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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리뷰 (완성도, 인물설정, 국뽕신파)

Stv 2026. 9. 14. 16:20

목차


    학창 시절 국사 시험을 앞두고 이렇게 외웠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 시험지에 적을 두 줄이 전부였던 그 역사가 사실은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었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실감했죠. 그래서 시작 전에 분명히 해둡니다. 이 글은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이 출연한 영화 봉오동 전투에 대한 리뷰이지, 1920년 6월 우리 독립군이 거둔 첫 대승이라는 역사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그 역사는 후손으로서 고개 숙일 일이고, 아쉬운 것은 오직 그 역사를 담은 그릇으로서의 영화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이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



    봉오동 전투 영화 리뷰: 울컥했던 기획, 흔들린 기본기

    기대는 컸습니다. 원신연 감독이 이 영화를 두고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일궈낸 첫 승리의 이야기를 담겠다고 했을 때 저도 조금 울컥했거든요. 총칼을 들고 골짜기에서 죽음을 각오했던 건 교과서의 두 줄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제라도 그분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온다니(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그러나 개봉 첫날 극장을 나서며 내린 결론은, 별로였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평할 때 가장 먼저 볼 것은 완성도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제대로 이어지는지, 인물의 설정과 빌드업이 관객을 설득하는지, 톤이 일관되게 유지되는지, 인물과 사건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타당한 이유로 있는지. 기본기 훈련이 안 된 화가의 그림이 좋을 수 없고 턴 연습이 안 된 발레리나의 공연이 좋을 수 없듯, 이 기본이 갖춰진 다음에야 주제와 예술성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 기준에서 봉오동 전투는 기본기가 크게 흔들리는 영화입니다.

    먼저 이야기가 허술합니다. 무기를 운반하는 독립군의 이야기가 흐르다 민간인 학살 장면이 불쑥 끼어들고, 느닷없이 자금조달책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작 그 인물은 존재 이유도 분명치 않은 채 중간에 사라집니다. 붙잡혀 온 어린 일본군 포로는 영화가 써먹고 싶은 대목에만 쓰이다 풀려나며 퇴장하고, 학살에서 살아남은 소년은 밥 한 끼를 지어주고는 미묘한 여운만 남기고 사라지죠. 인물들이 필요에 따라 소환됐다 증발하는 에피소드의 파편들 — 하나의 강처럼 흘러야 할 이야기가 웅덩이들로 고여 있는 겁니다.

    역사는 진짜였고 기획은 뭉클했으나, 그것을 담은 그릇의 이음새가 성기다 — 이 리뷰의 아쉬움은 전부 그 그릇을 향합니다.

    혹평 이유: 목적을 잃은 전투, 내면 없는 인물

    더 결정적인 건 전투의 설계입니다. 영화 내내 쉬지 않고 전투가 벌어지는데, 지금 이 싸움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떤 작전의 어느 단계인지가 모호합니다. 관객 대부분이 아는 건 독립군이 일본군을 골짜기 깊숙이 유인해 포위했다는 큰 그림까지라, 마지막 유인 작전은 이해되지만 그 앞의 크고 작은 전투들은 목적을 모른 채 소음처럼 지나갑니다. 봉오동 계곡이 왜 사수해야 할 요충지인지도 두루뭉술하게만 설명되어, 승리의 순간에 터져야 할 기쁨이 반감되죠. 전투 영화에서 관객이 전투를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명백히 연출의 책임입니다.

