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입던 열일곱의 제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중간고사였습니다. 시험 범위가 공포였고 성적표가 재난이었던 그 나이 — 같은 나이의 소년들이 교복 위에 총을 메고 군함에 올랐던 가을이 1950년에 있었습니다. 김명민 주연의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그 소년들의 실화입니다. 미리 분명히 해둡니다. 이 글의 비평은 영화라는 그릇을 향한 것이지, 그 역사와 희생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리뷰: 교복 위에 총을 멘
영화는 동해로 향하는 수송선 문산호에서 시작합니다. 갑판을 채운 것은 군복이 아니라 교복 차림의 학생들 — 학도병입니다. 평균 훈련 기간 2주가 채 되지 않는 소년들을 이끄는 지휘관 이명준 대위(김명민)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가시지 않죠. 이 중요한 상륙 작전에 왜 정규군이 아닌 학생들이 타고 있는가(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당시의 전황이 그 답입니다. 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고, 연합군은 타개책으로 인천 상륙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 본 작전의 성공을 위해 적의 시선을 정반대인 동해안 장사로 돌리는 성동격서의 양동작전 — 학도병들과 소수의 군인으로 꾸려진 부대를 상륙시켜 대규모 공격이 임박한 듯 적을 속이는 것이었죠. 그래서 이들의 출정은 일부러 요란했습니다. 인천상륙 하루 전날, 적의 눈에 띄도록 대낮에 대로를 행군하고 시민들의 환송까지 받으며, 장사 해안에 사단급 부대가 몰려온다는 역정보까지 흘리면서. 소년들은 자신들이 미끼라는 사실의 무게를 알 리 없는 채로 출항했습니다.
그리고 바다가 먼저 등을 돌립니다. 기상 악화로 약속된 함포 지원은 오지 않았고 적의 선제 공격까지 쏟아지는 가운데, 높은 파도로 정상 상륙마저 불가능해진 것. 남은 방법은 하나 — 누군가 헤엄쳐 해안까지 밧줄을 연결하는 것뿐입니다. 빗발치는 총탄 속에 자원자들이 바다로 뛰어들고, 학도병 성필(최민호)을 비롯한 이들의 사투 끝에 밧줄은 끝내 해안에 닿습니다. 소년들의 상륙은, 그렇게 시작부터 희생 위에 세워졌습니다.
실화 학도병: 미끼의 운명, 승리의 영수증
상륙한 부대는 열세의 화력으로 고전하다 뒤늦게 도착한 폭격 지원에 힘입어 장사리를 점령하고, 206고지 탈환에 이어 북한군 보급의 대동맥인 7번 국도까지 차단해냅니다. 같은 시각 인천 앞바다에서는 맥아더의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죠. 소년들의 미끼 작전이 정말로 역사를 움직인 겁니다. 그러나 승리의 영수증은 참혹했습니다. 후방을 맡았던 이들은 모두 전사했고, 통신은 두절됐으며, 보급은 끊겼습니다. 더 서늘한 것은 이 고립이 우연이 아니라 구조였다는 사실입니다. 미군의 화력과 병력은 본 작전인 인천에 집중되어야 했기에 양동부대에 돌아올 지원은 애초에 거의 없었던 것 — 미끼의 운명이란 성공할수록 더 깊이 적진에 남겨지는 것이었습니다.
새벽, 인민군 2개 연대가 장사리로 반격해 온다는 소식이 날아듭니다. 구조선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이명준은 진입로의 터널을 폭파해 길을 막기로 하고, 발파의 마지막 고리인 뇌관 연결을 위해 스스로 끝까지 현장에 남습니다. 그리고 그는 임무를 완수하며 장렬히 전사합니다. 지휘관의 희생으로 적의 진격은 저지되지만, 구조는 늦고 또 모자랐습니다. 문산호는 좌초했고, 구조하러 온 조치원호는 원래 민간 선박이라 포탄이 난무하는 해안에 바싹 붙을 수 없었죠.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거리가 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 옵니다. 어린 학도병들을 먼저 배에 태우고, 끝까지 남아 탈출로의 방어 진지를 지킨 학도병들이 있었다는 것. 성필도 그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전사했고, 마지막까지 전우들의 바닷길을 지켰습니다. 살아 떠나는 이들이 멀어지는 해안의 그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는 닫힙니다. 이어지는 실화의 기록이 먹먹함을 못 박죠. 이 작전은 육군본부 작전명령 174호로 하달된 실제 극비 작전이었고, 이명준은 당시 제1유격대 — 일명 명부대 — 를 이끈 실존 대위를 모티브로 한 인물입니다. 772명 대원의 대부분은 중학생과 고등학생. 2주의 훈련으로 전차와 포병의 지원을 받는 정예 북한군을 상대로 혈전을 벌이며 보급로를 차단하고 T-34 전차까지 저지해, 적 후방 교란이라는 임무를 끝내 달성해냈습니다.
