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이스를 보고 극장을 나서며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방금 나는 두 시간짜리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이수했구나. 보이스피싱으로 30억을 빼앗긴 전직 형사가 중국 콜센터의 심장부까지 파고드는 이 영화는, 복수극의 통쾌함과 예방 교육의 실용성을 겸직하는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그 수강 후기를 교시별로 남깁니다.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보이스 영화 리뷰: 피해자가 어리석어서 당하는 게 아니었다1교시, 미끼의 설계. 전직 형사 서준(변요한)은 건설현장 작업반장으로 일하고 있고, 아내 미연은 식당을 운영합니다. 어느 날 미연에게 전화가 걸려 옵니다. 남편 친구라는 변호사, 남편이 사람이 죽은 사고에 연루되어 경찰서에 있다는 소식, 지금 현장 합의를 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불리해진다는 재촉. 다급해진..
[긴급 공지] 회원 여러분, 배우님이 납치되셨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극장 안에서만입니다. 황정민 팬카페 운영진의 심정으로, 개봉 전 시사회에서 영화 인질을 먼저 보고 온 상황 보고를 올립니다. 러닝타임 94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극장을 나서며 든 첫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황정민 씨, 이 영화 찍느라 정말 죽다 살아나셨겠구나.인질 시사회 후기: 몰래카메라인 줄 알았던 밤의 기록공지 1항, 사건 개요입니다. 영화 발표 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배우 황정민이 편의점에 들렀다가, 자신을 알아보는 진상 팬들과 마주치고, 집 앞에서 납치를 당합니다. 처음엔 유튜버들의 몰래카메라 정도로 여기던 그는 시간이 흐르며 이것이 몸값을 노린 진짜 납치임을 깨닫게 되죠. 자신의 실종을 아무도 모르는 상황, 한 치 앞을 알 ..
모가디슈를 보고 나서, 저는 관람 후기를 본국으로 타전하는 전문(電文) — 외교 공관이 본국에 보내는 공식 보고 통신문 —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의 한복판, 총성이 도시를 삼키던 밤에 남과 북의 외교관들이 한 지붕 아래 모였던 실화. 이 글에는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은 관람 후에 수신해 주시기 바랍니다.모가디슈 리뷰: 본국으로 타전하는 관람 보고타전 1호, 현지 상황 보고.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UN 가입 지지를 얻어내려는 남북 대사관의 로비전이 한창입니다. "우리 페어플레이 합시다"라며 견제구를 던지는 남측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우리는 당신들보다 20년이나 앞서 개고생하면서 이 아프리카 기반을 닦아왔다"고 받아치는 북측 림용수..
친애하는 영화 팬 여러분, 저는 오늘 영화 킹메이커에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호소하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존경받지만 승리가 없던 정치인과, 그에게 승리를 안기겠다며 그림자에서 나타난 선거 전략가. 설경구와 이선균이 빛과 그림자로 갈라선 이 정치 드라마에 대해, 공약 제시와 후보 검증을 거쳐 정직하게 유세하겠습니다. 본문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킹메이커 영화 리뷰: 독초를 약으로 쓰기로 한 정치인의 이야기킹메이커(kingmaker)란 자신이 왕이 되는 대신 왕을 만들어내는 사람, 현대 정치로 옮기면 후보를 당선시키는 막후의 전략가를 뜻합니다. 영화는 그림자 속의 남자 서창대(이선균)가 빛나는 사람 김운범(설경구)을 찾아가면서 시작됩니다. 존경받는 정치인의 모든 것을 갖췄지만 정작 승리가 없었던..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서 저는 이 영화엔 자막이 아니라 통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래가 통역 앱에 중국어를 쏟아내면 건조한 성우 목소리가 대신 전해주듯, 이 영화가 건네는 알 듯 모를 듯한 순간들도 누군가 옮겨줘야 온전히 닿는 영화니까요. 제75회 칸영화제가 박찬욱 감독에게 감독상으로 답한 이 작품을, 제 나름의 통역 노트로 풀어보겠습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헤어질 결심 해석: 자막이 아니라 통역이 필요한 영화통역 노트의 첫 장은 초반의 취조실 장면입니다.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으러 온 서래(탕웨이)에게 형사 해준(박해일)이 묻습니다. 현장 상황을 "말씀으로 해드릴까요, 아니면 사진으로 보여드릴까요." 서래가 처음 "말씀"이라 답하자 해준의 얼굴에 옅은 실망이 스치고, 그..
극장 티켓값이 14,000원까지 오른 시대, 개봉일을 못 잡은 한국 영화들이 넷플릭스 앞에 줄을 서고 있습니다. 설경구와 박해수의 만남, 첩보 누아르라는 장르. 이 조합에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죠. 그런데 저는 야차를 다 보고 나서 오락실 두더지 게임기 앞에 선 기분이 됐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내부 스파이를 찾는 동안, 저는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문제점 두더지를 잡느라 바빴거든요.야차 리뷰: 인트로만큼은 진짜였다공정하게 좋았던 것부터 적겠습니다. 인트로는 진짜 괜찮았습니다. 네온사인 가득한 거리, 배신자를 무대포로 추격하는 야차 지강인(설경구), 그리고 실제 총기를 사용해 촬영했다는 말이 납득될 만큼 묵직하게 다가오는 총성. 배신자를 끝까지 쫓아가 그 자리에서 처리하는 오프닝 시퀀스 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