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조정석이 코미디에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여장한 채로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오가는 연기를 이 밀도로 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뷰티 크리에이터인 동생 손에 얼굴을 맡기는 변신 씬부터 이미 배우가 이걸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메이크업(makeup), 즉 분장이나 화장 기술을 활용한 시각적 변신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러워지는 흐름도 잘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기체 손상이라는 긴급 상황, 즉 항공기 동체에 구조적 손상이 생겨 정상 운항이 불가능해지는 비상 사태에서 정체가 드러나는 전개는, 솔직히 예상한 경로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코미디 영화의 후반부가 "감동"을 욕심내는 순간 리듬이 흔들리는데, <파일럿>도 그 함정을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비상 착륙(emergency landing) 이후의 마무리 시퀀스, 다시 말해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활주로 없이 착지를 시도하는 절차가 끝난 뒤, 영화는 코미디의 호흡보다 뭉클한 마무리를 더 신경 씁니다. 215명의 승객을 살렸다는 사실이 감동적으로 처리되는 건 맞습니다만, 그 감동을 위해 앞서 쌓아온 웃음의 리듬을 조금 희생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국내 코미디 영화의 흥행은 캐릭터 몰입도와 감정선의 균형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그 균형을 후반부에서 조금 잃은 것이 <파일럿>의 유일한 약점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코미디 상한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제가 느낀 극장 경험의 값어치는 충분했습니다.
요약: 조정석의 디테일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고, 후반 감동 욕심에서 코미디 리듬이 흔들리는 건 아쉽지만 전체 만족도를 크게 깎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