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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리뷰 (수묵화, 창대, 두 자유)

Stv 2026. 8. 18. 15:51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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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산어보를 보고 온 밤, 저는 정약전의 방식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그가 흑산 바다의 물고기를 관찰해 어보(魚譜) — 물고기의 생김새와 성질, 쓰임을 기록한 도감 — 를 썼듯, 이 영화를 한 종의 어류로 놓고 항목별로 기록하는 겁니다. 결론부터 적으면 등급은 10점 만점에 7점, 이준익 감독의 또 하나의 수작입니다.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산어보 리뷰: 이 영화를 어보(魚譜)로 기록하다

    항목 1, 명칭과 서식지. 속명 자산어보, 서식지는 상업 영화의 바다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수역입니다. 스스로를 상업영화 감독으로 규정해온 이준익 감독이, 이번엔 상업적으로 가장 피하고 싶은 것들만 골라 담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그 유명한 정약용이 아니라 형 정약전이고, 그의 저서 자산어보는 교과서를 스쳐 가는 수준의 인지도이며, 조선 사극인데 흑백입니다. 돈 벌 생각이 없는 건가 싶다가도, 사람은 무엇을 선택하는가로 본성이 드러난다는 말을 떠올리면 답이 나옵니다. 동주로 정점을 찍고 왕의 남자와 사도를 만든 이 감독이 생각하는 아름다움 — 아름다운 화면,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상과 관계 — 을 집약한 선택이 이 영화입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항목 2, 이 어종이 흑산 바다에 이르게 된 경위. 영화의 배경인 신유박해는 순수한 종교 탄압이라기보다 철저히 정치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 어린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한 정순왕후와 벽파 세력이, 정조 시대에 세력을 이뤘던 남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천주교를 명분 삼은 것이죠. 조선 최초로 선교사 없이 스스로 천주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였던 남인계 학자들 — 그 중심에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가 있었고, 형제는 배교를 약속하고 유배길에 오릅니다. 이후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약전은 더 먼 흑산도로 보내지는데, 이준익 감독이 주목한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역사가 기록을 멈춘 그 섬에서, 정약전은 어떻게 살았을까.

    항목 3, 성질. 유배지에 갇힌 선비의 이야기인데 뜻밖에 활달합니다. 약전(설경구)은 천주쟁이라는 세간의 평에 아랑곳없이 섬사람들의 삶에 동화되고, 그들이 잡는 물고기에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천주교의 교리를 공자의 말과 연결해 그 뜻이 다르지 않음을 풀어내는 통섭(統攝) — 서로 다른 학문과 사상을 하나로 아우르는 융합 — 의 지성이자, "내가 바라는 세상은 임금도 양반도 필요 없는 세상"이라 말하는 시대를 잘못 만난 혁명가. 19세기 초 조선 선비가 저기까지 갔을까 싶다가도, 정약용보다 낫다는 평을 들었던 그 정약전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지는 게 이 영화의 묘한 설득력입니다.

    요약: 상업적으로 가장 어두운 수역을 골라 들어간 이준익의 선택, 정치적 박해로 흑산에 갇힌 선비, 그리고 그 섬에서 피어난 통섭의 지성이 이 어종의 기본 정보입니다.

    흑백인 이유: 먹의 농담으로 그린 수묵화

    이 어종의 비늘, 그러니까 형태 관찰입니다. 하얗게 빛나는 스크린 위에서 먹의 농담(濃淡)이 춤을 춥니다. 흑백 영화의 아름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그것이 대중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인데, 자산어보의 흑백은 단순한 미학적 허세가 아닙니다. 조선의 바다와 섬, 선비의 도포와 갯가 사람들의 삶을 담는 데 이보다 어울리는 화폭이 없습니다. 컬러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강렬한 콘트라스트는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비늘이고, 한 폭의 수묵화를 두 시간 동안 감상하는 경험이라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흑과 백의 대비는 영화의 주제와 정확히 공명합니다. 이 작품은 결국 두 자유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흑산도에 갇혀 있으나 정신은 어디에도 갇히지 않았던 약전. 그는 언제나 누군가를 위해 글을 썼고 세상을 위해 살았습니다. 반면 창대는 몸은 자유로웠으나 정신이 성리학의 세계 하나에 사로잡혀, 스승이 품은 자유로움을 끝내 읽어내지 못합니다. 검은 물과 흰 하늘처럼 선명하게 갈리는 두 사람의 대비를, 흑백이라는 형식이 화면 그 자체로 증언하는 셈입니다.

    약전을 그리는 태도도 이 항목에 기록해 둘 가치가 있습니다. 영화는 그를 완전무결한 성인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이면서도 상놈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신분제와 여성관에서는 영락없는 조선 사람인 인물. 위인의 흑과 백을 함께 담담히 담아내는 이 시선, 그리고 양반은 꽉 막힌 사람이고 평민은 과격한 사상가라는 고전적 구도에서 완전히 벗어난 균형이야말로 이 수묵화의 진짜 격조입니다.

    요약: 흑백은 허세가 아니라 주제입니다. 몸이 갇힌 자유인과 몸이 자유로운 수인(囚人), 그 흑백의 대비를 화면의 형식이 그대로 증언합니다.

