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벽 두 시, 차 한 대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저는 빨간불을 지키며 서 있었습니다. 건너편에도 사람이 없는데 그냥 서 있었어요. 서 있으면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건 원칙인가, 습관인가, 아니면 그냥 겁인가. 경관의 피를 보고 나서 그 새벽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이 영화가 두 시간 내내 묻는 게 정확히 그 질문이거든요. 정의를 행하는 손은 깨끗해야 하는가. 조진웅과 최우식이 그 질문을 사이에 두고 맞서는 영화이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5점입니다. 아래부터는 결말까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경관의 피 리뷰: 유리지갑 반장의 벤츠
신참 경찰 민재(최우식)는 동료가 용의자에게 과한 폭력을 쓴 사건에서, 같은 식구를 덮어주는 대신 법정에서 사실대로 증언하는 인물입니다. 정의로운 건지 아직 어린 건지 모를 이 원칙주의자에게 감찰 계장이 은밀한 임무를 내립니다. 광역수사대 반장 박강윤(조진웅)의 밑으로 들어가 그를 감시하라는 것(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강윤은 이상한 사람입니다. 경찰 월급은 뻔한 유리지갑인데 고급 양복과 시계가 즐비하고 벤츠를 몰며 비싼 아파트에 삽니다.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 차동철(박명훈)에게 스폰을 받으며 그가 흘려주는 정보로 라이벌 조직만 골라 잡는다는 의혹까지. 그런데 강윤은 잠입한 민재를 보자마자, 선배 형사들이 부러워할 만큼 파격적으로 파트너 자리에 앉힙니다. 민재의 아버지와 얽힌 오래된 인연 때문이죠.
영화 초반은 정말 좋습니다. 민재가 강윤을 미행하고, 증거와 사진을 맞춰보고, 밤거리에서 추적하는 장면들은 언더커버물 특유의 팽팽한 긴장을 제대로 유지합니다. 호텔에서 도청하는 민재가 누가 봐도 경찰 티를 풀풀 풍겨서 몰입이 잠깐 깨지긴 했지만요. 접선남의 정체를 따라가니 경찰 윗선이 실재한다는 반전도 좋았습니다. 민재로서는 계장의 말이 맞는지 강윤의 말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눈앞에 범죄자와 증거가 있는데도 잡지 않는 강윤에게 민재가 따지면 돌아오는 답은 이렇습니다. 쥐 잡는 칼과 소 잡는 칼은 따로 있다. 더 큰 악을 잡기 위해 작은 악은 내버려둘 수 있다는 우선순위의 논리죠. 스폰서에게 빌린 공작금을 성실히 갚는 모습에 민재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던 날 자신을 붙들어준 사람이 강윤이었다는 것까지 알게 됩니다. 결국 "문제없음"이라 보고를 올리지만 그 직후 내사과가 들이닥치고 — 금고에서 나온 건 계약서 몇 장뿐 — 광수대 동료들의 색출 끝에 민재의 정체가 강윤 앞에서 폭로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장면. 용의자를 겁박하는 강윤을 민재가 막아서자, 강윤은 민재의 눈두덩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깁니다. 반장님은 회색지대에 선 게 아니라 이미 시커먼 구정물에 빠져 있다는 민재의 말에, 처음으로 흔들리는 강윤의 얼굴.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가장 뜨거운 지점입니다.
감시하는 자가 감시 대상을 믿게 되는 순간, 이 영화는 수사물이 아니라 신념의 대결이 됩니다. 문제는 그 대결의 결말입니다.
원작과 비교: 오야붕과 착한 경찰 사이
이 영화는 일본 소설이 원작인데, 굳이 그 사실을 몰라도 화면에서 일본 냄새가 납니다. 3대째 내려오는 직업, 묘하게 고착된 지배 구조, 고위층 관료들의 전형적인 얼굴들. 같은 경찰 이야기라도 베테랑 같은 한국식 영화와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다릅니다. 뭐가 낫고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개봉과 동시에 원작만 못하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는데, 저는 그 평가가 온전히 정당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원작에 있던 이념의 이야기가 빠지면서 진지한 버디 무비 쪽으로 이동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3대를 흐른다는 '경관의 피', 그러니까 혈통이라는 제목의 테마가 정작 영화에서는 흐릿하다는 것도요.
