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개가 산으로 가는 드라마를 끝까지 완주한 적이 있습니다. 하차의 명분은 매회 쌓이는데 손가락이 다음 화를 누르던 이유는 단 하나 — 주연 배우의 얼굴이었죠. 스토리가 하다 만 일을 비주얼이 마무리 짓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현빈, 장동건의 조선 좀비 액션 창궐을 소개한 원본 리뷰의 제목이 그 심리를 정확히 요약합니다 — "다 필요없고 잘생겼다." 이 글도 그 솔직함을 따릅니다. 영화의 설계에는 혹평을, 현빈의 얼굴과 칼끝에는 정당한 감탄을 — 그 비주얼을 보러 간 관객의 선택은 온전히 유효합니다. 결말까지 담았으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4.5점입니다.
창궐 리뷰: 조선에 수입된 야귀
이야기는 제물포 앞바다의 이양선에서 시작합니다. 배를 기습해 총기를 약탈하려던 병사들이 배 안에서 끔찍한 존재와 맞닥뜨리는 것 — 물린 자가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조선에 처음 수입된 좀비 '야귀'입니다. 시간을 사흘 전으로 돌리면 이 배의 원래 용건이 나오죠. 썩은 조정을 뒤엎으려던 세자가 은밀히 준비하던 거사 — 그러나 거래가 발각되며 세자는 역모로 몰리고, 주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 대가로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진 채 세상을 떠납니다. 아버지인 왕(김의성)은 간신 김자준(장동건)의 치마폭에서 천지 분간을 못 하는 허수아비 — 조선의 밤은 야귀보다 먼저 썩어 있었던 겁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그리고 형의 부고를 듣고 청나라에서 한 남자가 돌아옵니다. 강림대군(현빈) — 등장부터 걸작이죠. 아랫것들에게 발을 닦이며 조선 험담을 늘어놓는 청나라 물 잔뜩 든 한량, 식량난의 시국에 청나라 전병 타령이나 하는 철없는 금수저. 백성 입장의 덕희(이선빈)가 "어찌 이런 분이 조선의 대군이냐"며 혀를 차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귀국길부터 그를 노리는 살수들과의 싸움에서 강림은 처음으로 야귀와 마주치고, 형의 사람이었던 박종사관(조우진) 일행에게 구해지며 이 괴질의 룰을 배웁니다. 소리에 예민하고, 머리를 베거나 심장을 꿰뚫지 않으면 멈추지 않으며, 햇빛을 피해 밤에만 창궐하는 조선의 좀비.
이 생존자들의 입에서 영화의 풍자가 터집니다. 역병에 잡아먹히는 백성을 조정은 '난을 일으킨 역도'로 가두고 있다는 것 — 야귀에게 물리는 것보다 나라에 물리는 것이 먼저였던 셈이죠. 솔직히 이게 나라냐, 라는 극 중 대사가 개봉 당시 관객들에게 묘한 기시감의 웃음을 줬던 대목입니다.
결말 정리: 개벽을 외친 간신, 각성한 한량
빌런의 설계는 야심만은 큽니다. 김자준은 야귀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았고 이를 역이용해 왕좌를 노리죠 — 측근을 일부러 물리게 하고 그 손을 빌려 왕까지 야귀로 만들어버리는 패륜의 수순, 야귀 떼를 궁에 풀어버리는 쿠데타까지. 그가 외치는 야망이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대사입니다. 이씨의 조선이 아니라, 폐허가 된 이 터에 나 김자준이 새 나라를 세우겠다 — 역모를 넘어 개벽을 말하는 빌런이라니. 그 야망의 디테일이 끝내 채워지지 않는 게 문제지만, 장동건의 서늘한 미소가 절반은 메웁니다.
강림의 각성 장면은 감정선이 가장 잘 선 대목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대군께선 그리하셨지요. 그것이 임금이 아닙니까. 청나라 타령하던 한량이 백성의 그 말에 조선의 칼을 다시 쥐는 전환 — 공식적이지만, 공식이 괜히 공식이 아님을 보여주는 순간이죠. 이후는 농성전의 문법입니다. 야귀가 된 왕의 최후, 단 한 마리도 궁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는 밤샘 사투, 물린 손을 잘라내면서까지 왕좌에 집착하는 김자준의 끈질김. 클라이맥스는 화공입니다. 북소리로 궁의 야귀를 인정전에 끌어모아 통째로 태워버리는 작전 — 불을 놓을 사람이 필요한 그 자리에 덕개가 남습니다. 어차피 한 번은 죽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실 거라 믿겠습니다 —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않던 백성이, 저를 불쌍히 여겨준 대군을 위해 남는 희생. 신파의 공식 안에서도 제값을 하는 눈물입니다.
