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양복점의 단골로서 수선 주문서를 접수합니다. 킥애스와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로 저를 단골로 만든 매튜 본 감독이 4년 만에 들고 온 프리퀄,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결론부터 적으면 제 평점은 10점 만점에 4점이고, 그래도 못 입을 옷은 아니라는 게 검수 소견입니다. 어디서 봉제가 틀어졌는지, 주문서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글에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리뷰: 단골이 접수한 수선 주문서
의뢰 경위부터 적습니다. 저는 매튜 본의 오랜 손님입니다. 킥애스: 영웅의 탄생은 지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물 중 하나이고, 만화적 연출과 캐릭터의 원초적 매력을 정확히 이해하는 그의 감각은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절정을 찍었습니다. 그 정장의 핵심은 원단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고급을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는 유머. 근사하게 차려입은 영국 신사가 뒷골목 용병처럼 난폭하게 싸우고, 고급 쟁반 위에 햄버거를 올려두고, 최고급 양복점 뒤에 스파이 본부를 숨겨두는 것.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격언을 내뱉은 신사가 가장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그 비꼼이야말로 킹스맨이었습니다. 폭력을 하나의 오락으로 즐기게 만들어놓고 "너희도 사실 이런 거 좋아하잖아" 하고 쿨하게 웃는 태도까지요.
그런데 두 번째 옷, 골든 서클에서 봉제가 틀어졌습니다. 전작의 매력을 살리지 못했고 B급 감성을 과하게 밀어붙였다는 혹평. 그리고 4년 만에 매튜 본은 시계를 1차 세계대전까지 되감은 프리퀄(prequel) — 본편보다 앞선 시점의 기원을 다루는 전편 — 을 들고 왔습니다(출처: IMDb — The King's Man).
검수 결과, 원단 자체는 고급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묵직한 시대 배경, 레이프 파인즈라는 최고급 소재, 정성 들인 시대 재현까지. 문제는 재단입니다. 이 옷은 톤이 전혀 다른 두 벌을 한 벌로 이어 붙였습니다. 한쪽은 아내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막으려는 옥스퍼드 공작의 숭고한 반전(反戰) 드라마이고, 다른 한쪽은 라스푸틴이 날뛰는 매튜 본식 광기입니다. 이게 킹스맨인가, 이게 매튜 본의 영화인가. 상영 내내 그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약: 킹스맨의 본질은 고급을 끌어내리는 유머였는데, 이번 옷은 숭고한 드라마와 B급 광기라는 톤이 다른 두 벌을 이어 붙인 재단입니다.
혹평 이유: 과잉 교정이 낳은 봉제 불량들
근본 원인은 과잉 교정으로 진단합니다. 골든 서클이 너무 가볍다고 혼나자, 매튜 본은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반전 메시지를 숭고한 것으로 격상시키면서 시리즈 특유의 웃음기가 걷혔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지루한 전개입니다. 전작들이 폭력에 대한 엄숙주의를 비꼬며 쿨함을 만들었다면, 이번 편은 스스로 엄숙해져 버린 셈입니다.
설정의 원단도 검수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킹스맨의 기원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 — 에 두는데, 곱씹을수록 갸웃해집니다. 산업혁명기 영국 노동자들이 지옥 같은 삶을 견디던 시절, 당시 보고서를 다 신뢰할 수는 없다 해도 도시 노동자의 평균수명이 십 대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의 시대에, 전쟁으로 젊은이들을 내몰던 계급이 명예를 말하는 그림을 영화는 비판적 거리 없이 숭고하게 그립니다.
아들 콘래드의 재단은 이 옷의 가장 큰 봉제 불량입니다. 그가 기이할 정도로 전쟁에 집착하는 인물로 그려진 이유는 하나, 그가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희생이 있어야 "전쟁은 사라져야 한다"는 공작의 행동 원리가 정당화되고, 공작이 휘두르는 폭력이 '좋은 폭력'이 되는 구조. 아내에 이어 아들까지 주인공 각성의 연료로 태우는 이 작위적인 설계는, 폭력을 쿨한 오락으로 소비하게 만들던 시리즈의 태도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게다가 콘래드가 전장에서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장면은, 하도 어이가 없어 이게 진짜 벌어진 일인지 화면을 의심해야 했을 정도입니다.
잔손질 목록도 깁니다. 마타 하리와 레닌 같은 역사 인물들의 활용은 실제 역사가 훨씬 더 참혹했다는 걸 아는 관객에게 오히려 축소처럼 보이고, 아무리 먼 거리라도 샤우팅 한 번이면 의사가 전달되는 장면들, 영화 1917의 잔향이 느껴지는 참호 장면들, 레이프 파인즈를 데려다 놓고 그 매력을 다 쓰지 못한 부분들까지. 참호전에 내몰린 젊은이들의 비극을 정면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절정이 풍자에 머무는 아쉬움도 견적서에 올립니다.
