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우리 강프로, 식사는 잡쒔어?" 주말 하루를 통째로 비우고 넷플릭스 수리남 6부작을 달리는 동안, 저는 수첩에 명대사를 받아 적고 있었습니다. 목사로 위장한 마약왕, 홍어 잡으러 지구 반대편까지 간 가장, 그리고 그 사이에 낀 국정원 작전. 이 말도 안 되는 조합이 실화에서 출발했다는 걸 알고 나면, 6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넷플릭스 수리남 리뷰: 주말 하루를 통째로 삼킨 6부작수리남은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을 무대로, 홍어 수출 사업을 하러 갔다가 마약 조직의 누명을 쓴 민간인 강인구(하정우)가 국정원의 언더커버 작전에 투입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언더커버(undercover)란 신분을 숨기고 범죄 조직 내부에 잠입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검거를 유도하는 위장 작전을 말합..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이름만 들어도 영화가 몇 편은 나올 것 같은 라인업에 제작비 300억 원, 그리고 관상과 더 킹의 한재림 감독. 기대하지 않는 게 이상한 조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관람을 마치고 사고 조사관의 심정이 됐습니다. 이 기체는 분명 훌륭하게 이륙했는데, 어디선가 고도를 잃고 추락했습니다. 블랙박스를 판독하듯 구간별로 기록해 보겠습니다.영화 비상선언 리뷰: 이륙부터 순항까지, 전반부만큼은 진짜였다인정할 건 인정하고 가야 합니다. 이 영화의 중반까지는 할리우드의 어떤 재난 영화에도 밀리지 않는 재미와 박진감,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인물들이 소개되고 기내 상황이 배치되는 방식, 그리고 빛의 활용까지. 저는 전반부를 감탄하면서 봤습니다.임시완이 연..
극장 티켓값이 14,000원까지 오른 시대, 개봉일을 못 잡은 한국 영화들이 넷플릭스 앞에 줄을 서고 있습니다. 설경구와 박해수의 만남, 첩보 누아르라는 장르. 이 조합에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죠. 그런데 저는 야차를 다 보고 나서 오락실 두더지 게임기 앞에 선 기분이 됐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내부 스파이를 찾는 동안, 저는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문제점 두더지를 잡느라 바빴거든요.야차 리뷰: 인트로만큼은 진짜였다공정하게 좋았던 것부터 적겠습니다. 인트로는 진짜 괜찮았습니다. 네온사인 가득한 거리, 배신자를 무대포로 추격하는 야차 지강인(설경구), 그리고 실제 총기를 사용해 촬영했다는 말이 납득될 만큼 묵직하게 다가오는 총성. 배신자를 끝까지 쫓아가 그 자리에서 처리하는 오프닝 시퀀스 하나로..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때우기용으로 골랐습니다. 게임 원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어차피 게임 팬들 위한 팬서비스 아니냐"는 말도 들었거든요. 그런데 오프닝 5분 만에 그 생각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제작비 1,500억 원짜리 액션 어드벤처 《언차티드》,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빨랐습니다.언차티드 오프닝이 이미 물건이었던 이유영화는 인 메디아스 레스(in medias res) 구조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인 메디아스 레스란 사건의 한가운데서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사 기법으로, 고대 서사시에서부터 쓰여 온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원인 설명 없이 결과 한복판부터 던져놓는 것인데, 이 영화는 그걸 아주 물리적으로 구현합니다. 푸른 하늘,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화물들, 그 사이에서 매달..
2014년 명량을 극장에서 봤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대사에 소름이 돋았던 그날부터 8년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한산도 대첩을 다룬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에 관람 전 제 나름의 브리핑을 시작했습니다. 진법, 수읽기, 그리고 만만치 않은 맞수. 이번엔 감정의 전투가 아닌 두뇌의 전투입니다.한산 용의 출현 관람 전 브리핑: 와키자카라는 맞수를 공부하다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명량에서 이순신의 상대였던 구루지마는 저돌적인 해적 대장 이미지였는데, 한산의 맞수로 등장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결이 다릅니다. 성을 지키는 대신 과감하게 나와 더 큰 것을 얻는 수를 아는 장수, 육전에서 기습 작전으로 조선 육군을 격파한 이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한산도 대첩이 일어나기 불과 한..
제작비 130억 원, 전작 860만 관객의 바통을 이어받은 영화 . 오프닝에서 갤리온선을 몰고 등장하는 파마머리 해랑을 보자마자 저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 영화가 고증보다 판타지를 선택했다는 걸 첫 장면에서 대놓고 선언하고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습니다.해적 도깨비 깃발 개연성: 이 배는 처음부터 구멍이 나 있었다여말선초(麗末鮮初), 그러니까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넘어가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설정인데, 해랑(한효주)이 타고 다니는 갤리온선(Galleon)이 등장합니다. 갤리온선이란 15~17세기 유럽에서 활약한 대형 범선으로, 콜럼버스가 1492년 바하마에 도착할 때 탔던 선박보다도 한 세대 뒤에 나온 배입니다. 영화 배경이 15세기 초임을 감안하면 시대가 100년 가까이 어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