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액션 영화를 볼 때 저는 항상 서스펜스(suspense), 즉 다음 장면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긴장감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여기서 서스펜스란 단순히 무서운 게 아니라, 관객이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서 화면에서 눈을 못 떼게 만드는 심리적 긴장 상태를 뜻합니다. 그런데 히트맨은 처음부터 서스펜스를 포기한 영화입니다. 대신 그 자리에 블랙 코미디(black comedy) 문법을 밀어 넣었습니다. 블랙 코미디란 죽음, 폭력, 위험 같은 어두운 소재를 웃음의 재료로 역이용하는 장르적 기법을 말합니다.
주인공 준이 술에 취한 채로 자신이 실제 참여했던 극비 작전, 방패연 프로젝트를 웹툰 소재로 연재해버리는 장면이 이 영화의 중심축입니다. 방패연 프로젝트는 인간 병기를 육성하는 국가 기밀 프로그램으로, 영화 속에서 이 설정이 밖으로 새어나가면서 국정원과 테러 조직이 동시에 준을 쫓기 시작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처음 소리 내서 웃은 건, 연재 실수를 뒤늦게 발견한 준이 황급히 화면을 끄려 하지만 이미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리고 있는 그 타이밍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느낀 건, 허점을 관객이 먼저 발견하게 내버려 두면서 그 허점 자체를 웃음 장치로 쓰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권상우의 연기가 이 구조를 실제로 작동시킵니다. 최정예 암살 요원일 때의 냉정한 눈빛과, 아내한테 등짝을 맞고 쩔쩔매는 찌질한 가장의 표정 사이를 오가는 낙차가 이 영화가 노리는 웃음의 팔할입니다. 황우슬혜가 연기한 아내 캐릭터도 여기서 제 역할을 합니다. 세계 최강 킬러를 아내의 등짝 스매싱 한 방에 무너뜨리는 그림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기대가 생기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 방패연 프로젝트 설정: 인간 병기 육성 국가 기밀 프로그램으로, 이 폭로가 영화 전체 갈등의 도화선
- 블랙 코미디 문법: 극비 과거를 웹툰으로 연재하는 황당한 전제를 영화 스스로 인식하면서 밀어붙임
- 권상우의 이중 연기: 냉혹한 요원과 눌린 가장 사이의 낙차가 이 영화의 핵심 웃음 장치
- 만화 컷과 실사 액션의 교차 편집: 유치할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보면 의외로 잘 맞아떨어지는 연출
영화 장르의 혼합 방식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코미디와 액션을 결합한 장르(액션 코미디)는 관객의 감정 전환 속도가 빠를수록 만족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히트맨은 이 원리를 직관적으로 따르고 있고, 제가 경험상 이게 실제로 맞다고 느낀 영화이기도 합니다.
요약: 히트맨은 첩보물의 서스펜스 대신 블랙 코미디 문법을 선택했고, 권상우의 이중 연기가 그 선택을 실제로 작동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