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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 리뷰 (배경과 기대, 원더우먼 비교, 캐릭터 완성도)

Stv 2026. 9. 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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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봄, 캡틴 마블은 제게 숙제였습니다. 한 달 뒤 엔드게임이 개봉하는데 새 히어로가 열쇠라니, 예습하는 마음으로 극장에 앉았죠. 그리고 나오면서 든 감정이 묘했습니다. 티켓값이 아깝진 않은데 뭔가를 봤다는 느낌도 없는 것. 소개팅에서 애프터 생각은 없는데 주선자에게는 착하고 괜찮은 분이더라 말할 때의 그 '괜찮다' — 이 영화의 좌표가 정확히 거기입니다. 결말까지 담은 스포일러 리뷰이니 참고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



    캡틴 마블 리뷰: 세 개의 왕관, 빈손의 대관식

    시작 전에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이 리뷰의 비판은 영화의 메시지를 겨냥하지 않습니다. 원본 리뷰어부터가 소수자를 주목하는 영화들에 오히려 후한 점수를 주는 팬임을 밝히고 시작하고, 저도 같은 자리에 섭니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솜씨입니다. 선입견을 깨려는 영화일수록 보편적 설득력이 필요한데, 캡틴 마블은 그 설득의 기술에서 미끄러진 경우죠(출처: IMDb — Captain Marvel).

    이 영화가 짊어진 기대는 셋이었습니다. MCU 최강의 순수 화력으로 우주급 전투의 센터를 맡을 예정이라는 것, 캡틴 아메리카의 리더 자리를 이어받을 공인된 계승자라는 것, 그리고 MCU 최초의 단독 여성 히어로 영화 — 블랙팬서만큼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이정표라는 것. 관심은 곧 돈이 되고 실제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 큰 힘에 걸맞은 큰 책임은 지지 못했다는 게 이 리뷰의 요지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크리 제국의 전사 비어스는 스파이 구출 임무에서 변신 종족 스크럴에게 붙잡히고, 기억을 스캔당하던 중 크리의 것이 아닌 과거가 흘러나옵니다. 탈출 끝에 지구에 불시착한 그녀는 젊은 닉 퓨리와 함께 기억을 추적하다 진실과 마주하죠. 자신은 지구인 파일럿 캐롤 댄버스였고, 은인인 줄 알았던 크리가 침략자이며, 쫓기던 스크럴이 피해자였다는 것. 각성한 캐롤은 크리를 몰아내고 스크럴의 새 보금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큰 틀이 상투적이어도 장면이 쫀쫀하면 좋은 영화가 됩니다. 안타까운 건 기회마다 헛디딘다는 점입니다. 캐롤이 편견을 뚫고 에이스 파일럿이 되는 과정은 스케치 몇 장으로 생략되고, 기억을 잃고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남을 만큼 각별했다는 로슨 박사와의 유대는 활주로에서 몇 마디 나누는 걸로 퉁쳐집니다. 정작 기억에 남는 건 그 박사 이름으로 치는 발음 개그라는 게 이 영화의 우선순위를 요약하죠. 6년을 공들여 키운 대원을 무전이 끊겼다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크리의 대원 관리 시스템 같은 허점들도, 웃자고 넘기기엔 서사의 기둥에 금을 냅니다.


    원더우먼 비교: 스티브 트레버와 욘 로그의 거리

    이 리뷰의 본론은 비교입니다. 하필 2년 전에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히어로 영화가 이미 나와 있었다는 것. 원더우먼입니다. 원더우먼은 오히려 페미니즘 색채가 더 강한 영화인데 그 색이 개성이 됩니다. 1900년대 초라는 배경 위에서 당연시되던 성역할에 순수한 의문을 던지고, 강인한 여성상을 통해 그 상식이 실은 선입견이었음을 자연스럽게 전하죠. 무엇보다 남녀의 대립각 대신 평등과 인류애로 접근하는 포용력이 있습니다.

    조력자 스티브 트레버의 설계가 그 증거입니다. 흔한 공식이라면 답답한 소리를 하다 여주인공의 일침에 벙어리가 되는 사이다 제조기로 소모됐을 캐릭터인데, 이 영화의 스티브는 옳은 걸 알면서도 현실 때문에 용기 내지 못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얼굴입니다. 그가 다이애나를 통해 용기를 얻고 행동하는 모습이 세상의 수많은 스티브들에게 질문을 던지죠. 조연인데 주인공 같은 매력이 남는 이유입니다.

