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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차 리뷰 (겉도는 주인공, 폼 액션, 각본 결함)

Stv 2026. 8. 2. 13:29

목차


    극장 티켓값이 14,000원까지 오른 시대, 개봉일을 못 잡은 한국 영화들이 넷플릭스 앞에 줄을 서고 있습니다. 설경구와 박해수의 만남, 첩보 누아르라는 장르. 이 조합에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죠. 그런데 저는 야차를 다 보고 나서 오락실 두더지 게임기 앞에 선 기분이 됐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내부 스파이를 찾는 동안, 저는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문제점 두더지를 잡느라 바빴거든요.



    야차 리뷰: 인트로만큼은 진짜였다

    공정하게 좋았던 것부터 적겠습니다. 인트로는 진짜 괜찮았습니다. 네온사인 가득한 거리, 배신자를 무대포로 추격하는 야차 지강인(설경구), 그리고 실제 총기를 사용해 촬영했다는 말이 납득될 만큼 묵직하게 다가오는 총성. 배신자를 끝까지 쫓아가 그 자리에서 처리하는 오프닝 시퀀스 하나로 이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이 끝납니다. 건드리면 폭발하는 위험인물이라는 것을 대사 한 줄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고, 저는 이 5분을 보면서 "이 게임 해볼 만하겠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설정 자체도 흥미로운 편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 한지훈(박해수)은 정의로운 검사입니다. 대기업 회장의 비리를 파헤치다 좌천당해 국정원 한직으로 밀려났고, 원대 복귀를 노리다 중국 선양에 파견된 블랙팀 감찰 임무를 받게 됩니다. 지훈은 "썩은 나무에서는 썩은 열매밖에 자라지 않는다"고 믿는 원칙주의자로, 정의는 그 과정과 절차까지 정의로워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차 지강인과 이 원칙주의 검사의 대립 구도는 생각만 해도 기대되는 조합이었습니다.

    떡밥도 큽니다. 블랙팀이 쫓는 인물은 북한 정권의 비자금 4조 원을 관리하는 문병욱. 그가 귀순 의사를 밝히자 북한은 물론 중국 공안과 일본 정보 조직까지 전부 달려드는 판이 깔립니다. 여기에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양동근이 위장 여행사 사장 역으로 나오는데, 저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났을 만큼 반가웠습니다. 여기까지, 그러니까 판이 깔리는 단계까지는 분명 볼만했습니다. 문제는 본 게임이 시작되면서부터였습니다.

    요약: 실제 총기 사운드와 설경구의 존재감으로 완성한 인트로, 원칙주의 검사와 야차의 대립 구도, 4조 원 떡밥까지 판은 좋았습니다. 판까지만.

    두더지 스코어보드: 튀어나온 문제점 네 마리

    본편이 시작되자 두더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두더지란 첩보물에서 조직 내부에 숨어든 이중 스파이를 가리키는 용어인데,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만 두더지를 찾는 게 아니라 관객도 문제점 두더지를 계속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잡은 네 마리를 순서대로 기록합니다.

    첫 번째 두더지, 겉도는 주인공. 지훈은 비중에 비해 역할이 너무 한정적입니다. 첩보전이 난무하는 이 세계에 전혀 스며들지 못하는 인물인데, 훈련도 지식도 없는 상태로 단독 행동을 벌이다 오히려 총과 차를 빼앗기는 처지가 됩니다. 솔직히 강인 입장에서 지훈을 그냥 둔 게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두더지, 폼에 잡아먹힌 액션. 상대편 요원들은 정확한 자세로 정조준 사격을 하는데, 우리 블랙팀은 은폐도 엄폐도 없이 폼나게 걸어가며 한 손 사격으로 한 명씩 눕힙니다. 90년대 홍콩 B급 영화에서 보던 그림입니다. 존 윅도 판타지 액션이지만, 존 윅은 CAR 시스템 같은 사격술 디테일을 동원해 "만약 이렇게 싸울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를 설득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반면 이 영화는 분노의 질주처럼 설득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누아르(noir), 즉 어둡고 비정한 세계관 속 인물들의 운명을 그리는 장르를 표방하는 영화라면 액션의 설득력이 바탕에 있어야 하는데, 그 기본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세 번째 두더지, 무한 반복 패턴. 두더지에게 뒤통수를 맞고, 붙잡고 나면 "배후가 누구냐"고 묻고, 답은 늘 "말할 수 없다"입니다. 클리셰(cliché), 그러니까 너무 자주 쓰여 신선함을 잃은 상투적 장치 자체는 어느 영화에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똑같은 패턴을 서너 번씩 반복한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쯤 되니 손목이 아니라 인내심이 저려왔습니다.

    네 번째 두더지, 유머와 대사. 시계를 가리키며 "남대문 열렸다"고 하는 개그가 초반에 나오는데, 이걸 후반에 한 번 더 반복합니다. 이 유머에 진심이라는 뜻이겠죠. 진중한 누아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개그가 무분별하게 삽입되면서 극의 긴장감이 계속 새어나갔고, "나다, 야차" 같은 대사에서는 저도 모르게 손발이 움츠러들었습니다.

