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3주 차의 밤 11시, 배달 앱을 켠 손가락 위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싸운 적이 있습니다. 먹어, 치킨은 살 안 쪄 — 참아, 3주가 아깝지 않냐. 결국 반반 무 많이로 협상이 타결되던 그 밤 깨달았죠. 내 안에도 베놈이 산다는 걸. 영화 베놈은 그 내적 사투를 외계 생명체와의 동거로 바꿔놓은 이야기입니다.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떠들고 사사건건 참견하는데, 가끔은 이상하게 든든한 또 하나의 나 — 톰 하디의 이 안티히어로 영화를 결말과 쿠키까지 담아 정리합니다.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
베놈 리뷰: 루저에게 찾아온 외계인
이야기는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를 싣고 돌아오던 라이프사의 우주선이 추락하면서 시작됩니다. 수거 과정에서 한 마리가 사라지는데, 이 녀석은 사람의 몸을 갈아타며 우주선의 주인 라이프사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하죠(출처: IMDb — Venom).
한편 샌프란시스코에는 정의로운 리포터 에디 브록(톰 하디)이 있습니다. 변호사 여자친구 애니(미셸 윌리엄스)와 알콩달콩 살던 그에게 회사가 내키지 않는 일을 시키죠. 라이프사 CEO 드레이크의 홍보성 인터뷰 — 하필 전날 밤 에디는 애니의 노트북에서 라이프사가 노숙자들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벌인다는 정황이 담긴 메일을 보고 맙니다. 인터뷰에서 참지 못하고 폭탄 질문을 던진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에디는 해고당하고, 라이프사를 변호하던 로펌의 애니마저 기밀 유출 건으로 잘리며 파혼까지 — 직장과 사랑을 하루에 잃은 겁니다. 6개월 후, 드레이크는 심비오트 결합 실험을 사람에게 강행합니다. 심비오트는 숙주와 궁합이 맞으면 공생하지만 맞지 않으면 숙주가 버티지 못하는데, 무리한 실험에 희생이 쌓여가죠.
바닥까지 내려간 에디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낀 라이프사의 박사가 내부고발을 도와달라 찾아오고 — 한 번 데인 에디는 거절하지만, 애니의 새 남자친구를 목격한 밤 잃을 게 없어진 남자는 전화를 겁니다. 잠입한 실험실에서 증거를 찍던 에디는 안면 있던 노숙자 여인을 구하려 캡슐을 부수고, 그 순간 그녀의 몸에 있던 심비오트가 에디에게 옮겨붙습니다. 그날부터 몸이 이상해집니다. 냉동 감자를 생으로 씹어먹고, 머릿속에서 낮고 음침한 목소리가 말을 걸기 시작하고, 병원 MRI의 주파수에 극렬한 발작을 일으키고(심비오트의 약점은 특정 주파수와 불입니다). 그리고 드레이크의 부하들이 들이닥친 밤, 마침내 그 녀석이 전신을 뒤덮으며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베놈이다.
결말 정리: 변심한 외계인, 몸을 나눈 두 루저
이 영화의 진짜 장르는 히어로물이 아니라 버디 코미디입니다 — 그것도 몸 하나를 같이 쓰는 룸메이트 코미디. 에디를 숙주 취급하며 루저라 구박하던 베놈이 어느새 그의 짝사랑을 안타까워하고, 전 직장 건물 앞에서 한숨 쉬는 에디가 불쌍했는지 순식간에 옥상까지 올려다 주고(물론 에디는 기겁합니다), 사과는 할 줄 모르면서 챙길 건 다 챙기는 — 이 츤데레 외계인과 찌질한 인간의 티키타카가 영화의 심장이죠.
흥미로운 건 베놈의 변심입니다. 원래 동족을 지구로 불러들이려던 그가 라이엇 저지에 합류하며 던지는 이유 — 지구가, 정확히는 에디가 마음에 들어버렸다는 것. 자기 별에서도 에디처럼 루저였다는 녀석의 고백은 이 영화를 '패배자 둘이 만나 비로소 온전해지는 이야기'로 읽게 만듭니다. 서사의 마무리도 그 톤을 지킵니다. 병원에서 강제 분리된 틈에 에디는 납치되고, 드레이크는 이미 또 다른 심비오트 라이엇과 결합해 있었다는 반전 — 처형 위기의 에디를 구한 것은 애니의 몸에 깃든 베놈이고, 그 유명한 '달콤한 키스'로 베놈은 에디에게 돌아옵니다. 로켓 발사장의 최종 결전은 심비오트 대 심비오트의 난타전 — 분리 위기와 애니의 주파수 지원, 그리고 쓰러진 에디를 제 몸으로 감싸 불길에서 지켜내는 베놈의 희생까지. 물론 확실한 생존 신고와 함께, 기묘한 동거는 계속됩니다. 나쁜 놈만 혼내주기로 한 공생 규칙과 함께요.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결핍 둘의 합작 — 베놈이 안티히어로 영화의 출사표로 택한 설계는 '루저들의 연대'였습니다.