인천의 영광은 교과서가 기억하지만, 그 영광의 길을 열어준 장사리의 소년들은 오래 잊혀 있었다 — 이 영화의 존재 이유는 완성도 이전에 그 호명에 있습니다.
김명민: 신파를 누른 예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역사와 분리해 적습니다. 미덕은 태도입니다. 눈물을 쥐어짜는 대신 담백함을 택한 연출은 이 소재에 대한 예의로서 옳았고, 전쟁 장면의 합과 긴장도 준수합니다. 김명민은 과장 없는 침통함으로 중심을 잡고, 최민호를 비롯한 젊은 배우들의 앳된 얼굴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아픈 미장센이 됩니다. 교복이 어울릴 얼굴들이 군장을 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는 장면들이 있으니까요.
흠도 적습니다. 인물들의 사연이 전형적인 배분에 머물고 전개가 장르의 익숙한 궤도를 돌아, 영화적 세공만 따지면 평범함을 넘지 못합니다. 개봉 당시 흥행이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고요. 점수는 6점 — 역시 영화에 매기는 점수일 뿐, 그 해안에 매길 점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 제목은 부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잊혀진 영웅들.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는 걸작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불리지 못한 이름들을 호명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 호명에 두 시간을 보태는 것 — 관객이 할 수 있는 몫은 그것이고, 그 몫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세 가지
Q. 어디까지가 실화인가요?
A. 뼈대가 역사 그대로입니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174호에 따른 장사 상륙작전, 772명 규모의 제1유격대, 대원 대부분이 2주 남짓 훈련받은 중·고등학생 학도병이었다는 것, 보급로 차단과 후방 교란 임무를 끝내 달성했다는 것까지 전부 기록에 있는 사실입니다. 개별 인물들의 사연에는 각색이 있지만, 가장 믿기 어려운 대목들이 오히려 실화라는 점이 이 영화의 무게입니다. 관람 후 장사 상륙작전과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꼭 찾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Q. 영화 인천상륙작전과 이어지는 작품인가요?
A. 직접 이어지는 속편은 아니지만, 포화 속으로(2010), 인천상륙작전(2016)과 함께 기획된 서울수복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상륙의 길을 연 첩보전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같은 날 반대편 바다에서 미끼가 되어준 이들을 비추죠. 두 영화를 나란히 보면 1950년 9월의 양면 — 영광과 그 영광의 값 — 이 완성됩니다. 이 블로그의 인천상륙작전 리뷰와 함께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Q. 메간 폭스가 나온다던데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메간 폭스가 학도병들의 사연을 세상에 알리려는 종군기자 매기 역으로 출연하는데, 한국전쟁을 취재해 퓰리처상을 받은 실존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할리우드 배우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지만 극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학도병들에게 있으니, 깜짝 출연 정도로 기대치를 두시면 알맞습니다.
열일곱의 책상에서
중간고사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던 열일곱의 저는, 같은 나이에 그 바다를 건넌 소년들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이제야 셈해봅니다. 책상에 앉아 친구와 떠들었어야 할 아이들이 대신 서준 자리 — 오늘 우리의 평범한 하루가 그 자리 위에 있다는 것을요.
영화의 점수와 무관하게, 장사리의 소년들과 그들을 이끌었던 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이 글의 마지막 줄에 적습니다. 잊혀진 영웅들이라는 부제가 더는 맞지 않는 말이 되도록 —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씩 늘어나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바란 전부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