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을 보고 온 밤, 저는 관람 수면 일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이 영화가 잠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잠이고, 실험체 서복은 태어나 한 번도 잠들어 본 적이 없으며, 시한부 기헌은 그 잠을 피하려 발버둥 치는 인물이니까요. 문제는 정작 잠든 게 관객이었다는 것. 순제작비 164억, 극장과 OTT 동시 공개작인 이 기대작이 왜 저의 각성도를 무너뜨렸는지, 치명적 스포일러와 함께 기록합니다.
서복 리뷰: 관람 수면 일지를 공개합니다
관람 전 각성도 100퍼센트. 공유와 박보검이라는 조합, 개봉 전부터 올해의 기대작으로 꼽히던 한국 SF였습니다. 이야기의 뼈대는 예상 범위였습니다. 뇌종양으로 시한부가 된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에게 안 부장(조우진)이 제안합니다. 한 인물을 안전하게 이송하라, 대가는 치료의 기회. 그 인물이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입니다.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찾아 떠났던 사신의 이름을 물려받은, 모든 질병과 죽음의 해답을 품은 존재죠. 줄기세포 연구 파동 이후 지원이 끊긴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받아 비밀 실험을 승인했다는 시대 풍자 설정까지, 재료는 분명 좋았습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관람 1시간, 각성도 50퍼센트. 철학 질문들이 아무런 가공 없이 날것으로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왜 위험한가, 그들은 왜 나를 노리는가, 당신은 왜 나를 지키는가. 습격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노린다는 말에 서복이 "참 어리석네요"라고 답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어야 할 순간조차 별다른 여운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버립니다.
관람 90분, 반짝 각성의 순간들. 그나마 눈이 뜨인 건 박보검 덕입니다. 육개장 사발면을 처음 먹는 장면 — 면을 천천히 빨아들이고 음미하다 눈을 들어 기헌을 바라보는 그 경탄의 표정은 이 영화에서 가장 살아 있는 연기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서복이 사발면 네 개째를 주문하는 순간, 이 상징에 어떤 함의가 있으리라던 기대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바다. 가짜 바다 그림만 보던 존재가 진짜 바다를 만나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쥐어보고, 곁에 잠든 남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이 장면이 사실상 이 영화의 정점입니다. 그 뒤의 각성도는, 일지에 적기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요약: 좋은 재료와 배우들의 반짝이는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날것으로 쏟아지는 철학 질문들 앞에서 각성도는 꾸준히 우하향했습니다.
혹평 이유: 철학을 이야기에 꿰매지 못한 바느질
수면의 원인을 분석합니다. 이 영화가 지루한 이유는 철학을 다뤄서가 아니라, 철학을 이야기와 연출에 녹여내지 못해서입니다. 복제인간 소재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건 SF의 자연스러운 문법입니다. 문제는 서복이 스필버그의 AI 같은 사유의 영화와 로건 같은 액션 활극을 한 그릇에 담으려다 이도 저도 아닌 혼돈이 됐다는 점입니다. 사유는 껍데기만 남았고, 액션은 164억이라는 제작비가 무색한 시각효과와 긴장감 없는 염력 수준에 머뭅니다.
캐릭터의 비일관성은 더 치명적입니다. 서복은 어떤 장면에선 사슴 같은 눈망울의 순진한 소년이고, 어떤 장면에선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의도를 단번에 꿰뚫는 현인이며, 어떤 장면에선 질풍노도의 청소년처럼 포악해집니다. 실험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과 소설책이 가득하다는 설정과, 편의점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백지처럼 구는 모습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 정도의 문학을 읽은 존재가 인간의 일상을 모를 수는 없으니까요. 설명이 있어야 할 지점마다 편집으로 잘려나간 듯한 인상이 반복되어, 감독판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공유 본인도 간담회에서 기헌의 캐릭터가 많이 편집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는데, 맞는 말입니다. 초췌한 얼굴과 폭발하는 감정은 전달되지만 그 마음의 서사가 비어 있습니다.
기시감의 문제도 있습니다. 영생을 원하는 병든 회장이라는 빌런은 승리호에서 본 듯하고 그 이미지는 프로메테우스를 닮았으며, 인류의 해답을 지닌 존재가 인간에게 실망하고 인간을 배우며 사랑하게 된다는 구도는 제5원소의 리루를 떠올리게 합니다. 구태의연한 캐릭터들, 예측 가능한 전개, 그리고 가공 없는 철학. 결국 이 영화는 공유와 박보검의 얼굴을 보는 영화라는 평가에 도달하고 맙니다. "왜요, 왜 그런데요"를 입에 달고 사는 모호한 캐릭터에 그나마 설득력을 부여한 것은 순전히 박보검의 업적입니다.
