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담보를 보다가 울었습니다. 그리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엔 살짝 억울해졌어요. 운 게 억울한 영화가 있습니다. 내 눈물이 이야기의 힘 때문이 아니라 잘 설계된 버튼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 해운대와 국제시장을 만든 JK필름의 최신 신파 담보는 그 버튼 공학이 아주 잘 보이는 교본 같은 영화입니다. 성동일, 하지원, 김희원이 나오고, 이 글은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
담보 영화 리뷰: 하루짜리 담보가 가족이 되기까지
이야기는 1993년 인천에서 시작합니다. 사채 추심업자 두석(성동일)과 종배(김희원)는 빌려준 돈을 받으러 다니는 밑바닥 인생. 갚을 능력이 없는 조선족 엄마에게서 돈 대신 아홉 살 딸 승이를 하루짜리 담보로 잡아 옵니다. 내일 아침까지 돈을 가져오면 아이를 돌려주겠다는 것. 그런데 엄마는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체류 자격 문제로 적발되어 추방을 앞두고 있었던 거죠. 출입국사무소로 불려간 두석에게 엄마는 울며 부탁합니다. 돈을 벌어 꼭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아이를 맡아달라고(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황당한 담보를 떠안은 두 남자와 야무진 아이의 동거는 예상하시는 그대로 흘러갑니다. 시키지도 않은 집안일을 해두는 아이, 우는 아이 달래는 데 뜻밖의 재능을 보이는 아저씨, 박스 승합차에 붙는 새 이름, 백화점 쇼핑과 서태지 테이프 선물까지. 납치인지 육아인지 모를 시간이 쌓이며 셋은 가족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갑니다.
그러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사건이 터집니다. 두석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채권자가 아이를 데려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팔아넘긴 것. 아이가 필사적으로 보낸 연락 하나에 두석과 종배는 부산까지 내달리고, 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기어이 아이를 그 지옥에서 꺼내 옵니다. 그 밤 이후 두석은 결심합니다. 승이를 딸로 입양하기로. 학교에 다닐 수 없던 아이의 신분 문제도 그렇게 풀립니다. 납치범 같던 아저씨가 서류상 아빠가 되는 아이러니 — 담보였던 아이가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것, 이게 이 영화의 제목이 하는 일입니다.
채권자와 담보라는 삭막한 관계가 밥과 잠자리와 이름 짓기를 거치며 가족으로 발효되는 전반부 — 여기까지는 이 영화,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줄거리 결말: 친아버지가 나타난 날, 아저씨가 사라졌다
여기서부터 결말 스포일러입니다. 세월이 흘러 승이(하지원)는 중국어에 능통한 통역 전문가로 자랍니다. 아저씨의 사랑으로 반듯하게 큰 어른이 된 거죠. 그리고 수척해진 엄마와의 재회. 몇십 년 만에 마주 안은 모녀의 장면에서 극장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났을 겁니다. 엄마는 마지막 부탁을 남깁니다. 사실 친아버지가 살아 있으니, 찾아달라고.
어렵게만 보이던 친아버지는 의외로 빨리 찾아지고, 어색하지만 분명한 혈육의 재회가 이뤄집니다. 이제 두석은 애지중지 키운 딸을 보내줘야 할 차례. 딸이 아끼던 서태지 음악을 신호 삼아 마중 나가던 그 아저씨가, 친아버지가 나타난 바로 그날 사라집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 오토바이 사고, 아무도 찾는 이 없어 방치돼 있던 병상, 그리고 빼곡히 승이 이야기만 적혀 있던 통장. 승이는 자신의 전부였던 아저씨를 그렇게 다시 찾아내고, 영화는 그토록 바라던 아빠의 자리가 마련되는 결혼식장에서 마지막 눈물 버튼을 누르며 끝납니다.
