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자전거를 도둑맞고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못 찾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 거죠. 그러니까 제 자전거는 이 세상 어느 통계에도 잡히지 않은 도난 사건입니다. 암수살인이라는 낯선 제목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암수범죄 — 실제로 일어났지만 신고되지 않거나 인지되지 못해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범죄. 자전거라면 씁쓸하고 말 일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목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김윤석, 주지훈의 이 실화 모티브 수사극을 결말까지 담아 정리합니다. 실존 피해자들이 계신 사건이 바탕인 만큼 이 글은 절제된 서술로 쓰려 합니다.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암수살인 리뷰: 교도소에서 걸려온 전화시작은 한 통의 전화입니다. 부산의 형사 김형민(김윤석)에게 교도소에..
아버지의 손목시계를 물려받던 날을 기억합니다. 비싼 물건도 아닌데 손목에 차는 순간 이상하게 자세가 발라졌죠. 시계란 시간을 가리키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을 품는 물건이라는 걸 그때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영화 공작의 마지막 장면에 손목시계 하나가 등장합니다 — 그 시계가 왜 두 남자의 10년을 통째로 요약하는지, 이 글은 그 답을 향해 갑니다.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의 이 첩보극은 총성 대신 말과 눈빛으로 싸우는 영화이고, 믿기 어렵게도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5점입니다.공작 영화 리뷰: 총성 없는 침투영화는 안대를 쓴 채 신문당하는 한 남자에서 시작합니다. 자백제까지 동원된 심문 — 그는 암호..
생애 첫 투표를 하러 간 날을 기억합니다. 기표소 커튼을 닫고 도장을 꾹 눌러 찍던 몇 초 — 솔직히 그날의 저는 그 종이 한 장이 조금 귀찮기까지 했습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인 줄 알았으니까요. 영화 1987은 그 당연함의 영수증입니다.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강동원 — 쟁쟁한 배우들이 기꺼이 조각이 되어준 723만의 실화. 실존하는 분들의 이야기인 만큼 이 글은 담담하게 쓰려 합니다. 강동원 배우가 맡은 인물의 정체는 큰 스포일러라 본문에서는 접어두고 문답에서만 다루며,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1987 영화 리뷰: 서류 한 장으로 덮으려던 죽음1987년 1월 14일, 남영동의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의 대학생 박종철이 숨을 거둡..
면허를 따고 처음 고속도로 진입로에 올라선 날을 기억합니다. 가속 차선에서 페달을 밟자 계기판 바늘이 낯선 영역으로 넘어가던 순간 — 무섭고, 시끄럽고,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죠. 시속 100킬로미터의 초보에게도 그랬으니 시속 300킬로미터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심장은 어떤 모양일까요. 포드 V 페라리는 그 심장을 두 시간 반 동안 관객의 가슴에 이식하는 영화입니다. 원본 리뷰어의 경고가 재밌습니다.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지만, 자동차를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관람을 재고하라고 — 너무 좋아서 미쳐버릴 수 있으니까. 맷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의 실화 드라마이고,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포드 V 페라리 리뷰: 자존심이 ..
실화 기반 영화를 보고 나면 도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엔딩크레딧이 오르자마자 극장 로비에서 검색창부터 여는 것. 블랙머니는 그 버릇이 역대급으로 도진 영화였습니다. 나라의 은행 하나가 통째로 팔려나간 이야기라는데, 화면 속 숫자들이 진짜라면 잠이 안 올 일이었으니까요. 이 글은 조진웅, 이하늬 주연의 이 영화에 대한 리뷰 겸, 실제 론스타 사건과의 팩트체크 정리입니다. 결말 언급이 있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5점입니다.블랙머니 실화 팩트체크: 검색창을 열게 만드는 영화영화의 골격부터. 성추문 누명을 벗으려 사건을 파던 검사 양민혁(조진웅)이 대한은행 헐값 매각의 실체와 마주하고, 거대 로펌 출신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이하늬)가 그 판의 안팎에서 흔들리는 이야기 — 모델은 2003년 외환은행이 미..
모가디슈를 보고 나서, 저는 관람 후기를 본국으로 타전하는 전문(電文) — 외교 공관이 본국에 보내는 공식 보고 통신문 —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의 한복판, 총성이 도시를 삼키던 밤에 남과 북의 외교관들이 한 지붕 아래 모였던 실화. 이 글에는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은 관람 후에 수신해 주시기 바랍니다.모가디슈 리뷰: 본국으로 타전하는 관람 보고타전 1호, 현지 상황 보고.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UN 가입 지지를 얻어내려는 남북 대사관의 로비전이 한창입니다. "우리 페어플레이 합시다"라며 견제구를 던지는 남측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우리는 당신들보다 20년이나 앞서 개고생하면서 이 아프리카 기반을 닦아왔다"고 받아치는 북측 림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