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전야를 보고 온 밤, 저는 신년 운세 상담소를 차렸습니다. 새해 카운트다운으로 끝나는 4쌍 커플 옴니버스 로맨스이니, 네 커플을 손님으로 앉혀 운세를 풀이하는 형식이 어울릴 테니까요. 미리 고지하면 이 상담소의 최종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 커플들의 운세는 길하지만 영화의 사주가 문제였습니다. 이 글에는 네 커플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새해전야 영화 리뷰: 신년 운세 상담소를 엽니다
첫 번째 손님, 도피운의 진아(이연희). 연애 6년 차에 스키장 비정규직인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습니다. 같이 부은 적금의 제 지분만 챙겨 쿨하게 사라지는 전 남친. 오기와 충동에 휩싸인 진아는 "여기서 제일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한 장 주세요"를 외치고 적금을 몽땅 들고 아르헨티나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연말이라 호텔은 만실, 말도 안 통하는 이국의 첫 밤을 로비 소파에서 보내는 대책 없는 도피죠. 그런 그녀 곁에 물과 빵값까지 칼같이 계산하던 와이너리 배달원 재헌(유태오)이 미안함 반 잔돈 핑계 반으로 다가옵니다. 활기 넘치는 시장 구경, 말은 안 통해도 꼭 사야 할 것 같던 마법의 드레스, 폭포 앞에서 속에 쌓인 말을 다 쏟아내며 전 남친의 추억을 날려버리는 의식, 그리고 마지막 밤의 탱고와 "우리 조금만 더 행복해져요"라는 수줍은 인사까지. 직장 번아웃으로 아르헨티나에 온 남자와 사랑에서 도망쳐 온 여자의 만남은 이 영화에서 화면이 가장 예쁜 챕터입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두 번째 손님, 재회운의 지호(김강우)와 효영(유인나). 이혼 4년 차에 강력반에서 민원실로 밀려난 형사와, 이혼 소송 중 전남편의 위협 때문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재활 트레이너입니다. "표정 변화 없이 너무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베테랑의 촉, 그리고 같은 이혼 경험자로서의 공감이 까칠했던 두 사람을 서서히 가깝게 만듭니다. 신변보호가 끝나기 무섭게 전남편이 그녀의 집을 태연히 활보하는 위기의 순간 긴급 사건을 제쳐두고 달려가는 지호, 그리고 새해에 강력반으로 찾아와 "이번엔 제가 보호해주고 싶어서요, 재활 트레이닝 해드릴게요"라고 역제안하는 효영. 보호하고 보호받는 관계가 뒤집히는 이 대사가 두 번째 커플의 운세 풀이입니다.
요약: 아르헨티나로 도망친 진아와 번아웃의 재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 지호와 효영 — 앞 두 커플의 운세는 도피에서 시작해 회복으로 흐릅니다.
4쌍 커플 정리: 도피운, 재회운, 재물운, 재기운
세 번째 손님, 재물운 대흉의 용찬(이동휘)과 야오린. 여행사 사장 용찬과 중국인 신부 야오린의 국제결혼은 원격 상견례와 지참금 문화 차이, 올케를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한식을 차렸지만 입에 맞지 않아 쓸쓸해지는 누나 용미의 사연까지 잔걱정이 많은데, 진짜 시련은 따로 옵니다. 결혼 자금을 노린 사기 전화에 계좌가 텅 비고, 대출도 막히고, 여행사까지 내놓게 된 용찬. 혼자 끙끙 숨기던 사정은 똑같은 핸드폰 케이스 탓에 폰이 뒤바뀌며 들통나고, 상의 없이 숨긴 것에 서운함이 폭발한 야오린은 결혼을 다시 생각하겠다며 손을 뿌리칩니다.
네 번째 손님, 재기운의 래환과 오월. 영화의 오프닝, 평창 스노보드 월드컵 결승선에서 반지 세리머니 뺨치는 프러포즈로 시작한 이 커플은 가장 단단해 보였지만, 좋은 성적 후 생긴 에이전시의 화보와 인터뷰가 온통 래환이 가진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금이 갑니다. "누군가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자꾸만 못나지는 기분, 의도치 않게 연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 래환은 결국 계약 해지를 요청하며 말합니다. 오월이를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아보겠다고, 이번엔 정말 내 다리로 서고 싶다고.
네 손님의 새해 운세 결과를 상담 차트로 정리합니다.
진아 × 재헌 — 탱고의 밤과 생일 선물의 여운을 안고 각자의 자리로, 재회를 암시하는 귀국 엔딩
지호 × 효영 — 보호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새 사랑, 이번엔 그녀가 그를 보호할 차례
용찬 × 야오린 — 진심 어린 사과 편지가 마음을 돌려 결혼 카운트다운 재개
래환 × 오월 — "출발할 때마다 결승선에서 기다려줄게"라는 목소리와 함께 오해 해소
요약: 사기의 재물운도, 프레임의 시련도 결국 전원 해피엔딩 — 네 커플의 새해 운세는 모두 길한 괘로 마감됩니다.
