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시장 골목에서 후보와 악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두 손으로 제 손을 감싸 쥐고 눈을 맞추며 웃는데, 집에 오는 길 내내 궁금했어요. 저 미소는 몇 퍼센트가 진짜일까. 정직한 후보는 그 궁금증에 저주로 답하는 영화입니다. 만약 저 사람이 내일부터 진실만 말하게 된다면. 라미란, 김무열, 나문희가 그 대참사를 연기하는 코미디이고, 결말은 이 글에 적지 않았으니 관람 전이어도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5점입니다.
정직한 후보 리뷰: 미소의 진실 함량
주인공 주상숙(라미란)은 3선에 도전하는 국회의원이자 이미지 연출의 장인입니다. 대중 앞에 나서기 전 고급 구두를 허름한 검은 구두로 갈아 신고, 그것도 모자라 일부러 밟아 때를 입히는 디테일. 사무실에선 미소 한번 없던 사람이 카메라 앞에선 미소 천사가 되고, 생방송 토론의 곤란한 질문은 고도의 말 돌리기로 빠져나갑니다. 서민 아파트에 사는 척하지만 밤이 되면 대저택으로 퇴근하고, 배드민턴 좋아하는 자상한 남편 이미지도 표를 위한 설정입니다. 남편은 라켓을 잡을 줄도 모르거든요(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그리고 이 여자의 가장 심각한 거짓말은 따로 있습니다. 멀쩡히 살아 계신 할머니(나문희)를 돌아가셨다고 세상에 공표해버린 것. 정치 인생에 걸림돌이 될까 봐 산 사람을 지워버린 손녀에게, 홀로 남은 할머니는 미움 대신 소원을 빕니다. 우리 상숙이 정신 차리고, 거짓말 안 하고 살게 해주세요.
그 소원이 하필 이루어집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상숙의 입은 뇌를 거치지 않고 진실만 배출하기 시작합니다.
거짓이 직업의 연료인 사람에게서 거짓을 빼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 이 영화의 웃음은 전부 그 한 문장에서 나옵니다.
라미란 코미디: 뇌를 거치지 않는 입의 대참사
첫 대참사는 생방송 라디오에서 터집니다. 댓글을 자주 보시냐는 질문에 "안 봐요, 삼선쯤 되면 아무것도 안 봐요"로 시작하더니, 급기야 "대통령은 한번 해먹어야죠"까지 내달리죠. 30분 남짓한 솔직함의 결과로 방송은 아수라장이 되고, 이후로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입니다. 평소 싫어하던 인간을 보면 손이 먼저 나가고, 기자회견에선 후보가 해선 안 될 말만 압축해서 골라 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자서전의 비결을 묻자 해맑게 답합니다. 아, 그거 대필이에요. 지지율은 수직 낙하하고, 시어머니 앞에서 터진 진심에 집안까지 뒤집어지고, 용하다는 침을 맞아봐도 백약이 무효입니다.
궁지에 몰린 상숙이 꺼내 든 최후의 카드가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보좌관 박희철(김무열)을 삼고초려 끝에 — 정확히는 만나자마자 진심 펀치를 두 대 날린 끝에 — 영입해, 이왕 이렇게 된 거 단 한 치의 거짓 없이 모든 걸 말하는 '정직한 후보' 컨셉으로 선거판에 정면 승부를 거는 것. 이 무모한 전략이 어디까지 가는지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시는 게 예의겠습니다.
이 영화가 성립하는 건 팔 할이 라미란 덕입니다. 거짓말과 진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진심이 튀어나오는 그 찰나 — 막으려는 얼굴과 터지는 입이 한 프레임에 공존해야 하는 고난도 코믹 연기를 이 배우는 표정과 몸으로 소화합니다. 늘 화나 있는 역할만 보다가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코믹한 캐릭터로 돌아온 김무열의 재발견도 반갑고, 나문희는 존재만으로 이 소동극의 감정 지분을 책임집니다.
볼만한가: 사이다의 용도와 무딘 칼날
거짓말을 못 하게 된다는 설정 자체는 새롭지 않습니다. 짐 캐리의 라이어 라이어부터 수십 년 묵은 코미디 공식이니까요. 이 영화의 참신함은 그 저주를 누구에게 걸었느냐에 있습니다. 하필 정치인, 그중에서도 입만 열면 포장과 위선이 나오는 진성 거짓말쟁이. 그래서 사건마다 웃음이 안정적으로 터집니다. 특히 시어머니나 윗사람 앞에서 튀어나오는 진심들은 보는 사람의 십 년 묵은 체증을 대신 내려주는 사이다입니다. 우리가 평생 삼켜온 말들을 스크린 속 누군가가 대신 뱉어줄 때의 그 통쾌함이요.
한계도 정직하게 적습니다. 웃음의 설계가 에피소드 나열식이라 중반부터 패턴이 읽히고, 정치 풍자의 칼날은 생각보다 무딥니다. 진짜 정치의 위선을 해부하기보다 개인의 소동극으로 안전하게 착지하는 쪽이라, 블랙코미디의 서늘함을 기대하면 심심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의 교훈적 선회도 한국 코미디의 오랜 관성이고요.
그래도 이 영화의 용도는 명확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은 날, 맘 편히 틀어놓고 낄낄대기. 그 용도로는 확실히 상위권의 코미디입니다. 점수는 6.5점. 라미란이라는 배우의 코미디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표값은 합니다.
관람 전 세 가지
Q. 정직한 후보, 결말이 궁금한데 이 글에 스포가 있나요?
A. 없습니다. 상숙이 정직 전략으로 선거판에 뛰어드는 지점까지만 다뤘고, 그 전략의 성패와 할머니와의 이야기가 어떻게 매듭지어지는지는 함구했습니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웃음 사이로 뭉클함이 들어오는 구간이라, 직접 확인하시는 쪽이 훨씬 좋습니다.
Q. 가족이나 부모님과 같이 봐도 되나요?
A. 네, 12세 이상 관람가의 무난한 가족 코미디입니다. 거친 장면 없이 말맛과 상황으로 웃기는 유형이고, 특히 할머니와 손녀의 서사가 있어 부모님 세대의 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 명절 거실용으로 안성맞춤인 체급입니다.
Q. 정직한 후보는 속편도 있나요?
A. 있습니다. 라미란과 김무열이 그대로 돌아온 정직한 후보 2가 2022년에 개봉했습니다. 1편이 마음에 드셨다면 이어 보시면 되는데, 평가는 1편 쪽이 우세하니 기대치는 1편 기준으로 잡고 보시길 권합니다.
악수를 복기하며
극장을 나서며 저는 그 시장 골목의 악수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 미소의 진실 함량은 영영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 덕에 한 가지는 알겠더군요. 우리가 정치인의 거짓말에 이토록 웃을 수 있는 건, 울어본 적이 많아서라는 것.
그러니 이 영화는 이렇게 권하겠습니다. 뉴스 보다가 속 터진 날, 삼켜둔 말이 목까지 차오른 날, 라미란의 입을 빌려 대신 터뜨리시길. 사이다는 원래 남이 따줄 때 제일 시원한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