    인물은 더 아쉽습니다. 황해철(유해진)은 어린 시절 일본군에게 동생을 잃은, 마음 따뜻하고 칼을 잘 쓰는 독립군 — 설명이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가 어떤 인생을 거쳐 독립군이 되었는지,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는 무엇인지 영화는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의 칼에 새겨진 문구, 어떤 이의 죽음은 태산과 같이 무겁고 어떤 이의 죽음은 깃털과 같이 가볍다가 클로즈업되는 순간은 가장 비장해야 할 장면인데, 내면이 쌓이지 않은 탓에 그 아름다운 문구가 마음에 얹히지 못합니다. 냉철한 분대장 이장하(류준열)도 그를 헤아릴 사연을 제공받지 못해 감동 대신 감정 없는 기계처럼 다가오고, 마적에서 독립군이 된 병구(조우진)의 전향에는 계기가 없습니다. 이름 없는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하겠다던 기획이 무색하게, 자극적인 장면들을 걷어내면 독립군들에 대해 기억나는 게 감자를 고향 사투리로 뭐라 부르는지 옥신각신하던 장면 정도라는 건 뼈아픈 성적표입니다.

    일본군 묘사도 짚어야 합니다. 이 영화의 일본군은 무조건 악하고 무조건 어리석은, 옛 반공만화 속 늑대 같은 몰개성의 기호입니다. 프로파간다가 아닌 극영화라면 적조차 입체적이어야 긴장이 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납작한 묘사 탓에 관객이 느껴야 할 분노마저 덜해집니다. 잔인함에 냉철한 지성까지 갖춘 복합적인 적이었다면 더 깊은 울분을 느꼈을 겁니다. 악을 우습게 그리는 것은 그 악과 싸운 사람들의 무게마저 가볍게 만드니까요. 그리고 국뽕과 신파.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슬픔의 정조는 그 자체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둘이 흥행용 머니코드로 개연성 없이 삽입되는 경우 — 한국인이라면 응당 감동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아무 데서나 울라고 다그치는 장면들입니다. 이 영화는 그 코드를 적극적으로 썼고, 그 선택이 영화 전체의 수준을 함께 끌어내렸습니다.


    볼만한가: 그래도 남는 것들

    공정하게 남는 것도 적습니다.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이 헐거운 판에서도 빛납니다. 유해진의 칼과 류준열의 질주는 몸으로 때운 티가 역력하고, 조우진의 능청은 무거운 톤 사이의 숨구멍이 됩니다.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담은 화면과 몇몇 카메라 구도는 깜짝 놀랄 만큼 좋고요. 다만 이 장점들이 단점을 덮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점수는 4점. 개봉 당시의 시국이 밀어 올린 관심에 완성도가 응답하지 못한 영화이고,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이 소재는 이 정도 그릇에 담기엔 너무 귀했으니까요. 전투 장면을 조금 줄이고 그 자리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웠다면 — 해철이 어떻게 칼을 들게 됐는지, 장하가 무엇을 삼키며 뛰는지 — 마지막 골짜기의 함성은 지금보다 몇 배는 뜨거웠을 겁니다.


    두 가지 문답

    Q. 역사 속 봉오동 전투는 어떤 사건인가요?

    A. 1920년 6월, 만주 봉오동 골짜기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연합 부대가 추격해 온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크게 물리친 전투입니다.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첫 대규모 승리로 기록되어 이후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지는 무장 독립운동의 전환점이 되었죠. 영화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그 역사만큼은 꼭 찾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Q. 혹평인데, 그래도 볼 만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A.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세 배우의 얼굴을 아끼는 분, 그리고 이 시대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처음 접해보려는 분에게는 입구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산천의 풍광과 전투의 물량감도 큰 화면 값은 하고요. 다만 정교한 전쟁 영화나 인물 드라마를 기대하신다면, 기대치를 낮추고 입장하시는 게 맞습니다.


    두 줄의 뒤에서

    극장을 나서며 국사책의 그 두 줄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 그 한 줄 뒤에 서 있던 이름 없는 얼굴들은, 언젠가 더 좋은 영화로 다시 불려 나올 자격이 있습니다. 그날의 승리가 진짜였던 만큼, 그분들을 담을 영화도 진짜여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 혹평은 원망이 아니라 주문에 가깝습니다. 다음에 이 골짜기의 이야기가 다시 만들어진다면, 전투보다 먼저 사람을 찍어달라는 것. 그때는 기꺼이 개봉 첫날의 극장에 다시 앉겠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RBLeCbrq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