혹평 이유: 제목값을 못 하는 사주
이제 영화 자체의 사주 풀이, 혹평의 이유입니다. 관상부터 보자면, 이 커플의 사연 위에 저 커플의 사연을 겹치고 투닥거리는 갈등을 쌓다가 한순간 오해가 풀리며 급속히 가까워지는 전개는, 이제껏 무수히 봐온 로맨스 영화 클리셰 — 오랫동안 반복되어 새로움을 잃은 관습적 설정 — 의 관상을 빼다 박았습니다. 옴니버스의 미덕은 여러 삶의 다른 결을 보여주는 데 있는데, 네 이야기가 전부 같은 공식의 변주라 두 시간이 네 배로 예측됩니다.
특히 마지막, 모두가 화해하고 웃으며 손잡는 새해 파노라마 엔딩은 보는 눈을 괴롭게 하는 동시에 손과 발이 오그라들어 사라지는 신기한 체험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사주의 가장 아픈 지점, 팔자에 '새해'가 필수 글자가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전야, 밸런타인데이 전야, 화이트데이 전야 — 어떤 기념일로 제목을 바꿔 달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 새해라는 시간이 이야기의 필연이 아니라 포장지에 그친다는 게 이 기획의 한계입니다.
상담소의 양심상 길한 괘도 짚어드립니다. 아르헨티나 로케이션의 탁 트인 화면과 탱고 시퀀스는 눈이 즐겁고, 장애를 가진 선수의 자립을 동정 없이 그리려는 태도와 국제결혼 가정의 문화 차이 같은 소재의 결은 귀합니다. 호감형 배우들 덕에 보는 동안의 온도도 나쁘지 않아서, 연말연시에 아무 생각 없이 틀어두는 용도라면 제 몫은 합니다. 최종 운세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 명절 음식처럼 익숙하고 무난하지만, 어느 한 접시도 기억에 남지 않는 상차림이었습니다.
요약: 네 이야기가 전부 같은 공식의 변주이고 '새해'가 포장지에 그친다는 것 — 예쁜 화면과 귀한 소재에도 4점에 머문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새해전야는 어떤 영화인가요?
A. 새해를 앞둔 4쌍 커플의 사랑과 인생을 옴니버스로 엮은 2021년 한국 로맨스 영화입니다. 러브 액츄얼리처럼 여러 커플의 이야기가 교차하다 새해 카운트다운에서 하나로 모이는 구성이며, 무겁지 않게 흘러가는 연말연시용 기획 로맨스입니다.
Q. 새해전야 4쌍 커플이 각각 누구인가요?
A. 이혼의 상처를 지닌 형사 지호(김강우)와 재활 트레이너 효영(유인나), 아르헨티나로 떠난 진아(이연희)와 배달원 재헌(유태오), 국제결혼을 앞둔 여행사 사장 용찬(이동휘)과 중국인 신부 야오린, 그리고 스노보드 국가대표 래환과 연인 오월 커플입니다. 네 커플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으로 진행됩니다.
Q. 새해전야 결말은 해피엔딩인가요? (스포일러)
A. 네, 네 커플 모두 해피엔딩입니다. 오해와 시련이 새해 카운트다운을 앞두고 일제히 풀리며 모두가 행복하게 새해를 맞는 대단원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일사불란한 마무리가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진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Q. 새해전야, 볼만한가요? 어떤 사람에게 맞나요?
A. 예측 가능한 전개라도 마음 편한 로맨스를 원하는 분, 연말연시 분위기용 영화를 찾는 분에게 맞습니다. 반대로 신선한 이야기나 밀도 있는 감정선을 기대하는 분에게는 클리셰의 연속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르헨티나 풍경과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가벼운 용도로 기대치를 맞추시길 권합니다.
결론
상담소를 마감합니다. 새해전야는 네 커플의 운세가 전부 길하게 풀리는 따뜻한 옴니버스지만, 정작 영화 자신의 사주에는 새로움이라는 글자가 비어 있었습니다. 같은 공식의 네 가지 변주, 오글거리는 파노라마 엔딩, 그리고 어떤 기념일로 바꿔도 무방한 제목까지. 최종 운세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
그래도 올해의 덕담은 남겨야 상담소의 도리겠지요. 아르헨티나의 햇살과 탱고, 제 다리로 서겠다는 선수의 결심 같은 장면들에는 분명 온기가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틀어두고 싶은 연말 밤이라면 이 상담소의 처방전을 참고하시고, 새해에는 부디 제목값을 하는 영화와 만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