원본 리뷰어는 이 후반 전개를 어처구니없다고 꼬집었는데, 저도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친아버지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매듭지을 수 있던 이야기에 굳이 실종과 사고와 병상을 얹었고, 그 오랜 세월 동안 그 흔한 연락 한번 닿지 않았다는 설정의 구멍은 눈물의 함성에 묻힙니다. 그런데도 눈물은 나옵니다. 그게 JK필름의 기술력이고, 동시에 한계입니다.
신파 논란: 이야기가 벌어준 눈물과 버튼이 짜낸 눈물
공정하게, 이 영화의 미덕부터. 전반부의 발효 과정에는 억지가 적고, 성동일과 김희원의 능청 콤비는 웃음의 타율이 높으며, 어린 승이를 연기한 박소이는 이 영화의 심장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이어 이 아역 배우가 또 한 번 어른 배우들을 울리는 걸 보면, 될 배우는 떡잎부터 다릅니다. 조선족 모녀를 향한 시대의 차별적 시선 — 학교조차 다닐 수 없던 아이의 처지 — 을 스치듯이나마 담아낸 것도 기록해둘 만합니다.
문제는 영화가 관객을 울리기로 작정하는 순간부터입니다. 슬픔이 이야기에서 자라나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슬픔을 위해 복무하기 시작합니다. 잘 흐르던 서사가 눈물이라는 목적지를 위해 무리한 우회를 하고, 캐릭터의 선택보다 관객의 손수건이 우선순위가 되죠. 사채 추심이라는 직업의 폭력성을 코미디로 세탁하고, 아이를 담보로 잡는다는 출발점의 심각함을 낭만으로 덮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승이가 팔려갔던 그 하룻밤은 이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사건인데, 구출 액션의 통쾌함으로 서둘러 봉합됩니다. 웃기고 울리는 데 바빠서 아픈 질문들은 전부 건너뛰는 겁니다.
점수는 4점. 울었느냐 물으면 울었다고 답하겠지만, 좋은 영화였냐 물으면 잠시 뜸을 들이겠습니다. 눈물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벌어준 눈물과 버튼이 짜낸 눈물. 담보의 눈물은 아쉽게도 후자에 가깝고, 저는 전자를 위해 극장에 갑니다.
관람 전 궁금한 것들
Q. 담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특정 실화의 영화화는 아니고, 1990년대라는 시대 배경 위에 세운 창작 이야기입니다. 다만 당시 이주민 가정이 겪던 신분과 교육 문제 같은 현실의 결이 이야기에 녹아 있어서, 시대극의 질감은 살아 있는 편입니다.
Q. 담보, 아이들과 같이 봐도 되나요?
A. 12세 이상 관람가로, 온 가족용 명절 영화의 전형에 가깝습니다. 다만 극 중 아이가 위험한 곳에 팔려가는 대목이 있어 어린 자녀와 볼 때는 그 장면에 대해 짧게 이야기 나눠줄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웃음과 눈물이 안전한 비율로 배합된 가족 영화입니다.
Q. 담보가 좋았다면 비슷한 영화로 뭘 보면 좋을까요?
A. 같은 JK필름 계열의 국제시장, 히말라야가 정확히 같은 결의 눈물 코스이고, 아저씨와 아이의 유사 부녀 서사가 좋았다면 7번방의 선물이나 아이 캔 스피크 쪽도 맞습니다. 반대로 버튼 없는 담백한 가족 영화를 원하시면 벌새나 미나리처럼 결이 다른 쪽을 권합니다.
눈물의 영수증
극장을 나오며 저는 제 눈물의 영수증을 들여다봤습니다. 항목: 병상의 아저씨, 빼곡한 통장, 결혼식장의 빈자리 채우기. 합계: 분명히 울었음. 비고: 그런데 이 지출, 절반은 강매였음.
그래도 환불을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성동일의 얼굴과 박소이의 눈망울에는 버튼이 아니라 진짜가 있었고, 그 진짜 덕에 이 영화의 전반부는 제값을 하니까요. 내년 설엔 부디, 버튼 없이 우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는 소원만 영수증 뒤에 적어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