    반면 캡틴 마블의 욘 로그를 봅시다. 광속 엔진 폭발에서 캐롤에게 수혈을 해준 은인이자 6년을 가르친 스승 — 로맨스가 아니어도 애증으로 엮일 수 있는 관계고 초반 묘사도 그런 색이었습니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면 그는 그저 그녀의 가능성을 무시해온 수많은 남성 중 하나로 납작해집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는 그의 가르침은 군인의 관점에선 일리가 있고 실제로 그 훈련이 그녀를 살리기도 했는데, 후반의 그 유명한 "너에게 증명할 필요 없어" 한 방을 위해 캐릭터의 입체성이 통째로 지불됩니다. 메시지를 쉽게 전하려고 반대편을 하등하게 그리는 방식 — 익숙한 실패 공식이죠. 스크럴의 처리도 갸웃합니다. 반전과 난민 은유는 좋은 카드였는데, 캐롤을 납치해 기억을 헤집고 퓨리를 위협했던 행적을 그대로 둔 채 무조건적 피해자로 착지시키니, 캐롤이 그들을 위해 수십 년 지구를 떠난다는 결말의 무게가 서사로 받쳐지지 않습니다.

    같은 방향의 두 영화가 다른 곳에 도착한 이유 — 원더우먼은 반대편까지 사람으로 그렸고, 캡틴 마블은 메시지의 소품으로 썼습니다.

    혹평 이유: 조연만 남은 주연의 영화

    캐릭터의 매력 문제도 짚어야 합니다. 시트콤 빅뱅이론은 할리우드식 외모 공식을 버린 자리에 개성이라는 매력을 채워 10년 넘게 장수했습니다. 캡틴 마블은 시종 진지한 '엄근진'을 채택한 자리에 다른 매력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액션에 고유한 지문이 없고, 자신을 속박해온 크리로부터의 해방 선언이 수트 색상 변경 — 그것도 자체 내장 기능 — 으로 표현되는 식이죠. 결국 극장에서 관객을 웃게 한 건 닉 퓨리와 고양이 구스, 마블이 10년 쌓은 짬에서 나온 조연들이었습니다. 주연의 기원담에서 조연만 남는 건 뼈아픈 성적표입니다.

    원본 리뷰어의 마지막 논점에 밑줄을 쳤습니다. 미디어의 힘은 옳은 말을 하는 데 있지 않고 그 관념을 살아있게 전하는 데 있다는 것. 실화 사건을 다룬 영화 한 편이 뉴스 백 건보다 피부에 와닿듯, 좋은 뜻일수록 좋은 솜씨가 필요합니다. 그 기준에서 이 영화는 상업 오락으로 보기엔 재미가, 메시지 영화로 보기엔 깊이가 아쉬운 어중간한 자리에 섰습니다. 옳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기에, 그 질문이 이렇게 소모되는 게 더 아쉬운 겁니다.

    점수는 4점. 퓨리와 구스의 지분, 그리고 90년대 감성의 몇몇 장면을 반영한 점수입니다. 다행인 건 이 캐릭터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죠. 엔드게임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서 캐롤 댄버스에게는 더 나은 각본을 만날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덧붙이는 물음 둘

    Q. 엔드게임 보기 전에 캡틴 마블을 꼭 봐야 하나요?

    A. 필수는 아닙니다. 엔드게임에서 캡틴 마블의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인피니티 워 쿠키의 호출기가 이 사람을 부른 것이었구나 정도만 알아도 따라가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퓨리의 젊은 시절과 호출기의 기원이 궁금하다면 예습의 가치는 있습니다.


    Q. 캡틴 마블 쿠키 영상은 몇 개인가요? (스포일러)

    A. 두 개입니다. 중간 쿠키는 인피니티 워 직후의 어벤져스 기지 — 퓨리가 남긴 호출기 앞에 캡틴 마블이 나타나는 장면으로 엔드게임과 직결되고, 마지막 쿠키는 구스가 삼켰던 테서랙트를 퓨리의 책상에 되돌려놓는 코믹 장면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받은 배우가 고양이라는 사실이 쿠키에서도 확인됩니다.


    애프터를 기다리며

    숙제하듯 봤던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방향은 응원하고, 솜씨는 아쉬웠던 소개팅. 애프터 생각이 없었던 건 상대가 나빠서가 아니라 대화가 준비되지 않아서였다고, 이번엔 주선자 탓이 컸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캐롤 댄버스의 다음 만남을 기다립니다. 우주 최강의 화력에 걸맞은 각본을 만나는 날, 이 대관식은 다시 치러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는 기꺼이, 애프터를 신청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