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회 날, 청군 백군이 마주 보고 발을 구르며 박수를 쳤습니다. 쿵쿵 짝, 쿵쿵 짝 — 그게 노래인 줄도, 하물며 퀸의 We Will Rock You인 줄도 모르고 우리는 그 리듬을 알고 있었죠. 제목을 배우기 전에 몸이 먼저 외운 음악, 퀸의 불멸이란 그런 겁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불멸의 목소리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인데 — 뜻밖에도 이 글의 바탕인 리뷰어, 스스로 비틀즈보다 퀸이 좋다는 골수팬이 매긴 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 극장에서 떼창까지 하며 이 영화를 사랑한 995만 관객의 감동은 온전히 정당합니다. 이 글은 그 체험과 별개로 영화라는 그릇의 완성도를 따져보는 비평이고, 결말까지 다루니 참고하세요. 제 점수도 4점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리뷰: 이방인 프레디
호평할 것부터 호평합니다. 오프닝은 근사합니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 — 무대 뒤에서 가볍게 몸을 푸는 프레디(라미 말렉)의 등을 카메라가 따라가고, 천막이 걷히는 순간 드러나는 수만 관객의 물결. 두근거리는 전설의 부활이죠(출처: IMDb — Bohemian Rhapsody).
영화가 프레디를 그리는 관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 영화의 프레디는 철저하게 외로운 이방인입니다. 데뷔 전, 파로크 불사라라는 본명으로 공항 수하물 일을 하며 이민자 차별을 받던 시절부터 영화는 시작하는데 —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했고 어디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했으며 오직 무대 위에서만 빛났던 사람이라는 관점은, 이 영화가 프레디의 근원적 고독을 응시하려 했다는 증거로 높이 평가할 대목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조차 그를 독특한 의상과 콧수염, 파격이라는 단어로만 소비해 오지 않았던가 — 그 시선에 이해와 공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자각까지 리뷰는 짚습니다.
초반의 밴드 결성부도 감동의 연속입니다. 프레디가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를 처음 만나는 밤부터 퀸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기까지, 신화 같은 장면들이 재현되죠. 배우들의 싱크로도 수준급 — 특히 브라이언 메이 역의 귈림 리는 본인이 아닌가 눈을 의심할 정도이고, 라미 말렉의 연기는 영화의 기둥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는 성공한 전기 영화 같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혹평 이유: 팬이 매긴 4점의 논거
첫째, 편집과 구성입니다. 퀸의 성공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으로 처리되고, 정작 밴드 멤버들 사이의 교감 — 음악적 동지로서 쌓여가는 우정과 연대 — 은 화면에 묘사되지 않습니다. 쌓인 것이 없으니 터지는 것도 공허해서, 중반의 갈등과 반목은 뜬금없이 가볍게 느껴지죠. 표제곡 보헤미안 랩소디의 작곡 과정과 프로듀서와의 충돌은 퀸의 정체성을 보여줄 황금 재료였지만, 영화는 그것을 관통하는 코드가 아니라 하나의 에피소드로 소비하고 지나갑니다.
둘째, 감독의 주춤거림입니다. 이 영화는 전설을 다루는 부담 앞에서 머뭇거립니다. 프레디의 아픔에 대해서도 그의 사랑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워하는 태도 — 그 조심성이 영화를 밋밋하게 만들고, 나열되는 성공과 프레디의 고통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구슬처럼 흩어집니다. 셋째, 구조의 문제 — 리뷰어는 이를 '로키 구조'라 부릅니다. 로키의 이야기가 아폴로와의 시합 전에 이미 완성되듯, 이 영화의 모든 갈등 — 멤버들과의 불화, 메리와의 관계, 그를 이용하던 폴 프렌터의 축출, 그리고 병의 고지까지 — 은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오르기 전에 전부 해소됩니다. 남은 20분은 갈등 없는 재현이죠. 물론 그 재현은 경이롭습니다. 실제 공연 영상과 대조해도 프레디의 동선과 손짓, 곡 순서까지 복제해낸 완성도니까요. 그러나 아쉬움은 정확히 그 지점을 겨눕니다. 차라리 무대와 음악에만 집중했어야 했다고. 영화는 공연 도중 음악을 끊어가며 펍의 관객들, 후원금 전광판, 가족들의 얼굴을 끼워 넣고, 모처럼 가치를 증명하던 스크린X 화면비마저 들락날락합니다. 전설의 20분을 통째로 맡겨도 모자랄 판에, 편집이 자꾸 무대에서 관객을 끌어내리는 겁니다.
