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에는 가훈처럼 내려오는 잔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뭐든 해도 되는데 보증만은 서지 마라. 명절마다 듣던 그 말의 최악 시나리오를 두 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면 아마 이렇게 될 겁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애인의 사채 보증을 서줬다가 인생이 통째로 잡힌 남자와, 돈가방 하나를 둘러싸고 각자의 지푸라기에 손을 뻗는 짐승들의 이야기입니다.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윤여정이 나오고, 이 글은 결말과 모든 인물의 운명을 담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리뷰: 사우나 캐비닛의 돈가방시작은 돈가방입니다. 평택의 사우나에서 일하는 중만(배성우)이 오픈 준비 중 캐비닛에서 명품 가방 하나를 발견합니다. 열어 보니 현금 다발. 치매를 ..
첫 직장에 다니던 시절, 승진 요건에 점수가 걸려 있어 새벽 토익 학원을 끊은 적이 있습니다. 출근 전 두 시간, 눈도 못 뜬 채 문법 문제를 풀면서 자주 생각했죠. 이 점수가 대체 내 일과 무슨 상관인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그 새벽의 질문을 1995년으로 가져간 영화입니다. 고아성, 이솜, 박혜수의 말단 삼총사가 토익책과 함께 회사의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이고, 이 글은 결말까지 담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리뷰: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1995년의 대기업 삼진그룹. 상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8년을 일해도 말단, 유니폼을 입고 커피를 타고 재떨이를 비우는 게 업무인 시대입니다. 회사가 내건 조건은 하나. 토익 600점을 넘기면 상고 출신..
주말 밤, 제 방을 옛날식 동시상영관으로 개조했습니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떡밥 천국 미스터리 2본 동시상영 —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보는 여자의 이야기 '내일의 기억'과, 자고 일어났더니 인생이 뒤바뀐 남자의 이야기 '사라진 시간'입니다. 두 편 모두 결말은 철저히 함구하는 스포일러 없는 프로그램이니, 관람 전이신 분도 안심하고 입장하셔도 됩니다.미스터리 영화 추천 2편: 동시상영관 프로그램을 엽니다두 작품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묶는 열쇳말은 떡밥, 그러니까 이야기 곳곳에 던져둔 복선을 나중에 회수하는 재미입니다. 미스터리 장르의 만족도는 결국 이 회수의 설계에 달려 있는데, 오늘의 두 편은 그 설계 방식이 정반대라서 나란히 보면 더 재밌습니다. 1부 내일의 기억이 "범인은 누구인가"를 쫓는 정통 반..
자백 시사회를 보는 동안 저는 마음속으로 바를 정(正)자를 긋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 속을 때마다 한 획씩. 상영이 끝났을 때 획은 다섯을 넘겼고, 저는 이 카운트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정확한 리뷰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지섭, 김윤진, 나나가 사실상 한 공간에서 밀고 당기는 밀실 미스터리 자백, 10월 26일 개봉작입니다. 반전의 핵심은 끝까지 함구하는 리뷰이니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자백 영화 리뷰: 속을 때마다 바를 정자를 그었다첫 획은 시작 10분 만에 그었습니다. 유민호(소지섭)는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10억을 요구받고 호텔로 향합니다. 그런데 객실에서 그를 기다리던 건 협박범이 아니라 같은 협박을 받고 와 있던 내연녀 김세희(나나). 그리고 누군가의 급습, 정신을 잃었다..
솔직히 저는 베테랑을 두 번 볼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개봉 때 극장에서 이미 봤고, 충분히 즐겼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방구석1열에서 유아인 편을 보고 난 뒤 다시 틀었다가, 처음 봤을 때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눈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가 1,300만을 넘길 수 있었던 이유가, 재관람하면서 비로소 납득이 됐습니다.실존 모티브를 알고 보면, 분노의 결이 달라집니다혹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조태오가 배기사에게 글러브를 쥐여주고 돈을 내던지는 장면에서 "저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야?" 하는 생각이 드셨습니까? 저는 처음엔 그냥 극적 장치라고 봐 넘겼습니다.그런데 재관람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이 장면의 모티브가 실제 사건이라는 사실을요. 국내 대형 그룹 오너 일가의 사촌이 폭행을 행사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