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저는 영화에서 옥의 티를 찾아내는 재미로 보는 부류입니다. 시계 방향이 바뀌어 있다든가, 컵의 물 높이가 오락가락한다든가. 그런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제작 비하인드를 파고들다가 완패를 인정했습니다. 제가 옥의 티라고 확신했던 장면이 알고 보니 치밀한 의도였거든요.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이 만든 이 추격극의 촬영 뒷이야기들을 정리했습니다. 줄거리 언급이 있으니 스포일러에 예민하신 분은 관람 후에 읽으시길 권하고, 영화 자체에 대한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비하인드 총정리: 옥의 티 사냥 완패기영화부터 짧게. 신세계에서 브라더였던 황정민과 이정재가 7년 만에 지독한 적으로 재회한 추격극입니다. 마지막 청부 임무를 끝내고 파나마로 떠나려던 인남(황정민)이 방콕에..
[민원 접수번호 2021-기적호] 귀하께서 접수하신 민원 "영화 기적, 관람할 가치가 있습니까"에 대한 처리 결과를 통지합니다. 극 중 준경이 간이역을 지어달라고 대통령에게 편지를 수십 통 보내듯, 저도 이 영화에 대한 회신을 통지서 형식으로 작성했습니다. 결론부터 고지하면 승인, 관람 추천입니다. 세 번째 검토 항목은 스포일러 열람 구역이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기적 영화 리뷰: 접수된 민원에 회신합니다검토 1항, 사업 개요. 무대는 기차역이 없는 경북 산골 마을입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이 기찻길뿐이라 주민들은 왕복 다섯 시간을 선로 위로 걸어 다니고, 그 위험한 길 위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온 동네입니다. 수학 천재 고등학생 준경(박정민)은 이 마을에 간이역 — 정식 역과 달리 역무원 없..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때우기용으로 골랐습니다. 게임 원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어차피 게임 팬들 위한 팬서비스 아니냐"는 말도 들었거든요. 그런데 오프닝 5분 만에 그 생각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제작비 1,500억 원짜리 액션 어드벤처 《언차티드》,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빨랐습니다.언차티드 오프닝이 이미 물건이었던 이유영화는 인 메디아스 레스(in medias res) 구조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인 메디아스 레스란 사건의 한가운데서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사 기법으로, 고대 서사시에서부터 쓰여 온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원인 설명 없이 결과 한복판부터 던져놓는 것인데, 이 영화는 그걸 아주 물리적으로 구현합니다. 푸른 하늘,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화물들, 그 사이에서 매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은 개봉 직후 글로벌 TOP 10에 진입하며 한국 액션 장르물의 새 기준점을 세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문 대신 인사평가서를 꺼냈습니다. 킬러의 이야기인데, 이상하게도 우리 회사 이야기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길복순 업무역량: 수성펜 한 자루로 만점을 받은 이유오프닝에서 길복순이 수성펜 하나로 목검을 든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저는 속으로 인사평가서의 업무 역량 칸에 만점을 찍었습니다. 아무 무기도 없이 주변 사물을 즉각적으로 전술 도구로 전환하는 이 능력, 액션 장르 용어로는 임기응변 전술 적용(improvisational tactical response)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임기응변 전술 적용이란 사전에 계획된 무기 없이 현장 ..
솔직히 저는 김선호를 이런 배우로 기억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능과 로맨틱 드라마에서 쌓아온 이미지가 워낙 강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를 보고 나서 제 머릿속에서 그 이미지가 완전히 덮어씌워졌습니다. 갱단 창고에서 조직원들을 순식간에 정리하고는 실실 웃으며 걸어 나오는 장면, 그 첫 장면 하나가 두 시간 내내 저를 좌석 등받이에서 떼어놓았습니다.영화 귀공자 킬러 캐릭터 — 이 남자가 웃는 게 왜 제일 무섭나영화에서 귀공자라고 불리는 킬러는 공감 능력이 결여된 인물 조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낮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윤리적 제약을 무시하는 캐릭터죠. 문제는 이 인물이 그냥 냉혹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명품 신발이 더러워지면 뒤쫓던 표적도 잠시 멈추는 남자, ..
범죄도시 3는 개봉과 동시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전편에 이어 또 한 번의 흥행 신화를 썼습니다.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솔직히 나오면서 드는 감정이 단순히 "재밌었다"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원하긴 했는데, 뭔가 묽어진 느낌이 남았달까요. 그 감각을 짚어보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1,000만이 움직인 이유 — 흥행 배경범죄도시 시리즈는 한국 영화 역사에서 전편 모두 500만 이상을 기록한 거의 유일한 시리즈입니다. 1편이 680만, 2편이 1,269만, 그리고 3편이 1,000만을 넘긴 것은 수치만 놓고 보면 경이로운 일입니다. 개봉 전에 "이번엔 500만도 힘들 것"이라는 냉소가 적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흥행의 핵심은 결국 장르적 신뢰감입니다.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