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말의 일주일을 기억합니다. 사무실에도 단톡방에도 암묵의 계엄령이 내려졌던 시간 — 결말을 말하는 자, 절교를 각오하라. 세상이 영화 한 편의 결말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나뉘었던 그 주의 영화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입니다. 마블 스튜디오 19번째 작품이자 23인의 히어로가 총집결한 이 영화를, 방구석1열의 대담을 길잡이 삼아 되짚어봅니다. 그 유명한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리뷰: 흩어진 영웅들, 모이는 스톤
시빌 워의 내분으로 어벤져스가 갈라선 지 2년. 평화롭던 지구의 하늘에서 만신창이가 된 브루스 배너가 추락합니다. 그가 들고 온 소식은 경고였죠. 타노스 — 우주를 돌며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는 존재가 있으며, 여섯 개를 모두 모으면 전 우주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출처: IMDb — Avengers: Infinity War).
뉴욕에서는 타임 스톤을 노린 수하들과의 전투 끝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적의 우주선에 끌려가고, 아이언맨은 그를 구하러 돌아올 표도 없는 우주로 몸을 싣습니다. 구출에 성공한 세 사람 — 토니, 피터, 스트레인지 — 은 돌아가는 대신 선제공격을 택해 타노스의 고향 행성 타이탄으로 향하죠. 한편 우주 저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우주선 앞유리에 만신창이의 토르가 부딪혀 오면서 지구의 어벤져스와 우주의 가디언즈라는 두 세계가 처음으로 섞입니다. 지구에 남은 히어로들은 마지막 퍼즐, 비전의 이마에 박힌 마인드 스톤을 지키기 위해 와칸다로 집결하고요.
와칸다의 평원에서 벌어지는 전면전 — 끝없는 적의 물량에 전선이 무너지려는 순간, 하늘이 갈라지며 새 도끼 스톰브레이커를 든 토르가 참전해 전황을 뒤집습니다. 그러나 타이탄에서는 정반대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스톤 네 개를 쥔 타노스의 힘은 압도적이었고, 최후의 일격이 아이언맨을 끝장내려던 순간 — 어떤 상황에도 타임 스톤만은 지키겠다던 스트레인지가 그 스톤을 순순히 넘겨버립니다. 1,400만 개의 미래를 내다본 자의 알 수 없는 선택.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결말이 옵니다. 여섯 스톤을 완성한 타노스의 손가락이 울리고, 우주 생명의 절반이 — 방금까지 싸우던 영웅들의 절반이 — 재가 되어 바람에 흩어집니다. 승리의 함성도 장엄한 음악도 없이, 남겨진 자들의 멍한 침묵 위로 영화는 끝납니다.
타노스가 주인공인 이유: 음악이 먼저 알고 있었다
방구석1열 대담의 중심 명제가 이 영화의 정체를 꿰뚫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벤져스가 아니라 타노스라는 것. 타노스로 시작해 타노스로 끝나는 구조도 그렇지만, 결정적 증거는 음악에 있다는 분석이 백미입니다. 23인의 히어로가 나오는 이 영화에서 캐릭터 고유 테마가 흐르는 순간은 단 두 번 — 와칸다가 처음 열릴 때와 가디언즈가 처음 등장할 때, 그러니까 '이 세계가 이 영화에 처음 입장합니다'라는 소개장이 필요한 순간뿐입니다. 나머지 러닝타임을 지배하는 것은 조금씩 몸집을 불려가는 타노스의 테마죠. 영웅들의 테마를 아껴 쓴 것은 실수가 아니라 주제 의식 — 음악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 영화가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 주인공의 이력서도 흥미롭습니다. 1973년 코믹스에서 처음 등장한 이 빌런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죽음, 타나토스에서 왔습니다. 원작의 타노스는 죽음을 의인화한 여신에게 반해 잘 보이려 우주를 어지럽히고, 정작 그 여신에게는 '죽어서 곁에 올까 봐' 불사의 저주를 받는 뒤틀린 구애자였죠. 영화는 이 설정을 버리고 더 서늘한 동기를 입혔습니다. 자원 고갈로 멸망한 고향 타이탄의 생존자라는 트라우마, 거기서 도출된 '생명을 절반으로 줄이면 불행이 끝난다'는 결론 — 대담의 표현을 빌리면 광신적 자기확신입니다. 루소 형제는 그를 구세주 콤플렉스를 가진 소시오패스라 불렀다는데, 이 캐릭터가 무서운 이유가 정확히 거기 있습니다. 수많은 히어로들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갈등하는 동안, 오직 타노스만이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 확신은 악의보다 무섭다는 걸 이 영화는 두 시간 반 동안 증명합니다.
