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개봉일을 달력에 표시해두고 저는 예습부터 시작했습니다. 1965년 출간된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소설과 듄 백과사전을 기초로 세계관을 공부했는데, 다 정리하고 나니 이건 영화 예습 자료가 아니라 아라키스 행성으로 발령받은 신규 이주민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안내문이었습니다. 그 안내문을 여기 공유합니다. 듄은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가 될 것이 확실하니까요.듄 개봉 전 세계관 정리: 아라키스 이주민 오리엔테이션먼저 교재 소개부터. 듄은 1965년 출간된 프랭크 허버트의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 — 광활한 우주를 무대로 제국과 영웅의 서사를 그리는 SF 장르 — 의 기념비적 작품입니다(출처: IMDb — Dune (2021)). 이 글은 원작 소설과 1984년 출간된 듄 백과사전을 기초로 정리했..
샘 레이미의 1편을 극장에서 본 뒤로 20년, 저는 이 시리즈의 오래된 동창입니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저에게 영화라기보다 동창회 초대장이었고, 극장을 나서며 방명록을 적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페이즈4의 마블을 걱정하며 들어갔다가, 그 걱정을 비웃는 최고의 모습을 보고 나왔습니다. 이 글에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안 보셨다면 아무 걱정 없이 즐기러 가신 뒤에 읽어주시기 바랍니다.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리뷰: 정체가 폭로된 세계는 룰대로 작동한다이야기는 파 프롬 홈의 마지막에서 곧장 이어집니다. 정체가 폭로된 히어로가 맞닥뜨리는 최악의 상황을, 영화는 놀랄 만큼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집 위에는 헬기가 떠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미스테리오를 추앙하는 무리는 스..
친애하는 영화 팬 여러분, 저는 오늘 영화 킹메이커에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호소하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존경받지만 승리가 없던 정치인과, 그에게 승리를 안기겠다며 그림자에서 나타난 선거 전략가. 설경구와 이선균이 빛과 그림자로 갈라선 이 정치 드라마에 대해, 공약 제시와 후보 검증을 거쳐 정직하게 유세하겠습니다. 본문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킹메이커 영화 리뷰: 독초를 약으로 쓰기로 한 정치인의 이야기킹메이커(kingmaker)란 자신이 왕이 되는 대신 왕을 만들어내는 사람, 현대 정치로 옮기면 후보를 당선시키는 막후의 전략가를 뜻합니다. 영화는 그림자 속의 남자 서창대(이선균)가 빛나는 사람 김운범(설경구)을 찾아가면서 시작됩니다. 존경받는 정치인의 모든 것을 갖췄지만 정작 승리가 없었던..
자백 시사회를 보는 동안 저는 마음속으로 바를 정(正)자를 긋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 속을 때마다 한 획씩. 상영이 끝났을 때 획은 다섯을 넘겼고, 저는 이 카운트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정확한 리뷰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지섭, 김윤진, 나나가 사실상 한 공간에서 밀고 당기는 밀실 미스터리 자백, 10월 26일 개봉작입니다. 반전의 핵심은 끝까지 함구하는 리뷰이니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자백 영화 리뷰: 속을 때마다 바를 정자를 그었다첫 획은 시작 10분 만에 그었습니다. 유민호(소지섭)는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10억을 요구받고 호텔로 향합니다. 그런데 객실에서 그를 기다리던 건 협박범이 아니라 같은 협박을 받고 와 있던 내연녀 김세희(나나). 그리고 누군가의 급습, 정신을 잃었다..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서 저는 이 영화엔 자막이 아니라 통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래가 통역 앱에 중국어를 쏟아내면 건조한 성우 목소리가 대신 전해주듯, 이 영화가 건네는 알 듯 모를 듯한 순간들도 누군가 옮겨줘야 온전히 닿는 영화니까요. 제75회 칸영화제가 박찬욱 감독에게 감독상으로 답한 이 작품을, 제 나름의 통역 노트로 풀어보겠습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헤어질 결심 해석: 자막이 아니라 통역이 필요한 영화통역 노트의 첫 장은 초반의 취조실 장면입니다.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으러 온 서래(탕웨이)에게 형사 해준(박해일)이 묻습니다. 현장 상황을 "말씀으로 해드릴까요, 아니면 사진으로 보여드릴까요." 서래가 처음 "말씀"이라 답하자 해준의 얼굴에 옅은 실망이 스치고, 그..
시사회 표가 생겨서 큰 기대 없이 극장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개봉일을 달력에 적고 있었습니다. 밝은 곳에서는 보지 못하고 어두워지면 조금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하필 왕세자의 마지막 밤을 목격해버린다는 설정. 영화 올빼미는 이 한 줄의 아이러니로 사극 스릴러의 새 문을 열었습니다. 각본을 100번 수정했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었습니다.올빼미 시사회 후기: 소리로 세계를 읽는 오프닝부터 다르다오프닝부터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어의 이형익이 궁에 들일 침술사를 선발하는 블라인드 테스트 장면인데, 수많은 지원자가 낙방하는 가운데 맹인 경수(류준열)가 소리만으로 진단을 내립니다. "발소리를 들어보니 다리를 절고 있었고, 숨소리 간격이 짧고 불규칙한 것이 성격이 조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해 풍을 부른 듯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