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전야를 보고 온 밤, 저는 신년 운세 상담소를 차렸습니다. 새해 카운트다운으로 끝나는 4쌍 커플 옴니버스 로맨스이니, 네 커플을 손님으로 앉혀 운세를 풀이하는 형식이 어울릴 테니까요. 미리 고지하면 이 상담소의 최종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 커플들의 운세는 길하지만 영화의 사주가 문제였습니다. 이 글에는 네 커플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새해전야 영화 리뷰: 신년 운세 상담소를 엽니다첫 번째 손님, 도피운의 진아(이연희). 연애 6년 차에 스키장 비정규직인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습니다. 같이 부은 적금의 제 지분만 챙겨 쿨하게 사라지는 전 남친. 오기와 충동에 휩싸인 진아는 "여기서 제일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한 장 주세요"를 외치고 적금을 몽땅 들고 아르헨..
강릉을 보고 온 밤, 저는 이 영화를 등기부 등본처럼 열람하기로 했습니다. 아름다운 올림픽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 잔혹극의 본질이, 결국 리조트 한 채의 소유권 이전 내역이기 때문입니다. 유오성과 장혁이 맞붙는 청소년 관람불가 범죄 누아르이며, 이 글에는 결말을 포함한 치명적 스포일러가 있으니 열람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강릉 영화 리뷰: 리조트 등기부를 열람하다표제부, 물건의 표시. 강릉 최대 조직이 최대주주로 올라 있는 대형 리조트. 관리인은 조직의 이인자 길석(유오성)입니다. 부하의 결혼을 제 일처럼 챙기고, 경찰 친구 방연과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며 공생하고, 조직 안의 분쟁은 조용히 안에서 정리하려는, 낡은 방식의 의리로 살아온 남자입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갑구 1번, 불길한..
주말 밤, 제 방을 옛날식 동시상영관으로 개조했습니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떡밥 천국 미스터리 2본 동시상영 —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보는 여자의 이야기 '내일의 기억'과, 자고 일어났더니 인생이 뒤바뀐 남자의 이야기 '사라진 시간'입니다. 두 편 모두 결말은 철저히 함구하는 스포일러 없는 프로그램이니, 관람 전이신 분도 안심하고 입장하셔도 됩니다.미스터리 영화 추천 2편: 동시상영관 프로그램을 엽니다두 작품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묶는 열쇳말은 떡밥, 그러니까 이야기 곳곳에 던져둔 복선을 나중에 회수하는 재미입니다. 미스터리 장르의 만족도는 결국 이 회수의 설계에 달려 있는데, 오늘의 두 편은 그 설계 방식이 정반대라서 나란히 보면 더 재밌습니다. 1부 내일의 기억이 "범인은 누구인가"를 쫓는 정통 반..
여기부터 본문을 작성하세요.자산어보를 보고 온 밤, 저는 정약전의 방식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그가 흑산 바다의 물고기를 관찰해 어보(魚譜) — 물고기의 생김새와 성질, 쓰임을 기록한 도감 — 를 썼듯, 이 영화를 한 종의 어류로 놓고 항목별로 기록하는 겁니다. 결론부터 적으면 등급은 10점 만점에 7점, 이준익 감독의 또 하나의 수작입니다.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자산어보 리뷰: 이 영화를 어보(魚譜)로 기록하다항목 1, 명칭과 서식지. 속명 자산어보, 서식지는 상업 영화의 바다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수역입니다. 스스로를 상업영화 감독으로 규정해온 이준익 감독이, 이번엔 상업적으로 가장 피하고 싶은 것들만 골라 담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그 유명한 정약용이..
킬러의 보디가드 2를 보고 나서, 저는 주인공 마이클 브라이스가 그토록 집착하는 '트리플 A 등급' 심사를 이 영화 자체에 적용해보기로 했습니다. 결론부터 공지하면 재심사 반려, 10점 만점에 5점입니다. 다만 이 심사에는 중요한 단서가 붙습니다. 데드풀식 코미디를 사랑하는 분에게는 전혀 다른 등급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이 글에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킬러의 보디가드 2 리뷰: 트리플 A 등급 심사 보고서심사 기준부터 공개합니다. 후속작 징크스라는 말이 있지만, 전작을 완벽히 넘어선 예외도 분명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터미네이터 2입니다. 기술은 발전시키고, 전작의 서사와 세계관은 확장하고, 전작의 빌런을 아군으로 돌리는 대신 그를 능가하는 카리스마의 새 빌런을 세우고, 기계의 인간..
서복을 보고 온 밤, 저는 관람 수면 일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이 영화가 잠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잠이고, 실험체 서복은 태어나 한 번도 잠들어 본 적이 없으며, 시한부 기헌은 그 잠을 피하려 발버둥 치는 인물이니까요. 문제는 정작 잠든 게 관객이었다는 것. 순제작비 164억, 극장과 OTT 동시 공개작인 이 기대작이 왜 저의 각성도를 무너뜨렸는지, 치명적 스포일러와 함께 기록합니다.서복 리뷰: 관람 수면 일지를 공개합니다관람 전 각성도 100퍼센트. 공유와 박보검이라는 조합, 개봉 전부터 올해의 기대작으로 꼽히던 한국 SF였습니다. 이야기의 뼈대는 예상 범위였습니다. 뇌종양으로 시한부가 된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에게 안 부장(조우진)이 제안합니다. 한 인물을 안전하게 이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