그리고 불길 속의 최후 결투. 죽어라, 망한 나라의 자손아 — 김자준의 저주에 강림이 돌려주는 대답이 영화의 주제 선언입니다. 보이느냐, 백성들이다. 백성이 있어야 왕도 있는 것이다. 야귀를 모두 태우고 조선이 재건의 아침을 맞으며 영화는 닫힙니다.
야귀보다 먼저 썩은 조정, 좀비보다 무서운 간신 — 창궐의 괴물은 두 종류이고, 칼이 향해야 할 곳도 결국 둘이었습니다.
킹덤과 비교: 석 달의 불운, 그리고 남는 것
이 영화의 불운은 비교 대상입니다. 불과 석 달 뒤 공개된 넷플릭스 킹덤이 같은 '조선 좀비' 소재로 정치 스릴러와 괴수물의 결합을 훨씬 정교하게 해내면서, 창궐의 공식적인 전개 — 한량의 각성, 예측 가능한 배신과 희생, 평면적인 빌런 동기 — 는 더 도드라져 보이게 됐죠. 그러나 반대편 장부도 적어야 공정합니다. 갓과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야귀 떼를 베는 현빈의 사극 액션은 그 자체로 장르적 쾌감이고(와이어보다 합으로 승부하는 칼춤입니다), 횃불과 궁궐이 만드는 밤의 때깔, 그리고 박종사관 조우진의 묵직한 신스틸까지 — 독전, 국가부도의 날, 마약왕에 이은 이 배우의 2018년 개근상 행진은 여기서도 유효합니다.
요컨대 이 영화는 리뷰어의 제목이 이미 완성한 한 줄 평의 작품입니다. 다 필요없고 잘생겼다 — 서사의 빈 곳을 비주얼로 완주시키는 영화이고, 그것도 분명 영화의 능력이죠. 점수는 4.5점. 조선 좀비물의 완성형이 궁금하면 킹덤으로, 현빈의 칼끝과 금요일 밤의 팝콘이 목적이면 창궐로 — 용도만 맞추면 손해는 없습니다.
성문을 닫기 전에 셋
Q. 킹덤과는 뭐가 다른가요? 뭘 먼저 볼까요?
A. 같은 조선 좀비라도 체급과 결이 다릅니다. 킹덤은 역병의 기원과 권력의 음모를 시즌 단위로 파고드는 정치 스릴러이고, 창궐은 두 시간 안에 각성-농성-결전을 끝내는 액션 블록버스터죠. 깊이는 킹덤, 간편함은 창궐 — 입문 순서로는 가볍게 창궐로 조선 좀비의 룰을 맛본 뒤 킹덤으로 들어가는 쪽이 체감 만족도가 높습니다. 반대로 킹덤을 먼저 봤다면 창궐은 기대치를 팝콘에 맞추고 보시길.
Q. 좀비 영화를 더 보고 싶다면요?
A. 이 블로그의 좀비 라인업으로 안내하면 —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반도, 원룸 고립 생존기 #살아있다가 있습니다. 조선의 야귀, 폐허의 반도, 아파트의 현관문 — 같은 좀비라도 무대가 바뀌면 공포의 문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한국 좀비물 계보를 훑는 주말 정주행 코스로 묶어보시길.
Q. 배우들의 다른 작품을 보고 싶다면요?
A. 현빈의 같은 해 작품으로는 이 블로그에서 다룬 협상이 있습니다 — 공교롭게도 2018년의 두 편 모두 평가는 아쉬웠지만, 그 직후의 사랑의 불시착으로 모든 것이 복권됐으니 '불시착 전야'의 현빈을 확인하는 재미로 보시길. 그리고 박종사관 조우진은 독전, 국가부도의 날, 마약왕까지 — 이 블로그에서만 네 편째인 2018년 최다 출연 배우입니다. 네 글을 이어 읽으면 한 명품 조연의 전성기가 보입니다.
도포 자락의 실루엣
그 드라마의 완주를 다시 생각합니다. 얼굴이 다 했다는 말은 조롱이 아니라 절반의 상찬이라는 것 — 스토리가 못 끝낸 일을 끝내는 것도 결국 배우의 힘이니까요.
창궐의 야귀들은 잊혀도 도포 자락의 그 실루엣은 남습니다. 그거면 된 영화도 세상엔 있는 법이죠. 금요일 밤, 머리는 소파에 두고 눈만 데려가서 보시길 — 그 용법으로는 꽤 쓸 만한 두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