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영화표를 콘서트 티켓팅하듯 구해본 건 2019년 4월이 처음이었습니다. 예매 오픈 시간에 맞춰 새로고침을 연타하고, 통로 옆 명당을 잡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입니다. 얼마 전 방구석1열의 엔드게임 편을 보다가 그 봄의 열기가 고스란히 되살아나 이 글을 씁니다. 시간여행 작전 정리와 제작 비하인드, 그리고 결말까지 담은 글이니 아직 안 보신 분은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뷰: 절망에서 시작하는 피날레
인피니티 워의 그 절망적인 손가락 튕김 이후. 우주를 표류하던 아이언맨은 캡틴 마블의 손에 구조되어 지구로 돌아옵니다. 남은 어벤져스는 은신처의 타노스를 급습해 순식간에 제압하지만, 돌아온 것은 더 깊은 허무입니다. 그는 이미 스톤을 모두 파괴한 뒤였고, 세상의 절반을 되돌릴 방법은 그렇게 사라집니다(출처: IMDb — Avengers: Endgame).
그리고 5년 후. 모두가 상실을 안고 살아가던 어느 날, 어벤져스 기지에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5년간 소식이 없던 앤트맨. 양자 영역에 갇혀 있다 돌아온 그는 그 세계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꺼냅니다. 양자 영역을 이용한 시간여행으로 과거의 인피니티 스톤들을 가져오자는 것. 그렇게 흩어졌던 히어로들이 5년 만에 다시 모이고, 어벤져스 테마가 다시 깔리는 그 재집결의 전율과 함께 사상 최대의 시간 강탈 작전이 시작됩니다.
패배로 시작해 커튼콜로 끝나는 세 시간 — 엔드게임은 11년, 22편의 서사를 정산하는 영화입니다. 그 정산의 노선도부터 정리합니다.
시간여행 정리: 팀별 스톤 강탈 작전 노선도
토르 · 로켓 — 2013년 아스가르드로, 리얼리티 스톤
블랙 위도우 · 호크아이 — 2014년 보르미르로, 소울 스톤 / 워머신 · 네뷸라 — 같은 시간대 모라그로, 파워 스톤
아이언맨 · 캡틴 · 헐크 · 앤트맨 — 스페이스, 마인드, 타임 스톤이 한자리에 모여 있던 2012년 뉴욕, 어벤져스 1편의 그 전투 현장으로
팬서비스의 향연은 뉴욕 파트입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과거의 자신인 척 로키의 창을 가로채는 데 성공하지만 하필 진짜 과거의 자신과 마주칩니다. 미래의 캡틴과 과거의 캡틴이 맞붙는 명장면에서, 젊은 자신에게 밀리던 캡틴은 버키에 대한 정보라는 꼼수로 승부를 뒤집죠. 한편 아이언맨과 앤트맨은 과거의 토니에게 일시적 심장 소동을 일으켜 스페이스 스톤 가방을 빼돌리는 데 성공하는 듯했으나, 난입한 과거의 헐크 때문에 스톤을 놓치고 그걸 로키가 주워 사라지는 대참사가 벌어집니다. 물러설 수 없는 캡틴과 아이언맨은 남은 연료로 더 먼 과거, 1970년의 군 기지로 이동합니다. 이 파트의 백미는 작전이 아니라 만남입니다. 토니가 젊은 날의 아버지 하워드와 마주 서는 장면, 그리고 캡틴이 유리창 너머로 발견하는 그 사람.
결말은 아시는 대로입니다. 소울 스톤의 잔혹한 대가 위에서 스톤은 모두 모이고, 헐크의 스냅으로 사라졌던 절반이 돌아오지만, 과거에서 따라온 타노스 군단과의 최후 전투가 남죠. 그리고 토니 스타크의 마지막 선택 — 아이 엠 아이언맨 — 과,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삶을 찾으러 간 캡틴의 마지막 춤으로 이 거대한 서사는 닫힙니다.
덧붙여 방구석1열 과학자 패널의 팩트체크가 웃겼습니다. 양자역학 시간여행이 정말 가능하냐는 질문에, 웜홀과 블랙홀을 연결하면 이론상 가능하다는 논문이 권위 있는 물리 저널에 실제로 있긴 한데 그 성립 조건이 사실상 불가능해서, 결국 안 된다는 이야기를 가능하다는 형식으로 쓴 논문이라는 것. 앤트맨의 능력도 몸이 커지는 게 아니라 원자와 전자 사이 빈 공간을 조절하는 원리라는, 따져볼수록 더 신기해지는 해설이었습니다.