사유(AI)와 액션(로건)을 한 그릇에 담으려다 생긴 혼돈
164억이 무색한 시각효과와 염력 수준의 액션
소년↔현인↔질풍노도를 오가는 서복 캐릭터의 비일관성, 책장 설정과의 모순
편집으로 비어버린 기헌의 서사 — 배우들의 얼굴만 남은 영화
요약: 혹평의 뿌리는 철학이 아니라 바느질입니다. 사유를 이야기에 꿰매지 못한 채 질문만 쏟아낸 결과, 남은 것은 배우들의 얼굴뿐입니다.
결말 해석: 잠들지 못하던 신이 마침내 잠들다
여기서부터 결말 스포일러입니다. 울산에서 또 하나의 자신, 그러니까 자신과 같은 실험체를 마주한 서복은 실험체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연구소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영원히 실험체로 쓰일 거라는 사실에 반발이 일고, 자신을 아들처럼 여겨온 임세은 박사마저 눈앞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자 서복은 마지막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그리고 결국, 태어나 한 번도 잠들지 못했던 존재는 기헌의 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잠에 듭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고요.
저는 이 결말에 담겼어야 할 해석을 일지에 적어둡니다. 서복은 공식적으로는 죽지 않는 존재지만, 실은 총에 맞으면 최후를 맞고 매일 억제제 없이는 세포가 무너져 내리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영원은 연구실이라는 인공 환경과 그것을 유지하는 천문학적 자본이 있을 때만 성립하는, 지독한 역설(패러독스) 위에 서 있습니다. 영생이 아니라 영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 그 허상을 두고 누군가는 빼앗으려 하고 누군가는 지우려 하는 이 소동 전체가, 영원이란 얼마나 물거품 같은가를 보여주는 그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바다에서 끝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짜 바다만 보던 존재가 진짜 바다를 만나고, 쥐면 빠져나가는 모래알을 느끼고, 자신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남자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깨닫는 그 장면에 이 영화의 주제가 전부 함축되어 있으니까요. 인간이 제 손으로 만들어낸 '복제된 신' — 바둑의 신에 근접해 간 알파고처럼 — 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내려다보다, 끝내 인간을 사랑한 이들의 희생 앞에서 분노하고, 그러고도 인간을 다 심판하지 못하는 마음 약한 신으로 잠드는 이야기. 이 해석대로 영화가 밀고 나갔다면 수작이 됐을 겁니다. 그 가능성이 보여서, 이 허술함이 더 아쉽습니다.
요약: 잠들지 못하던 존재가 처음으로 잠드는 결말, 그리고 자본이 유지하는 가짜 영원이라는 역설 — 영화가 정면으로 짚었어야 할 해석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서복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A.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아 떠났다는 전설 속 사신 서복(徐福)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인류의 오랜 불로불사의 꿈을 상징하는 이름을 최초의 복제인간에게 붙인 것으로, 이 영화의 주제인 '영원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압축한 작명입니다.
Q. 서복은 정말 죽지 않는 존재인가요? (스포일러)
A. 아닙니다. 이 영화의 숨은 역설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서복은 노화하지 않을 뿐, 외부 충격에는 취약하고 매일 억제제를 맞지 않으면 세포가 무너지는 존재입니다. 즉 그의 영원은 연구실과 자본이 유지될 때만 성립하는 인공의 영원이고, 결말에서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잠에 들며 그 역설을 완성합니다.
Q. 서복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개봉 당시 극장과 티빙에서 동시 공개된 작품이라, 현재는 OTT에서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 대작 영화의 극장·OTT 동시 공개라는 실험 자체로도 화제가 됐던 작품이니, 집에서 부담 없이 확인해 보시기 좋습니다.
Q. 공유와 박보검의 연기는 어떤가요?
A. 이 영화에서 가장 확실한 자산입니다. 공유는 초췌함과 폭발하는 감정으로 비어 있는 서사를 얼굴로 메우고, 박보검은 사발면 첫 시식 장면의 경탄부터 신비와 광기를 오가는 표정까지 모호하게 설계된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두 배우의 얼굴을 보는 값은 합니다.
결론
수면 일지를 마감합니다. 서복은 좋은 소재와 좋은 배우, 그리고 흥미로운 역설의 씨앗까지 갖추고도 그것을 이야기에 꿰매지 못한 영화입니다. 잠에 대해 말하려던 영화가 관객을 잠들게 만든 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끝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최종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 SF를 사랑하는 저조차 견디기 어려웠던 따분함이었습니다.
다만 일지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어둡니다.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운 재료들이었다고. 편집에 잘려나간 서사들이 온전히 붙은 감독판이 나온다면, 저는 각성제를 챙겨서라도 한 번 더 관측할 의향이 있습니다. 철학을 영화에 꿰매 넣는 일이 이렇게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