과잉 교정: 골든 서클 혹평을 의식해 진지함을 택했고, 웃음기와 함께 정체성이 걷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원 설정 — 시대의 그늘을 지운 채 숭고하게만 그린 원단
콘래드 = 공작의 각성과 '좋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소모되는 도구적 캐릭터
역사 인물 활용의 애매함과 잔손질 목록 — 완성도의 실밥들
요약: 혹평의 뿌리는 과잉 교정입니다. 진지해지기로 한 선택이 시리즈의 정체성을 걷어냈고, 그 빈자리를 작위적 희생 서사가 채웠습니다.
라스푸틴 명장면: 혼자 튀는 광기의 원단 한 조각
이 옷에서 유일하게 눈부신 원단 조각을 이제 검수합니다. 라스푸틴 시퀀스입니다. 러시아 황실을 주무르는 이 괴승은 낯 뜨거운 주술 치료로 공작 일행을 당황시키더니, 러시아 전통춤을 기반으로 한 기괴하고 우아한 액션을 폭발시킵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주술에서 춤사위 같은 격투로 이어지는 그 순간, 저는 극장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고 "그래, 이게 매튜 본이지" 싶은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예고편이 온통 라스푸틴이었던 이유, 그리고 관객들이 이 장면만큼은 이견 없이 꼽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재보면, 이 명장면이야말로 매튜 본의 딜레마를 드러냅니다. 라스푸틴 장면은 매튜 본의 스타일에, 킹스맨의 스타일에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하지만 숭고한 반전 드라마로 재단된 이 영화의 전체 톤에는 어울리지 않아, 혼자서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 장면이 즐거울수록 나머지가 심심해지는 역설. 감각은 여전히 대단한데 그 감각을 펼칠 옷을 스스로 잘못 고른 셈입니다.
균형을 위해 마지막 검수 소견을 적습니다. 전작 팬의 기대를 내려놓고 보면 이 영화는 그럭저럭 볼만합니다. 지루한 대목과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잘 만든 영화라 평할 수는 없지만, 보는 내내 내상을 입을 정도의 졸작도 아닙니다. 시대극 프리퀄로서의 때깔과 라스푸틴 시퀀스 하나만으로도 최소한의 값은 합니다. 제 평점은 10점 만점에 4점. 매튜 본이 감을 잃었다기보다, 남의 평가에 맞춰 자기 몸을 줄이려다 균형을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요약: 라스푸틴 시퀀스는 이 영화 유일의 "매튜 본이다" 싶은 명장면이지만, 그 장면이 혼자 튄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의 진단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킹스맨 전작들을 안 보고 퍼스트 에이전트를 봐도 되나요?
A. 됩니다. 1차 세계대전 시기 킹스맨 조직의 탄생을 다루는 프리퀄이라 이야기 자체는 독립적입니다. 다만 이 영화의 아쉬움을 논하는 지점들은 대부분 전작의 매력과의 비교에서 나오므로, 시리즈의 진짜 재미를 알고 싶다면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부터 보시길 권합니다.
Q. 라스푸틴 역 배우는 누구인가요?
A. 리스 이판입니다. 노팅 힐의 괴짜 룸메이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리저드 등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로, 이번 라스푸틴 연기는 이 영화 최고의 화제이자 사실상 원톱 존재감입니다. 그가 등장하는 구간과 퇴장한 이후의 영화 온도 차가 클 정도입니다.
Q. 킹스맨 시리즈 보는 순서가 어떻게 되나요?
A. 개봉 순서는 시크릿 에이전트(2015) → 골든 서클(2017) → 퍼스트 에이전트(2021)이고, 시간대 순서로는 퍼스트 에이전트가 가장 앞입니다. 입문이라면 개봉 순서를 추천합니다. 시리즈의 개성이 가장 선명한 1편을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 이 시리즈를 즐기는 정석입니다.
Q.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쿠키 영상이 있나요?
A. 있습니다. 악의 조직이 새 조직원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이후 세계사의 비극과 연결되는 실존 인물이 등장해 속편의 방향을 암시합니다. 역사와 픽션을 섞는 이 시리즈의 방식이 응축된 쿠키이니 끝까지 보고 나오시길 권합니다.
결론
수선 주문서를 마감합니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고급 원단으로 톤이 다른 두 벌을 이어 붙인 옷입니다. 숭고해지려다 정체성을 잃었고, 그 와중에 라스푸틴이라는 눈부신 원단 한 조각이 혼자 빛납니다. 제 평점은 10점 만점에 4점. 다만 전작의 기대를 내려놓으면 그럭저럭 입을 만한 옷이라는 소견도 함께 남깁니다.
수선 소견의 마지막 줄은 감독님께 씁니다. 고객님, 이 옷은 단을 줄일 문제가 아니라 패턴부터 다시 떠야 합니다. 그리고 남의 평가에 맞춰 몸을 줄이지 마시고, 매튜 본은 매튜 본답게 지으시길. 킥애스의 그 재단 솜씨를 기다리는 단골이, 아직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