겸 세 문답
Q. 실제 안시성 전투는 어떤 싸움이었나요?
A. 645년 고구려-당 전쟁에서 당 태종의 대군이 안시성을 88일간 공격하고도 끝내 함락하지 못하고 물러난, 기록에 남은 실제 전투입니다. 당군이 성벽보다 높은 토산을 쌓았다가 고구려군에게 빼앗긴 토산 공방전도 역사 그대로고요. 흥미로운 점 하나 — 당시 안시성주의 이름은 정사에 전해지지 않고,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후대 문헌들에서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를 계기로 기록과 전승의 차이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Q. 혹평이 많은데, 그래도 볼 만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A. 서사보다 물량을 즐기는 분들입니다. 한국 사극에서 보기 드문 규모의 공성전 장면들은 — 기시감의 문제와 별개로 — 큰 화면에서 눈이 즐거운 것이 사실이고, 544만 관객 다수가 그 재미로 극장을 찾았습니다. 명절에 가족과 머리 비우고 보는 용도라면 제 몫을 하는 영화입니다. 반대로 이야기와 인물의 밀도를 중시하는 분이라면, 이 글의 혹평 지점들이 두 시간 내내 눈에 밟힐 겁니다.
Q. 제대로 된 공성전 영화를 보고 싶다면요?
A. 원본 리뷰어의 추천을 그대로 전합니다.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 — 단, 반드시 감독판으로 보세요. 극장판에서 잘려나간 서사가 복원된 감독판은 중세 공성전 영화의 교과서로 꼽히는 작품이고, 공교롭게도 안시성의 몇몇 장면이 어디서 왔는지 확인하는 답안지 역할까지 해줍니다. 고증에 목숨을 건 영화가 주는 밀도가 무엇인지 체감하실 수 있습니다.
내 손으로 푼 문제
그 교무실의 기억으로 돌아갑니다. 베낄 거면 바꿔서 베끼라던 선생님 말씀은 사실 반쪽짜리 교훈이었습니다. 진짜 교훈은 그다음에 있었으니까요 — 남의 풀이를 아무리 매끄럽게 옮겨도, 시험장에서 내 것이 되어 있는 건 결국 내 손으로 푼 문제뿐이라는 것.
한국 사극의 물량과 기술이 이만큼 올라왔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레퍼런스가 아니라 자기 풀이의 용기일 겁니다. 88일을 버텨낸 안시성의 사람들처럼 — 남의 성벽이 아니라 자기 성벽으로요. 그 성벽을 쌓은 한국 사극을 다음 명절엔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