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거래 앱에서 네고를 시도하다 차단당한 적이 있습니다. 시세도 판매자의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다짜고짜 반값을 불렀던 거죠. 그날 배웠습니다. 협상의 제1원칙은 말솜씨가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아는 것 — 상대를 모르는 협상은 협상이 아니라 구걸이거나 호통이라고. 손예진, 현빈 주연의 영화 협상을 둘러싼 혹평의 과녁이 정확히 그 원칙에 있습니다. 미리 밝혀두면 두 배우의 매력과 그들을 보러 간 관객의 감상은 온전히 정당하며, 이 글의 혹평은 배우가 아니라 각본과 설계를 향합니다. 결말까지 다루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2.5점입니다.
협상 영화 리뷰: 협상이 없는 협상
설정부터 봅시다.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의 하채윤 경위(손예진) 앞에 사상 최악의 사건이 떨어집니다. 태국에서 한국인들을 납치한 무기 밀매상 민태구(현빈) — 그가 모니터 너머로 생중계 인질극을 벌이며 콕 집어 하채윤을 협상 상대로 지목한 겁니다. 왜 하필 그녀인가, 그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가 이 영화의 미스터리죠(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이 영화를 다룬 원본 리뷰 — 독설로 유명한 걸작선, 그마저 "서론이 깁니다"라는 경고로 시작하는 — 는 혹평에 앞서 제작사의 오랜 관행부터 짚습니다. 과거 흥행했던 할리우드 영화의 모티브를 가져오고, 이야기와 따로 노는 저질 개그 — 약자를 웃음거리 삼는 종류까지 — 를 끼얹고, 신파로 마무리하는 공식 말이죠. 베끼는 것 자체보다 베끼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한 것이 문제라는 일갈 — 이 영화가 어떤 명작들의 옷을 빌려 입었는지는 마지막 섹션에서 비교와 함께 정리하겠습니다.
혹평 이유: 협상가가 협상을 안 한다
혹평의 본론은 캐릭터 붕괴입니다. 한국 최고의 협상가라는 하채윤이 영화에서 실제로 하는 일을 꼽아보면 — 협상에 실패해 오열하기, 충격받아 사표 내기, 어리둥절하기, 아이들이 있다고 분노하기. 리뷰어의 뼈 때리는 정리처럼 이 모든 것은 협상 능력과 무관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죠. 비교가 잔인합니다. 네고시에이터의 협상가 케빈 스페이시는 상대를 직접 만나 그가 사람을 해칠 인물이 아니며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음을 간파한 뒤에야 과감한 수를 던집니다 — 정보가 행동의 근거가 되는 거죠. 반면 하채윤은 상대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는 초강수를 두고, 상대가 화를 내자 바로 저자세로 돌아서 요구에 따라 제 신체 사이즈까지 읊습니다. 리뷰어는 이 장면에서 영화의 긴장감이 몽땅 증발했다고 선고합니다 — 핑퐁이어야 할 협상이 일방적인 끌려다님이 된 순간, 인질극 영화의 심장이 멎은 겁니다. 남은 흥밋거리였던 민태구의 동기마저 "현준은 왜 죽였습니까"라는 대사 한 방에 김이 빠지고요 — 가족의 죽음이라는, 이 장르에서 가장 식상한 해답의 예고편이니까요.
빈 시간을 채운 것은 현실성의 희생입니다. 목록이 깁니다. 처음부터 제 얼굴과 이름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벌이는 국제 인질극(얻는 이득이 전무합니다 — 두 배우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는 촌평), 말레이시아 인근까지 14시간 걸린다는 공군 특수부대(민항기로 쿠알라룸푸르까지 7시간이 안 걸리죠 — 클라이맥스 타이밍에 맞춰 시간을 역으로 세팅한 흔적), 대단한 추리처럼 포장되지만 국정원 직원이 와서 술술 불어주는 정보들, "협상가는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협상하는 것이 룰"이라는 괴상한 대사, 사흘 전 태국에서 찍힌 인질들이 어느새 국내로 잠입해 있는 시간 모순, 그리고 긴장용으로 부풀렸다가 사실은 뻥이었다며 꺼지는 특수부대 작전 — 리뷰어는 이를 맥거핀도 못 되는 '블루베리 없는 블루베리 머핀', 공갈빵이라 명명합니다.