명장면 비하인드: 커튼콜과 7초에 3년
방구석1열에서 건진 제작 비하인드입니다. 캡틴 대 캡틴 격투는 한쪽을 대역과 찍은 뒤 얼굴을 합성한 1인 2역이고, 2012년 캡틴의 헬멧과 방패까지 상당 부분이 그래픽이며, 어떤 7초짜리 장면은 아홉 단계로 쪼개 3년에 걸쳐 완성했답니다. 히어로들이 단체로 양자 터널에 뛰어드는 그 멋진 수트 신도 실제 촬영장에서는 쫄쫄이 차림이었고, 여성 히어로들이 총집결하는 장면을 찍던 날에는 제작 현장의 여성 스태프들까지 모여들었다는 후일담까지.
그리고 그 장면. 최후 전투에서 포탈이 열리며 사라졌던 히어로들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을 패널들은 연극의 커튼콜에 비유했는데, 이보다 정확한 표현을 못 찾겠습니다. 11년, 22편의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하듯 걸어 나오고, 캡틴의 입에서 마침내 그 한마디 — 어벤져스, 어셈블 — 가 나올 때 극장은 객석이 아니라 공연장이 됐습니다. 개봉 당시 제 옆자리 관객은 그 장면에서 정말로 박수를 쳤고, 저는 그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대담에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엔드게임을 이 방송을 계기로 처음 봤다는 패널이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다 시기를 놓쳐 못 보고 있었다는 고백과, 뒤늦게 보고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소감. 이 영화의 감동이 개봉 열기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증언인 셈이죠.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이벤트라기보다 정산에 가깝습니다. 2008년 아이언맨에서 시작된 11년 치 서사의 부채를 세 시간에 걸쳐 하나하나 갚는 영화. 물론 흠도 있습니다. 전반부의 속도는 분명 느리고, 시간여행 규칙은 따져 물으면 헐거워지는 구석이 있어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목적이 논리의 완결이 아니라 감정의 완결이라는 걸 인정하면, 그 헐거움은 값싼 흠이 됩니다. 점수는 8점입니다.
복습 겸 세 문답
Q. 엔드게임 전에 꼭 봐야 할 작품은 뭔가요?
A. 최소 코스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하나입니다. 엔드게임이 그 직후에서 시작하니까요. 감동의 배수를 높이려면 아이언맨 1편,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 어벤져스 1편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엔드게임의 명장면 대부분이 이 작품들의 장면을 되받아치는 구조라, 아는 만큼 울컥하게 됩니다.
Q. 과거를 바꾸면 현재도 바뀌는 건가요? (스포일러)
A. 이 영화의 시간여행은 백 투 더 퓨처식이 아닙니다. 과거를 바꿔도 자신의 현재는 바뀌지 않고, 그 지점에서 새로운 분기 시간선이 생겨나는 방식이죠. 극 중 헐크가 직접 그 통념을 부정하는 대사를 하고, 빌린 스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도 분기 우주의 붕괴를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로키가 스톤을 들고 사라진 그 해프닝이 훗날 드라마 로키의 출발점이 된 것도 이 규칙 덕분입니다.
Q. 엔드게임에도 쿠키 영상이 있나요?
A. 영상 쿠키는 없습니다. 대신 크레딧 맨 끝에 쇳소리가 하나 들리는데, 2008년 아이언맨 1편에서 토니가 첫 수트를 만들던 망치질 소리입니다. 11년 서사의 시작점으로 마침표를 대신한 셈이라, 끝까지 앉아 그 소리를 듣고 나오는 게 이 영화의 올바른 퇴장법입니다.
커튼콜이 끝난 뒤
글을 쓰다 그해 봄의 새벽 예매 창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영화 한 편 보겠다고 온 나라가 티켓팅을 하던 그 소동은, 지나고 보니 극장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뜨거운 형태의 축제였습니다. 방구석1열의 페이즈4 전망 — 방패를 이어받은 팔콘, 성별의 장벽을 지운 캡틴 마블, 그리고 아직 안 보여준 세계가 98%라는 마블의 호기 — 을 듣다 보면 이 영화가 끝이 아니라 쉼표라는 것도 새삼 확인하게 되고요.
3천 번의 가능성 중 단 하나의 미래가 있다던 닥터 스트레인지의 계산처럼, 그 봄은 다시 오지 않을 단 한 번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사랑합니다, 3000만큼 — 이 인사는 토니의 것이지만, 그 봄의 극장에 있었던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