    • 캐릭터 낭비: 비중 대비 역할이 한정된 지훈, 세계관에 스며들지 못하는 주인공
    • 액션 설득력 붕괴: 걸으면서 한 손 사격, 90년대 홍콩 B급식 총격전
    • 반복 플롯: 두더지 발견 → 뒤통수 → "배후가 누구냐" → "말할 수 없다"의 서너 번 순환
    • 유머·대사 참사: 분위기를 깨는 개그의 반복과 상투적인 대사들
    요약: 캐릭터, 액션, 플롯, 대사 네 영역에서 문제가 반복적으로 튀어나오며, 특히 같은 패턴의 순환이 몰입을 가장 크게 무너뜨립니다.

    각본이 주인공을 도구로 쓸 때 생기는 일

    이 영화의 근본 결함은 따로 있습니다. 각본이 주인공을 도구로 취급한다는 점입니다. 정의는 절차와 과정까지 정의로워야 한다던 지훈이, 아무 성장 서사도 없이 마지막에 "정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라며 전향해버립니다. 지훈이 강인을 보며 자기 신념을 고민하거나 부딪히는 과정이 극 중에 전혀 없었는데, 선양 한 번 다녀왔다고 사람이 바뀌어 있는 겁니다.

    저는 반대로 갔어야 한다고 봅니다. 두 사람이 부대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되, 마지막 순간에는 지훈이 자기 장점인 '과정의 정의'를 발휘해 야차를 도왔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서로 다른 신념이 서로를 존중하며 성장하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법을 다루는 검사가 절차라는 실질적 가치를 버리고 자의적 정의를 찬양하며 끝나는 결말은, 주인공의 서사가 아니라 각본의 편의를 위한 결론으로 읽혔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더 큰 질문이 남습니다. 넷플릭스는 대체 무슨 기준으로 한국 영화를 고르는가. 코로나 이후 개봉일을 잡지 못한 한국 영화들이 OTT행을 택하는 흐름은 통계로도 확인되는 현실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산업 결산 자료). 그 줄의 맨 앞에서 간택된 작품이 이 완성도라면, 두 가지 무서운 시나리오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넷플릭스의 선구안이 형편없는 경우. 이러면 다음엔 또 어떤 작품이 올지 예측이 불가능해집니다. 더 무서운 쪽은, 줄 서 있는 한국 영화들 중 이게 그나마 나은 작품이었을 가능성입니다. 저는 후자가 저의 망상에 지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래도 남는 건 배우들입니다. 강인의 손동작 하나에 흠칫 몸을 수그리는 박해수의 디테일한 연기에서는 감탄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왔고, 오랜만에 액션을 소화하는 설경구는 여전히 멋있었습니다.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화면과 사운드도 준수합니다. 좋은 재료로 이 요리가 나왔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배우들이 아깝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표현일 겁니다.

    요약: 성장 서사 없는 주인공의 전향은 각본이 인물을 도구로 소비했다는 증거이며, 배우들의 열연만이 이 영화에서 온전히 살아남은 요소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야차가 무슨 뜻인가요?

    A. 야차(夜叉)는 불교 설화에 등장하는 무섭고 사나운 귀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화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블랙팀 팀장 지강인(설경구)의 별명으로 쓰입니다. 적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캐릭터성을 압축한 제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Q. 야차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스포일러 포함)

    A. 최종 흑막은 '어둠의 문'이라 불리는 일본 정보 요원 오자와입니다. 그는 자금력으로 전 세계에 이중 스파이를 심어 판을 흔들어온 인물이고, 국정원 염 국장 역시 일본 측 이중 스파이였음이 드러납니다. 지훈이 처음 수사하다 좌천됐던 국내 대기업도 이 자금망에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오자와를 붙잡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초반 떡밥을 끝에서 한꺼번에 묶어 정리한 패키지 상품 같은 결말이라, 개연성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Q. 넷플릭스 야차, 킬링타임용으로는 볼만한가요?

    A. 솔직히 킬링타임 목적이라도 권하기 어렵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인트로 15분과 배우들의 연기, 이국적인 화면은 볼만하지만, 중반부터 같은 패턴이 반복되며 체감 시간이 길어집니다. 설경구나 박해수의 팬이라면 배우를 보는 재미로 완주할 수는 있습니다.


    Q. 배우들 연기는 어떤가요?

    A.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확실한 장점입니다. 설경구는 오랜만의 액션을 안정적으로 소화하고, 박해수는 강인의 손동작에 반사적으로 움츠러드는 것 같은 디테일까지 챙깁니다. 양동근의 복귀도 반갑습니다. 다만 영화 자체가 캐릭터를 살리는 법을 몰라서, 좋은 배우들이 체스판의 말처럼 소모된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결론

    스코어보드 정산입니다. 인트로와 배우, 화면과 사운드에는 점수를 주고, 캐릭터·액션·플롯·대사 네 마리의 두더지에는 감점을 매기면, 제 최종 점수는 10점 만점에 3점입니다. 설경구가 오랜만에 멋지게 액션을 펼치는 작품인 만큼, 이 영화가 그런 역할의 마지막이 아니기를, 더 좋은 각본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리뷰를 닫으며 남는 질문 하나. 넷플릭스 앞에 줄 선 한국 영화들 가운데 이 작품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다면 어떡하죠. 부디 저의 어리석은 망상이기를 바랍니다. 한국 영화의 다음 타자가 이 걱정을 시원하게 씻어주기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