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도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놀림받던 특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릴 적 보이스카우트에서 배운 매듭법. 인생에서 그게 빛난 순간은 이삿날 트럭 짐을 묶을 때 단 한 번이었지만, 그 한 번의 뿌듯함을 아직 기억합니다. 엑시트는 그 뿌듯함을 도시 전체 스케일로 키운 영화입니다. 조정석과 임윤아가 유독가스에 잠긴 도심을 맨몸으로 탈출하는 재난 코미디이고, 결말은 이 글에 적지 않았으니 관람 전이어도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엑시트 영화 리뷰: 쓸모없던 특기의 반격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 공원 철봉에 매달려 있는 남자, 용남(조정석). 대학 시절 클라이밍 동아리의 에이스였지만 그 경력은 이력서 어느 칸에도 못 들어가고, 취업은 번번이 낙방, 동네 꼬마들에게는 유명인사요 조카에게는 ..
클로젯 리뷰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입자를 봤습니다. 극장을 나오는 길에 제가 그 리뷰에 썼던 문장이 떠올랐어요. 건축가 주인공이 사고로 아내를 잃고 전원주택에 산다 — 같은 해에 나온 두 한국 스릴러의 설정이 이렇게까지 겹칠 줄은 몰랐습니다. 김무열과 송지효가 남매를 연기하는 이 영화, 초반의 흡인력이 나쁘지 않았기에 후반의 붕괴가 더 아깝습니다. 이 글은 결말과 반전의 정체까지 전부 담은 혹평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3점입니다.침입자 영화 리뷰: 원치 않은 구원투수침입자는 원래 조용히 왔다 갔을 영화였습니다. 흔한 한국형 스릴러 중 하나로 기획된 작품이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개봉을 거듭 연기하다, 극장 할인권 정책의 첫 수혜작이 되면서 원치 않은 구원투수 자리에..
명절 연휴의 극장에는 이상한 관대함이 흐릅니다. 가족들 손잡고 우르르 들어가서, 평소라면 고르지 않았을 영화도 명절이니까 하며 표를 끊게 되죠. 국제수사는 정확히 그 관대함을 겨냥해 추석에 도착한 영화였습니다. 곽도원 주연의 필리핀 배경 코미디 수사극이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관대함의 한도를 시험한 영화였습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3점. 결말 스포일러는 없으니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만, 읽고 나면 아마 보실 마음이 줄어들 겁니다.국제수사 리뷰: 전화위복의 조건은 다 갖췄는데이 영화, 운은 좋았습니다. 개봉 전 각종 예능을 돌며 홍보란 홍보는 다 했고, 몇 차례 개봉이 밀린 끝에 극장에 걸렸을 때는 경쟁작이 드문 시기라는 행운까지 따랐죠. 전화위복의 조건은 다 갖춘 셈이었는데, 문제는 그 모든 ..
우리 집안에는 가훈처럼 내려오는 잔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뭐든 해도 되는데 보증만은 서지 마라. 명절마다 듣던 그 말의 최악 시나리오를 두 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면 아마 이렇게 될 겁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애인의 사채 보증을 서줬다가 인생이 통째로 잡힌 남자와, 돈가방 하나를 둘러싸고 각자의 지푸라기에 손을 뻗는 짐승들의 이야기입니다.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윤여정이 나오고, 이 글은 결말과 모든 인물의 운명을 담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리뷰: 사우나 캐비닛의 돈가방시작은 돈가방입니다. 평택의 사우나에서 일하는 중만(배성우)이 오픈 준비 중 캐비닛에서 명품 가방 하나를 발견합니다. 열어 보니 현금 다발. 치매를 ..
열여덟 무렵, 학원을 빼먹고 터미널 전광판을 한참 올려다본 적이 있습니다. 주머니엔 만 원 남짓.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고 아무 데도 갈 수 없을 것 같던 그 기분을, 영화 시동의 택일이 매표소에 던지는 한마디가 정확히 소환하더군요. 만 원으로 갈 수 있는 데가 어디예요. 박정민, 마동석, 정해인의 웹툰 원작 코미디이고, 결말과 거석이형의 정체는 이 글에 적지 않았으니 관람 전이어도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시동 영화 리뷰: 만 원으로 갈 수 있는 곳영화는 사고뭉치 이인방의 질주로 문을 엽니다. 오토바이 하나에 몸을 실은 열여덟 택일(박정민)과 상필(정해인). 폭주족에게 시비가 붙어 쫓아가다 돌아온 건 사고 하나와, 학원비로 오토바이를 샀다는 사실이 들통난 뒤 날아..
저는 응모권만 보면 일단 쓰고 보는 사람입니다. 마트 영수증 뒷면, 아파트 알뜰장 경품함, 통신사 룰렛까지. 전적을 고백하자면 최고 당첨이 주방세제 세트였습니다. 그래서 하와이 가족여행쯤 되는 당첨은 늘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오케이 마담은 그 꿈의 당첨이 재앙으로 바뀌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비행기가 뜨자마자요. 엄정화, 박성웅, 이상윤의 하이재킹 코미디 액션이고, 이 글은 결말 줄거리를 담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오케이 마담 리뷰: 공짜 업그레이드의 값주인공 미영(엄정화)은 시장에서 꽈배기 가게를 하는 사장님입니다. 만들자마자 팔리는 손맛에, 억척스럽게 가족을 건사하는 생활의 달인. 남편 석환(이상윤)은 옆에서 전파사를 하는 순둥이인데 이 남자의 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