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증권 계좌를 만들던 날을 기억합니다. 앱을 깔고, 만 원을 이체해보고, 문자로 날아온 입금 알림을 괜히 두 번 확인했죠. 그 소심한 만 원의 기억 때문에 영화 돈의 한 장면에서 웃음이 났습니다. 6억 7천만 원이 든 계좌가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아 제 계좌로 만 원을 이체해보고서야 잔액 앞에서 몸을 떠는 주인공 — 부정한 돈의 첫 실감이 고작 만 원짜리 문자라는 그 디테일이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람 냄새 나는 순간입니다.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의 증권 범죄 스릴러이고, 결말은 이 글에 적지 않았으니 관람 전이어도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돈 영화 리뷰: 여의도 생태 보고서영화는 여의도의 생태 보고서로 문을 엽니다. 숫자 뒤에 0이 열 개면 100억. 하루 평균 7조 ..
어릴 때부터 '만약에' 놀이를 좋아했습니다. 만약에 임진왜란 때 조선에 기관총이 있었다면, 만약에 내가 그때 그 학원을 안 갔다면. 영화판에서는 이 놀이를 What if, 가상 역사물이라 부르죠. 강철비2 정상회담은 국가 단위의 만약에 놀이입니다. 만약에 남·북·미 평화협정 서명 직전에 쿠데타가 터지고 세 정상이 통째로 핵잠수함에 갇힌다면. 정우성, 곽도원, 유연석이 그 만약에를 연기하는 영화이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5.5점입니다. 결말은 이 글에 적지 않았으니 관람 전이어도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강철비2 정상회담 리뷰: 국가 단위의 만약에 놀이이 영화의 규칙부터. 시대 배경과 국제 정세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그대로 가져오고, 그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만 가상의 시나리오로 써 내려갑니다. 마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다시 보고 온 밤, 저는 헌책방 주인이 되어 추천 서가 카드를 쓰기로 했습니다. 버려진 책들을 주워 모아 세상을 배운 여자와, 헌책방을 뒤져 그녀가 사랑하는 소설의 후속작을 구해다 준 남자의 이야기이니, 이 영화는 헌책방 서가에 꽂혀야 마땅하니까요. 2003년 일본 원작의 결말 포함 해석과 함께, 한지민·남주혁 주연 한국판 조제 이야기까지 담았습니다. 원작에 대한 저의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 명작 칸입니다.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해석: 헌책방 서가 카드를 씁니다서가 카드 앞면, 줄거리 요약입니다. 마작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츠네오는 새벽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듣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언덕에서 굴러 내려온 그 유모차와 마..
오늘 합평회 — 여러 사람이 한 작품을 함께 읽고 평을 나누는 문예창작 수업의 전통 — 에 올리는 작품은 '장르만 로맨스'입니다. 7년째 한 줄도 못 쓴 소설가가 주인공인 영화라, 발제문 형식으로 후기를 정리했습니다. 시사회에서 먼저 읽고 왔고, 이 작품은 개봉 하루 만에 이터널스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합평회 규칙에 따라 결말 낭독은 생략하니, 스포일러 걱정 없이 읽으셔도 됩니다.장르만 로맨스 후기: 합평회에 올리는 발제문주인공 설정부터 발제합니다. 7년째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소설가 김현(류승룡)은 요즘 낚시로 소일하는 중입니다. 출판사 대표이자 절친인 순모가 "투자자들 난리 났다, 밑에서 젊은 애들이 치고 올라온다"며 들들 볶아도 요지부동이던 그가, 스승의 부고 소식에 부랴부랴 달..
오랜만에 극장 가서 후회 안 했다는 말을 정말 오랜만에 할 수 있었습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F1 더 무비, 전 세계에서 90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2편 제작까지 확정된 작품인데 — 직접 극장에서 봐야 이유를 알겠더군요. 레이싱에 큰 관심이 없던 저도, 콕핏 시점에서 코너를 파고드는 그 장면에서 몸이 같이 쏠렸습니다.극장에서 봐야 했던 이유, 현장감이 전부였습니다요즘 웬만한 영화는 OTT로 보는 게 솔직히 더 편합니다. 굳이 극장까지 나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일시정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F1 더 무비는 집에서 보면 절반도 못 느낀다는 걸 제가 직접 봐봐서 압니다.이 영화의 핵심은 실제 F1 그랑프리(Grand Prix) 현장에서 촬영됐다는 데 있습니다. 그랑프리란 포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