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바이킹과 디스코팡팡의 비명, 조개구이 골목의 연기 — 제게 월미도는 그저 유쾌한 유원지의 이름이었죠. 그 섬이 1950년 9월,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포화의 한복판이었다는 걸 실감한 건 부끄럽게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이정재, 이범수, 리암 니슨의 인천상륙작전 — 그 바다에서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미리 분명히 해둡니다. 이 글의 비평은 영화라는 그릇을 향한 것이지, 그 역사와 희생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5.5점입니다.
인천상륙작전 리뷰: 적진 한복판의 이름
때는 1950년 9월, 전쟁 발발 석 달 만에 국토 대부분이 넘어간 절체절명의 시기. 북한군으로 가득한 인천의 사령부에 한 장교가 부임합니다. 박남철 — 그러나 그의 진짜 이름은 장학수(이정재), 북한 장교의 신분을 빼앗아 잠입한 대한민국 해군 첩보부대의 대위입니다. 임무는 연합군의 상륙에 앞서 인천의 방어 정보를 캐내는 것(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그의 앞을 막아선 남자가 만만치 않습니다. 인천 방어를 책임진 북한군 지휘관 림계진(이범수). 광기와 명석함을 겸비한 이 남자는 새로 온 장교들을 앉혀놓고 사상 검증부터 시작하는데, 가족의 신앙을 두고 던지는 질문과 답변의 온도까지 저울에 올리는 눈빛에 관객의 손에 먼저 땀이 뱁니다. 첫 목표인 기뢰 배치도, 해도의 탈취 작전은 뜻밖의 변수들 속에 최악의 실패로 끝나고 — 더 서늘한 순간이 옵니다. 어느 밤 림계진이 옛이야기를 꺼내는 겁니다. 예전에 어떤 놈이 있었는데, 반동분자를 쏘라니까 못 쏘고 도리어 동지들을 쏘고 남조선으로 도망쳤지. 그 미친놈 이름이 뭐였더라. 장학수. 그래, 장학수 — 어째 여기 있네.
정체는 처음부터 읽히고 있었던 것. 사령부 한복판에서 총격전이 터지고, 장학수와 부대원들은 사선을 뚫고 달아납니다.
이정재 리암니슨: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 앞에서
쫓기는 이들을 숨겨준 사람은 이발사 최석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대사가 그의 입에서 나오죠. 젊은 날 혁명의 문구에 심장이 뛰던 시절, 동지들이 처단하라며 데려온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것. 가장 친했던 친구가 아버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는 신념에 가득 찬 얼굴로 말하더라는 것 —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 당신들은 지금 속고 있는 거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이 고백은, 전쟁 액션의 포장 아래 이 영화가 품은 진짜 주제입니다. 이념이라는 이름이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가는가. 그리고 은신처는 포위되고, 부대원들을 끝까지 숨긴 최석중은 끝내 목숨을 잃습니다.
남은 자들에게 첩보부대 대장 서진철이 가져온 새 임무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단 한 명만 살아남더라도 해내야 한다는 것 — 북한군의 브레인 류장춘을 납치하라는 지시. 열쇠는 세상을 떠난 최석중의 조카, 병원 간호사 한채선입니다. 삼촌을 잃고도 그 뜻을 잇기로 한 그녀의 도움으로 부대는 병원에 잠입하고, 목숨을 건 추격전 끝에 납치는 성공하죠. 그리고 마지막 임무의 밤. 맥아더(리암 니슨)의 함대가 인천 앞바다로 접근하는 디데이 — 팔미도 등대를 점령해 함대의 길을 밝히는 부대, 그리고 월미도.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섬에 림계진이 숨겨둔 해안포들이 멀쩡히 살아 함대의 선두를 겨누고 있었던 겁니다. 기함이 사정권에 드는 마지막 순간 장학수는 자주포로 해안 포기지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부대원 남기성은 제 몸으로 기폭장치를 지키며, 마지막까지 달려드는 림계진과의 최후의 대결 끝에 — 장학수는 불가능해 보였던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그곳에서 눈을 감습니다.