쿠키의 의미: 카니지라는 예고장, 그리고 온도 차
크레딧을 지키셨다면 두 개의 선물이 있습니다. 첫 번째 쿠키 — 교도소 독방의 연쇄 사건범 클리터스 캐서디(우디 해럴슨)를 에디가 인터뷰하러 가고, 캐서디는 섬뜩한 예고를 남기죠. 내가 나가면, 카니지가 날뛸 거라고. 베놈의 숙적이자 가장 위험한 심비오트 카니지의 예고장으로, 속편의 방향을 못 박은 쿠키입니다. 두 번째는 당시 개봉을 앞뒀던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선공개 영상이었고요.
평가를 정리합니다. 이 영화는 평단과 관객의 온도 차가 역대급이었던 작품입니다. 평론은 각본의 앙상함과 빌런의 평면성을 때렸지만, 관객은 전 세계 8억 5천만 달러의 흥행으로 응답했죠. 양쪽 다 맞습니다. 히어로 영화의 잣대로 보면 드레이크는 밋밋하고 전개는 성기며 액션의 CG 질감도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한 몸 쓰는 괴짜 룸메이트 코미디'로 보는 순간 거의 모든 장면이 제값을 합니다 — 그리고 그 중심에 톰 하디가 있습니다. 에디의 찌질함과 베놈의 그르렁거리는 저음(그 목소리도 톰 하디 본인입니다)을 오가는 사실상의 1인 2역, 병원 로비와 레스토랑 수조 신의 몸개그까지 — 캐릭터의 애매함마저 케미로 덮어버리는 열연이죠.
점수는 6점. 걸작은 아니지만 원본 리뷰어의 총평처럼 "언제 봐도 재밌는 영화" — 맥주 안주형 명랑 괴수물로는 충분히 제 몫을 하는 작품입니다.
공생 규칙 세 가지
Q. 이 영화에 스파이더맨이 나오나요? 마블 영화 아닌가요?
A. 나오지 않습니다. 베놈은 마블 캐릭터지만 이 영화는 어벤져스의 MCU가 아니라 소니가 자체 구축한 유니버스의 1호 작품이라, 원작 코믹스에서 베놈의 탄생과 얽혀 있는 스파이더맨 없이 홀로 서사를 시작합니다. 거미줄 없이도 성립하도록 '우주선 추락'으로 기원을 새로 쓴 각색이 이 영화의 승부수였던 셈이죠. 두 세계의 교차 떡밥은 이후 속편들의 쿠키에서 조금씩 이어집니다.
Q. 속편은 어디까지 나왔나요?
A. 3부작으로 완결됐습니다. 쿠키가 예고한 카니지와의 대결은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2021)에서 그려졌고, 베놈: 라스트 댄스(2024)로 에디와 베놈의 여정이 마무리됐죠. 1편의 룸메이트 케미가 좋았다면 그 콤비의 끝까지 따라가 볼 만하고, 특히 2편은 90분대의 짧고 경쾌한 호흡이라 1편과 이어 보기 부담이 없습니다.
Q. 어둡고 잔인한 영화인가요? 가볍게 봐도 되나요?
A. 포스터의 험악한 인상과 달리 톤은 명랑한 쪽입니다. 15세 관람가 수위에서 괴수 액션은 시원하게, 유혈은 절제되어 있고 — 무엇보다 에디와 베놈의 만담이 영화의 절반이라 공포물보다는 코미디에 가깝게 흘러갑니다. 머리 비우고 웃으며 보는 금요일 밤 용도로 정확한 영화이고, 같은 시기의 묵직한 안티히어로물 조커와 비교하며 보면 '빌런 주인공'의 두 극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내 안의 베놈과 협상하는 법
그 야식의 밤을 다시 생각합니다. 내 안의 베놈과 싸워 이기는 법은 없습니다 — 다만 좋은 조항으로 협상할 수 있을 뿐이죠. 치킨은 반반, 나쁜 놈은 머리만. 공생이란 원래 그런 겁니다.
완벽하지 않은 나와 완벽하지 않은 또 하나의 나가 서로를 견디며 그럭저럭 영웅 비슷한 것이 되어가는 이야기 — 베놈이 7년간 사랑받은 비결은 괴물의 얼굴이 아니라 그 만만한 온기였을 겁니다. 오늘 밤 머릿속 목소리가 치킨을 외치거든, 이 영화를 트세요. 최소한 혼자 먹는 기분은 안 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