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던 동료가 갑작스레 회사를 떠난 뒤, 우리 팀은 그 빈 책상을 한동안 치우지 못했습니다. 머그컵과 달력이 그대로인 자리 — 치우자니 야박하고 두자니 아픈 그 책상 앞에서 우리는 꽤 오래 서성였죠.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그 서성임을 블록버스터의 규모로 겪어야 했던 영화입니다. 티찰라를 연기한 채드윅 보스먼이 2020년 우리 곁을 떠났고, 마블은 그 빈자리 앞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미리 분명히 해둡니다. 이 영화를 보스먼을 향한 추모로 받아들이고 눈물로 배웅한 관객들의 감상은 온전히 정당합니다. 이 글이 옮기는 혹평의 과녁은 이 영화의 정체성이나 재현이 아니라 각본과 완성도입니다. 결말과 쿠키까지 다루는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 원본 리뷰어의 명시 평점을 따라, 제 점수는 ..
샘 레이미의 1편을 극장에서 본 뒤로 20년, 저는 이 시리즈의 오래된 동창입니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저에게 영화라기보다 동창회 초대장이었고, 극장을 나서며 방명록을 적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페이즈4의 마블을 걱정하며 들어갔다가, 그 걱정을 비웃는 최고의 모습을 보고 나왔습니다. 이 글에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안 보셨다면 아무 걱정 없이 즐기러 가신 뒤에 읽어주시기 바랍니다.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리뷰: 정체가 폭로된 세계는 룰대로 작동한다이야기는 파 프롬 홈의 마지막에서 곧장 이어집니다. 정체가 폭로된 히어로가 맞닥뜨리는 최악의 상황을, 영화는 놀랄 만큼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집 위에는 헬기가 떠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미스테리오를 추앙하는 무리는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