여섯 스톤의 설계도 다시 보니 영리합니다. 공간, 정신, 현실, 힘, 시간, 영혼 — 인간이 가장 통제하고 싶으나 끝내 통제할 수 없는 것들, 가장 원초적인 욕망들의 형상화라는 대담의 해설처럼요. 남의 마음을 바꾸고 현실을 고쳐 쓰고 시간을 되감는 힘이라니, 갖고 싶은 만큼 가진 자가 무시무시해지는 구조입니다.
조커로 기사회생한 DC처럼, 마블도 이 영화로 증명했습니다 — 빌런이 왜 존재하는가를 설득하는 순간, 빌런은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결말 해석: 절반의 패배라는 진화
기술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 생생한 타노스는 특수분장이 아니라 배우 조쉬 브롤린의 얼굴과 움직임을 수십 대의 카메라로 기록해 빚은 퍼포먼스 캡처의 산물이고, 와칸다 전투의 대군은 소수의 엑스트라를 복제하고 초상권 문제가 없는 가상의 얼굴들을 생성해 채운 결과물입니다. 스타워즈의 ILM, 반지의 제왕의 웨타, 그리고 디지털 도메인 — 평소 경쟁하던 할리우드 시각효과 명가들이 물량 앞에 총력전으로 합류한, 그 자체로 어벤져스급 협업이었다는 후일담이죠.
블랙팬서 파트의 곁가지들도 알찹니다. 비브라늄 같은 초강력 광물이 실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과학자 패널이 꺼낸 '카바인'이라는 실존 연구 — 탄소 결합 구조상 다이아몬드를 능가하는 강도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논문 이야기 — 와, 1966년 코믹스의 블랙팬서와 몇 달 뒤 결성된 흑인 인권운동 조직 블랙팬서당의 기묘한 역사적 공명까지. 무엇보다 오래 남는 것은 채드윅 보스먼의 일화입니다. 블랙팬서 열풍에 NBA 선수들이 와칸다 세리머니를 따라 하자 경기장을 찾아 선수에게 가면을 선물하던 모습, 그리고 생전 인터뷰의 한 대목 — 블랙팬서 덕분에 할로윈에 수많은 흑인 소년소녀들이 기분 좋게 쓸 수 있는 가면이 생겼다는 말. 2020년 우리 곁을 떠난 그를 생각하면, 대담의 말처럼 지금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유산입니다.
그리고 결말 이야기로 닫습니다. 절반의 패배로 끝나는 블록버스터 — 개봉 당시엔 충격이었지만 돌아보면 이것은 히어로 장르의 진화이자 대담한 상업적 감각이었습니다. 다음 편을 안 보면 화가 나게 만드는 끝. 실제로 관객들은 결말의 의미를 유추하려 자료를 뒤졌고, 쿠키 영상을 해석했고, 성지순례까지 다녔죠. 영화 한 편이 1년짜리 전 지구적 떡밥이 된 전무후무한 사건 — 그 떡밥의 회수가 어땠는지는 이 블로그의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뷰에 적어두었습니다. 점수는 8점. 단독 영화로서의 완결성 대신 10년 치 세계관의 추수를 택한 영화라 진입장벽은 분명하지만, 그 추수의 스케일과 빌런 영화로서의 과감함은 히어로물의 한 정점입니다.
함께 궁금할 두 가지
Q. 쿠키 영상이 있나요?
A. 크레딧이 전부 끝난 뒤 하나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닉 퓨리가 마지막 순간 어딘가로 신호를 보내는 장면 — 화면에 뜨는 그 상징이 바로 캡틴 마블의 호출기입니다. 엔드게임으로 가는 다리이자 캡틴 마블 단독 영화의 예고였던 셈이라, 이 블로그의 캡틴 마블 리뷰와 이어 보시면 퍼즐이 맞춰집니다.
Q. 앞선 18편을 다 봐야 하나요?
A. 다 보면 가장 좋지만 현실적인 최소 코스는 있습니다. 어벤져스 1편과 에이지 오브 울트론으로 팀의 역사를, 시빌 워로 분열의 사정을, 토르: 라그나로크로 이 영화 오프닝의 맥락을,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새 멤버들의 얼굴을 익히고 오시면 무리 없이 따라갑니다. 관람 후에는 엔드게임까지 한 호흡에 보시길 — 이 영화의 결말은 사실상 인터미션이니까요.
서로의 두 시간 반을 위하여
그 봄의 스포일러 계엄령을 다시 생각합니다. 결말 한 줄이 범죄 취급을 받던 일주일 — 돌이켜보면 그것은 수천만 관객이 자발적으로 지킨, 서로의 두 시간 반을 향한 예의였습니다. 영화가 세상에 그런 약속을 시킬 수 있던 시절의 한복판에 이 작품이 있습니다.
이제는 결말을 말해도 절교당하지 않는 시대가 됐지만, 처음 보는 분이 곁에 있다면 그 예의를 한 번 더 지켜주시길. 손가락이 울리는 그 순간의 침묵은, 모르고 맞아야 제값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