대미는 신파입니다. 몸에 폭탄을 두르고 원수들 코앞까지 간 민태구가 하채윤의 몇 마디에 눈물을 글썽이는 결말 — 복수극의 비장함과 신파의 눈물이 충돌하며 양쪽 다 깨지는 마무리이고, 수많은 죄를 지은 범죄 조직의 리더가 동생의 사연 하나로 즉석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공식 앞에 리뷰어의 인내심은 끝내 무너집니다. 그렇게 내려진 걸작선의 등급은 최하 — 괴물 등급. 유일한 장점으로 꼽힌 것은 다른 작품들보다 잡소리가 적고 호흡이 빠르다는 것 하나였습니다.
인질극의 생명은 주고받는 수의 긴장 — 제목에 협상을 걸고 협상을 지운 설계가, 이 영화를 향한 혹평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네고시에이터와 비교: 장르의 문법, 영화 밖의 해피엔딩
원본 리뷰의 미덕은 혹평에 앞서 인질극 장르의 문법을 강의해준다는 점입니다. 교과서 네고시에이터(1998)는 누명을 쓴 협상 전문가가 인질범이 되어 또 다른 협상가와 맞붙는 이야기 — 고수 둘이 수를 주고받는 핑퐁의 긴장이 심장입니다. 인사이드 맨(2006)은 반대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인질극부터 터뜨리고 경찰이 아니라 인질범이 사실상의 주인공인 영화 — 그가 왜, 무엇을 얻으려 이 판을 벌였는가가 중심이죠. 존 큐나 호스티지처럼 인질극의 원인을 먼저 쌓아 올리는 정공법 문법도 있고요. 리뷰어의 진단은 간명합니다. 협상은 네고시에이터의 스토리라인에 인사이드 맨의 형식을 입힌 영화인데 — 잘 만든 영화들의 껍데기를 빌려 왔으나 그 속을 채울 서사와 캐릭터가 빈약해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게 됐다는 것. 두 원전이 궁금해진 분들께는 오히려 이 비교 강의가 좋은 감상 가이드가 됩니다.
균형을 위해 반대편을 적습니다. 이 영화에서 유효한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 손예진과 현빈이라는 두 배우의 존재감 그 자체죠.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도 화면이 사는 것은 순전히 두 사람의 힘이고, 그 케미를 보러 간 관객의 선택은 정당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남긴 최대의 유산은 영화 밖에 있습니다 — 여기서 처음 만난 두 배우가 이듬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으로 재회해 신드롬을 일으키고 실제 부부가 되었으니, 한국 대중문화사의 관점에서 협상은 세기의 만남을 주선한 영화로 남은 셈이죠. 영화는 협상에 실패했지만 캐스팅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협상이었다는 아이러니 — 점수는 2.5점이되, 이 혹평이 두 배우를 향한 애정과 공존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전화를 끊기 전에 둘
Q. 혹평이 많은데, 그래도 볼 만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A. 두 배우의 팬이라면 선택은 정당합니다. 특히 사랑의 불시착으로 두 사람을 알게 된 분들에겐 이 영화가 '그 케미의 기원'을 확인하는 성지순례가 되죠 — 모니터 너머로도 튀는 둘의 합을 보는 재미만큼은 진짜입니다. 반대로 인질극 스릴러의 치밀한 수 싸움을 기대하신다면, 이 글의 혹평 목록이 두 시간 내내 눈에 밟힐 확률이 높으니 마음 편히 거르셔도 됩니다.
Q. 제대로 된 '협상'의 긴장을 보고 싶다면요?
A. 원전 두 편 — 협상가 대 협상가의 핑퐁이 빛나는 네고시에이터, 인질범이 주인공인 설계의 인사이드 맨 — 이 정석 코스입니다. 그리고 한국 영화 중에서라면 이 블로그에서 다룬 공작을 권합니다. 총성 없이 말과 눈빛만으로 목숨이 오가는 '구강 액션'의 모범 — 협상이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아쉬웠던 바로 그 긴장이, 공작에는 두 시간 내내 흐릅니다.
반값 네고의 수업료
그 차단의 기억으로 돌아갑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모르는 협상은 협상이 아니라는 것 — 영화 협상이 지키지 못한 제1원칙을, 저는 반값 네고 한 번으로 배웠습니다. 수업료로는 그쪽이 훨씬 쌌죠.
그래도 이 영화의 결말만은 역사가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스크린 속 협상은 실패했지만, 스크린 밖에서 성사된 세기의 협상 — 그 후일담을 아는 채로 보면, 이 영화의 2.5점에도 어쩐지 웃으며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때로는 영화보다 캐스팅이 길게 남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