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국어사전을 받았습니다. 벽돌만 한 두께에 손가락이 미끄러지던 얇은 종이, 모르는 단어를 찾으면 왠지 어른이 된 것 같던 기분. 그 사전이 책장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다는 걸 잊고 살다가, 영화 말모이를 보고 나서야 다시 꺼내 먼지를 닦았습니다. 이 흔한 책 한 권이 누군가에겐 목숨과 바꾼 물건이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유해진과 윤계상이 나오는 이 영화의 결말과 실제 역사까지 담은 리뷰이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말모이 영화 리뷰: 까막눈과 사전배경은 일제의 탄압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0년대입니다.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지 않으면 입학도 취직도 막히던 창씨개명의 시절, 일제는 민족의 근간인 말과 글을 지우기 위해 조선어 사용 자체를 금지해갑니다. 그 시대의 경성에 까막눈..
학창 시절 국사 시험을 앞두고 이렇게 외웠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 시험지에 적을 두 줄이 전부였던 그 역사가 사실은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었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실감했죠. 그래서 시작 전에 분명히 해둡니다. 이 글은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이 출연한 영화 봉오동 전투에 대한 리뷰이지, 1920년 6월 우리 독립군이 거둔 첫 대승이라는 역사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그 역사는 후손으로서 고개 숙일 일이고, 아쉬운 것은 오직 그 역사를 담은 그릇으로서의 영화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이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봉오동 전투 영화 리뷰: 울컥했던 기획, 흔들린 기본기기대는 컸습니다. 원신연 감독이 이 영화를 두고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
2014년 명량을 극장에서 봤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대사에 소름이 돋았던 그날부터 8년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한산도 대첩을 다룬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에 관람 전 제 나름의 브리핑을 시작했습니다. 진법, 수읽기, 그리고 만만치 않은 맞수. 이번엔 감정의 전투가 아닌 두뇌의 전투입니다.한산 용의 출현 관람 전 브리핑: 와키자카라는 맞수를 공부하다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명량에서 이순신의 상대였던 구루지마는 저돌적인 해적 대장 이미지였는데, 한산의 맞수로 등장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결이 다릅니다. 성을 지키는 대신 과감하게 나와 더 큰 것을 얻는 수를 아는 장수, 육전에서 기습 작전으로 조선 육군을 격파한 이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한산도 대첩이 일어나기 불과 한..
결말을 이미 아는 영화가 과연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저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 실제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메모장에 기대 체크리스트 세 줄을 적어두고 들어갔는데, 두 시간 반이 지나고 나서야 그 질문이 얼마나 틀렸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완결편, 노량 죽음의 바다 이야기입니다.밤바다가 전쟁터가 되면 — 야간해전 연출의 힘명량과 한산이 한낮의 전투였다면, 노량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둠 속에서 싸웁니다. 제가 직접 스크린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이건 낮 전투로는 절대 못 만들었을 긴장감이다"였습니다. 흙처럼 짙은 어둠 속에서 적의 등불을 찾아 포격 조준을 맞추는 장면, 그 한 컷이 이 영화가 앞선 두 편과 완전히 다른 문법으로 만들어졌음을 알려줍니다.야간해전(夜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