    창대 실존 인물: 원저에 아홉 번 인용된 이름

    이 어종의 다른 한 축, 공생 관계를 기록합니다. 창대(변요한)는 실존 인물입니다. 실제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창대라는 이름이 총 아홉 번 인용되는데, 원저는 그를 "영리하고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해서,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세밀하게 관찰해 그 성질을 이해하는 사람"이라 소개합니다. 당대의 기준으로 이름 한 줄 남을 수 없던 신분의 청년을 자신의 저서에 아홉 번이나 기록한 것 — 이준익 감독은 여기서 학자 정약전의 고결한 양심과 인간미를 읽어냈고, 원저에 몇 줄뿐인 이 인물에게 숨을 불어넣어 영화의 심장으로 세웠습니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이자 거래 관계입니다. 물고기의 지식을 알려주는 대가로 글공부를 배우는 것. 그러나 창대는 끝내 스승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토록 위대한 사람이 왜 세상을 위해 재능을 쓰지 않고 물고기 책이나 쓰는가. "외울 줄밖에 모르는 공부가 나라를 망쳤다"는 스승의 경고를 뒤로하고, 창대는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심취해 뭍으로 나갑니다. 진사가 된 그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합니다. 대과는 배경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양반들의 세력 다툼이고, 벼슬은 공명첩으로 사고팔며, 아전들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까지 군포를 매기는 수탈을 벌입니다. 그 수탈에 절규하며 스스로 몸을 해하는 백성의 극단적인 항거 앞에서, 창대는 아전을 두들겨 패고 맙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창대의 분노보다 그 분노의 좌표를 봤습니다. 분노가 향했어야 할 곳은 만만한 아전이 아니라 그 뒤에 서 있는 나주 목사와 장진사, 구조의 정점입니다. 김수영의 시구처럼,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창대의 분노는 어딘가 비껴 서 있고, 그 비껴섬이야말로 이 인물의 비극입니다. 다만 정직하게 적자면 이 후반부, 그러니까 창대의 오리지널 스토리 구간은 전반부만큼의 밀도에 이르지 못합니다. 위기와 해결의 그림이 다소 식상하고, 창대의 아픔에 공감이 충분히 고이지 않으며, 마지막 눈물도 저를 적시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정약용과의 시 짓기 대결에서 굳이 창대가 이기는 장면이나 파랑새, 소라고동처럼 의도가 너무 정직하게 노출되는 대목들도 과잉 친절로 기록해 둡니다. 전반부는 누구나 명작이라 할 완성도, 후반부는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낙차 — 그것이 7점의 이유입니다.

    그래도 배우들의 항목은 만선입니다. 설경구는 대체 왜 이제야 사극을 했나 싶을 만큼 특유의 대사 처리가 사극의 결과 맞아떨어지고, 변요한은 창대를 연기하며 한층 성장했으며, 이정은의 존재감과 우정출연 류승룡을 비롯한 배우들이 화면을 풍성하게 채웁니다.

    요약: 원저에 아홉 번 기록된 실존 청년 창대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이 영화의 심장이지만, 그의 오리지널 서사가 보여준 낙차가 7점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자산어보의 창대는 실존 인물인가요?

    A. 네, 실존 인물입니다. 정약전의 실제 저서 자산어보에 창대라는 이름이 아홉 번 인용되며, 관찰력이 뛰어난 청년으로 소개됩니다. 다만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어서, 영화 속 창대의 성장과 좌절 서사는 그 몇 줄의 기록 위에 이준익 감독이 상상력으로 쌓아 올린 창작입니다.


    Q. 자산어보는 왜 흑백으로 만들었나요?

    A. 수묵화 같은 미학을 위한 선택이자 주제와 맞닿은 형식입니다. 먹의 농담으로 그린 듯한 콘트라스트가 조선의 바다와 선비의 세계에 어울리고, 몸은 갇혔으나 정신이 자유로운 약전과 몸은 자유로우나 정신이 갇힌 창대라는 흑백의 대비를 화면 형식 자체가 은유합니다. 컬러가 아니라서 오히려 더 깊게 남는 화면입니다.


    Q. 실제 자산어보는 어떤 책인가요?

    A.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시절 그 일대 바다의 어류와 해양 생물을 관찰해 기록한 실학 시대의 해양 생물 도감입니다. 각 어종의 명칭과 형태, 습성과 쓰임까지 담아 조선 시대 수산학의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받습니다. 유배지에서 좌절 대신 백성의 삶에 닿는 학문을 택한 선비의 정신이 담긴 책이라, 영화의 주제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Q. 자산어보, 지루하지 않나요? 어떤 사람에게 맞는 영화인가요?

    A. 액션 사극이 아닌 인물과 사상의 드라마라 속도는 느긋하지만, 전반부의 밀도와 대사의 맛 덕에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습니다. 사극과 배우들의 연기를 좋아하는 분, 화면의 미학을 즐기는 분, 그리고 배움과 신분에 대한 이야기에서 지금의 세상을 겹쳐 읽는 재미를 아는 분에게 특히 맞는 영화입니다.


    결론

    어보의 마지막 항목, 등급과 쓰임을 기록합니다. 본 어종의 등급은 10점 만점에 7점. 전반부의 명작급 완성도와 후반부의 낙차를 함께 반영한 수치이며, 그럼에도 인간과 인간에 대해 말하는 아름다운 작품이자 이준익 감독의 또 하나의 수작으로 분류합니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섬의 시간을 이토록 품위 있게 상상해낸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쓰임새는 이렇게 적어둡니다. 마음이 소란한 날, 먹의 농담이 스미는 두 시간의 처방. 다 보고 나면 임금도 양반도 없는 세상을 꿈꿨던 한 선비와, 그 곁에서 물고기의 이름을 불러주던 청년의 얼굴이 오래 남을 겁니다. 이상으로 이 어보의 기록을 마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133IQ_6d2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