그 길 위에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했고, 수많은 군사학자들이 20세기 최고의 군사작전으로 꼽는 이 한 수로 6.25의 전황은 단숨에 뒤집혔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교과서의 한 줄 뒤에 있던 얼굴들을 비추며 닫힙니다.
상륙의 영광은 역사가 기록했지만, 그 길을 연 첩보전의 이름들은 바다에 남았다 — 이 영화가 비추려는 자리는 그쪽입니다.
실화 배경: 비판과 감동이 공존하는 이유
평가에 앞서 선을 다시 긋습니다. 지금부터의 비평은 영화라는 그릇에 대한 것입니다. 영화적으로 보자면 원본 리뷰어가 인정하듯 비판받을 지점이 분명 많습니다. 첩보전의 디테일은 개연성이 성기고, 인물들은 사연 몇 줄로만 세워져 내면의 결이 옅으며, 선악의 이분법이 짙어 림계진은 이범수의 열연에도 기능적 악역에 머뭅니다. 개봉 당시 평단의 점수와 700만 관객의 발걸음이 극명하게 갈린 영화였다는 사실이 그 양면을 요약하죠.
그런데 그 많은 비판을 다 받아들이고도 이 영화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리뷰어의 절충에, 저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 힘의 정체는 연출의 세공이 아니라 사실의 무게입니다. 성공 확률 5000분의 1이라 불리던 작전의 길을 열기 위해 적진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던 사람들 — 영화 속 X-RAY 작전은 실제로 있었던 첩보 작전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고, 그 실화 속의 젊은이들 다수는 이름도 훈장도 없이 그 바다에 남았습니다. 스크린의 장학수가 눈을 감는 순간 관객이 우는 것은 각본의 솜씨 때문이 아니라, 그 장면 너머에 실재했던 얼굴들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이정재는 과묵한 비장함으로 그 무게를 감당하고, 실제 폭약을 아낌없이 태운 물량의 전투 장면들은 극장용 스펙터클로서 제 몫을 합니다. 점수는 5.5점 — 영화의 완성도에 매기는 점수이고, 그 9월의 바다에 매길 수 있는 점수는 애초에 없습니다. 역사를 담는 그릇을 따져 묻던 봉오동 전투 리뷰, 그 그릇이 귀했던 말모이 리뷰와 나란히 놓고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두 가지 문답
Q. 어디까지가 실화인가요?
A. 인천상륙작전 자체와 팔미도 등대 확보 같은 큰 뼈대는 역사입니다. 장학수를 비롯한 인물들은 상륙에 앞서 수행된 실제 첩보 작전들 — 적진에 잠입해 정보를 캐고 길을 연 — 을 모티브로 창작된 가공의 얼굴들이고요. 그 실제 작전들에서 많은 대원들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만큼은 영화 밖의 역사 그대로이니, 관람 후 그분들의 이야기를 한 번 찾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Q. 서울수복 트릴로지가 뭔가요?
A. 이 영화는 포화 속으로(2010),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2019)과 함께 6.25의 국면을 다루는 서울수복 3부작으로 기획된 작품 중 하나입니다. 학도병들의 포항 전투, 인천의 첩보전, 상륙의 양동작전이었던 장사리 전투 — 각각 다른 자리에서 같은 9월을 비추는 구성이라, 이 영화가 좋았다면 나머지 두 편으로 그 계절의 지도를 완성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바이킹을 타기 전에
다시 월미도를 생각합니다. 디스코팡팡의 비명이 울리는 그 유원지의 땅이 한때 조국의 운명이 걸린 최전선이었다는 것. 오늘의 평범한 소란은 그날 그 바다를 건넌 사람들이 지불한 값이라는 것.
다음에 월미도에 가면 바이킹을 타기 전에 바다를 좀 오래 바라볼 것 같습니다. 그 정도의 기억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테니까요. 영화의 점수와 무관하게 — 그 9월의 이름 없는 분들께, 이 글의 마지막 줄을 빌려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