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친구의 수학 숙제를 베끼다 들킨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한마디가 치명적이었죠. 답이 틀려서가 아니라 풀이 과정이 토씨 하나까지 같아서 걸린 거란다 — 베낄 거면 좀 바꿔서 베끼지. 조인성, 남주혁 주연의 안시성 리뷰를 쓰며 그 교무실의 공기가 떠올랐습니다. 544만 관객을 모은 이 사극을 향한 혹평의 핵심이 정확히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리 밝혀두면, 이 영화를 추석 오락물로 유쾌하게 즐긴 감상은 정당합니다. 이 글은 그와 별개로 완성도를 따지는 비평이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 역사적 결말이라 스포일러 걱정은 없습니다.안시성 리뷰: 칭찬은 선택과 집중, 그게 전부안시성은 88일간 당 태종의 20만 대군을 막아낸 고구려 안시성 전투의 실화를 그린 사극입니다. 원본 리뷰어의 너..
자이로드롭을 처음 탄 날을 기억합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안전바를 두 손으로 꽉 쥐고도 떨어지는 3초 동안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오는 줄 알았죠. 안전장치가 있어도 그렇게 무서운데 — 세상에는 그 낙하를 카메라를 보며, 연기까지 하면서 해내는 남자가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의 톰 크루즈입니다. 시리즈 6편이자 역대 미션 임파서블 흥행 1위에 오른 이 영화의 제작 비하인드를 총정리해 봅니다. 극 중 반전 인물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리뷰: 전화위복의 오프닝폴아웃은 약 7억 9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전 시리즈 흥행 1위에 오른 작품입니다. 화려한 액션만이 아니라 에단의 인간적 면모 — 동료의 희생에 대한 고뇌, 임무의 중압감..
고백하자면 저는 영화에서 옥의 티를 찾아내는 재미로 보는 부류입니다. 시계 방향이 바뀌어 있다든가, 컵의 물 높이가 오락가락한다든가. 그런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제작 비하인드를 파고들다가 완패를 인정했습니다. 제가 옥의 티라고 확신했던 장면이 알고 보니 치밀한 의도였거든요.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이 만든 이 추격극의 촬영 뒷이야기들을 정리했습니다. 줄거리 언급이 있으니 스포일러에 예민하신 분은 관람 후에 읽으시길 권하고, 영화 자체에 대한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비하인드 총정리: 옥의 티 사냥 완패기영화부터 짧게. 신세계에서 브라더였던 황정민과 이정재가 7년 만에 지독한 적으로 재회한 추격극입니다. 마지막 청부 임무를 끝내고 파나마로 떠나려던 인남(황정민)이 방콕에..
[민원 접수번호 2021-기적호] 귀하께서 접수하신 민원 "영화 기적, 관람할 가치가 있습니까"에 대한 처리 결과를 통지합니다. 극 중 준경이 간이역을 지어달라고 대통령에게 편지를 수십 통 보내듯, 저도 이 영화에 대한 회신을 통지서 형식으로 작성했습니다. 결론부터 고지하면 승인, 관람 추천입니다. 세 번째 검토 항목은 스포일러 열람 구역이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기적 영화 리뷰: 접수된 민원에 회신합니다검토 1항, 사업 개요. 무대는 기차역이 없는 경북 산골 마을입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이 기찻길뿐이라 주민들은 왕복 다섯 시간을 선로 위로 걸어 다니고, 그 위험한 길 위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온 동네입니다. 수학 천재 고등학생 준경(박정민)은 이 마을에 간이역 — 정식 역과 달리 역무원 없..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때우기용으로 골랐습니다. 게임 원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어차피 게임 팬들 위한 팬서비스 아니냐"는 말도 들었거든요. 그런데 오프닝 5분 만에 그 생각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제작비 1,500억 원짜리 액션 어드벤처 《언차티드》,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빨랐습니다.언차티드 오프닝이 이미 물건이었던 이유영화는 인 메디아스 레스(in medias res) 구조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인 메디아스 레스란 사건의 한가운데서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사 기법으로, 고대 서사시에서부터 쓰여 온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원인 설명 없이 결과 한복판부터 던져놓는 것인데, 이 영화는 그걸 아주 물리적으로 구현합니다. 푸른 하늘,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화물들, 그 사이에서 매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은 개봉 직후 글로벌 TOP 10에 진입하며 한국 액션 장르물의 새 기준점을 세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문 대신 인사평가서를 꺼냈습니다. 킬러의 이야기인데, 이상하게도 우리 회사 이야기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길복순 업무역량: 수성펜 한 자루로 만점을 받은 이유오프닝에서 길복순이 수성펜 하나로 목검을 든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저는 속으로 인사평가서의 업무 역량 칸에 만점을 찍었습니다. 아무 무기도 없이 주변 사물을 즉각적으로 전술 도구로 전환하는 이 능력, 액션 장르 용어로는 임기응변 전술 적용(improvisational tactical response)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임기응변 전술 적용이란 사전에 계획된 무기 없이 현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