아픔은 성실히 나열했으나 그 모든 것을 뚫고 나온 천재성은 그리지 못했다 — 이 영화가 훌륭해 보인다면 그것은 영화의 힘이 아니라 퀸의 힘이라는 것이 4점의 요지입니다.
어디까지 실화인가: 시간표의 재배치, 그리고 나의 변
고증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사소한 티끌들이 있습니다. 리우 공연의 연도가 바뀌고 몇몇 곡의 발표 시기가 어긋나는 정도 — 팬의 눈에 밟히지만 큰 흠은 아닙니다. 성공의 압축도 각색의 권리죠. 실제의 퀸은 1, 2집이 상업적으로 신통치 않았고 1974년 킬러 퀸이 차트에 오르고서야 성공이 가시화됐는데, 영화에서는 데뷔하자마자 미국 투어를 도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실제의 프레디는 라이브 에이드 당시 자신의 병을 알지 못했습니다. 진단은 그 뒤의 일이고 —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죽음의 공포와 마주한 그가 무너지는 대신 음악에 더 깊이 몰두했고, 퀸 후반기의 명반들이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났다는 것. 각색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공포를 예술로 극복해낸 사람'이라는 프레디 머큐리의 본질을, 영화는 극적 효과를 위한 시간표 재배치 속에 평범한 문법으로 뭉개버렸다 — 팬 리뷰어가 끝내 용서하지 못한 대목이 여기입니다.
점수는 4점. 다만 저의 변을 한 줄 보태겠습니다. 영화의 흠과 극장의 체험은 다른 장부입니다. 암전된 극장에서 수백 명이 함께 발을 구르고 떼창을 하게 만든 그 겨울의 신드롬은, 영화가 아니라 음악이 해낸 일이라 해도 분명 귀한 사건이었습니다. 4점짜리 영화가 만든 10점짜리 밤들이 있었다는 역설 — 그것이 이 작품의 정확한 자리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까지 마이크 앞에 섰고, 예술가의 자세를 잃지 않음으로써 그 어떤 병도 자신의 이름을 흐리지 못하게 했던 고결함 — 영화가 끝내 담지 못한 프레디 머큐리의 진짜 위대함은 거기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셋
Q. 아카데미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았나요?
A. 라미 말렉이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편집상, 음향 부문까지 4개 부문을 수상하며 그해 최다 수상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글에서 혹평한 바로 그 편집이 편집상을 받았다는 사실인데 — 그만큼 이 영화를 둘러싼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렸다는 증거로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라미 말렉의 수상에는 이견이 적었고요.
Q. 떼창 상영이 뭔가요?
A. 개봉 당시 한국에서 벌어진 신드롬입니다. 관객이 소리 내어 따라 부르고 발을 구르는 것이 허용되는 싱어롱 상영관이 따로 열렸고, 극장이 콘서트장이 되는 진풍경이 몇 달간 이어지며 995만이라는 음악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만들었죠. 지금도 재개봉이나 싱어롱 이벤트가 종종 열리니, 이 영화를 가장 재밌게 보는 방법은 여전히 그 떼창의 한가운데입니다.
Q. 영화를 보고 나서 뭘 더 보면 좋을까요?
A. 유튜브에서 1985년 라이브 에이드의 실제 퀸 공연 영상을 꼭 찾아보세요. 영화가 복제한 원본 — 20분 만에 전 세계를 사로잡은 그 무대 — 를 보면 영화의 재현이 얼마나 정밀했는지와, 그럼에도 실물의 폭발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이 글의 평가를 동시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퀸의 명반들로 이어지실 테고요.
쇼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운동회의 그 쿵쿵 짝을 다시 생각합니다. 제목도 모르는 아이들의 발까지 구르게 만든 사람 — 전기 영화는 아쉬웠지만, 전기 영화 따위가 어쩌지 못하는 자리에 그의 음악은 이미 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4점은 영화에게 주는 점수일 뿐,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자리는 점수 바깥입니다. 오늘 밤엔 영화 대신 그레이티스트 히트를 틀어야겠습니다. 쇼는 계속되어야 하고 — 그의 목소리 속에서, 계속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