캐릭터 설계의 차이가 결정적입니다. 원작의 가가야는 조직의 오야붕에 가까운 인물인데, 한국판 강윤은 훨씬 '경찰다운' 사람입니다. 돈이 많은 게 좀 이상할 뿐 나쁜 짓이랄 것도 별로 없고, 조직과의 유착도 깊어 보이지 않아요. 그러니 같은 경찰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그 장면이 캐릭터와 불협화음을 냅니다. 저 사람이 저럴 사람인가 싶은 거죠. 차라리 강윤을 더 극단으로 밀었어야 했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진짜 회색의 인간으로요. 어정쩡하게 착한 경찰로 그려놓으니, 수단의 극단성이 인물에게서 붕 떠버립니다.
아쉬운 이유: 갈등이 시시해지면 영화도 시시해진다
후반부의 경관의 피는 무척 평범해집니다. 결국 마약 조직 소탕전이에요. 투캅스 시절부터 한국 경찰 영화가 수십 번 우려낸 그 소재. 연남회라는 뒷배의 등장도 상투적이고, 조직을 잡는 과정의 몇몇 묘사는 허술하며, 거래판에서 이중 작전을 쓴다는 전개에 이르면 이 영화는 완전히 익숙한 문법으로 회귀합니다. 능글맞은 웃음 뒤에 위험을 숨긴 차동철 — 박명훈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 마저 후반엔 허무하게 소비되고요.
그런데 진짜 아쉬움은 클리셰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심장은 정의에 대한 두 남자의 대립이었습니다. 정의를 행하는 손은 더러워도 되는가. 썩은 현장을 파헤치는 경찰의 손이 마냥 깨끗할 수 있는가. 이 갈등이 영화의 전부였는데, 영화는 그 질문에 답하려 하지도 더 파고들려 하지도 않습니다. 갈등이 시시하게 끝나니 영화도 시시하게 끝납니다. 결말에 이르면 경관의 피가 흐른다던 민재는 그냥 싸움 잘하는 용감한 일선 경찰이고, 그렇게 수상하다던 강윤은 그냥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뒷이야기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마무리. 우리는 총격전을 보러 간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신념의 두 경찰이 서로에게 물들며 섞이는 과정을 보러 돈을 낸 건데 말이죠.
그럼에도 방법론만 놓고 보면 저는 강윤의 회색지대론에 더 설득당했습니다. 모든 질서를 지켜가며 범인을 잡는 경찰을 상상해보세요. 추적 중에 횡단보도 파란불을 기다리는 형사에게 누가 잡혀주겠습니까. 새벽 두 시의 빨간불 앞에 서 있던 저로서는 뜨끔한 논리였어요. 다만 내기 경주로 몇억의 공작금을 갚았다는 대목에선 어이가 없었습니다. 운이 나빴다면요? 그 돈이 나올 곳은 결국 범죄거나 연남회뿐이고, 그 순간 강윤은 정의가 아니라 조직의 사냥개로 전락합니다. 회색지대는 그렇게 허술한 발밑 위에 서 있는 게 아니거든요.
연기는 좋았습니다. 조진웅의 존재감은 말할 것도 없고, 최우식의 변신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벗고 단번에 상대를 제압하는 격투 장면들, 그리고 표정. 가끔 어색한 대사 처리조차 신참의 미숙함을 위한 디테일로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사소하지만 궁금한 것도 하나 적어둡니다. 트렁크에 갇힌 민재가 탈출하지 못하는 장면 — 요즘 차량 트렁크엔 안쪽 탈출 손잡이가 있지 않나요? 손발이 묶인 것도 아니었는데요. 저도 끝내 사실 확인을 못 하고 글을 올리니,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세 가지 문답
Q. 경관의 피 원작은 어떤 작품인가요?
A. 일본 작가 사사키 조의 소설 '경관의 피'입니다. 원작은 3대에 걸친 경찰 가문의 혈통과 시대의 이념 문제까지 아우르는 이야기인데, 한국판은 그중 언더커버 구도를 중심으로 가져오면서 이념의 층위는 덜어내고 두 경찰의 버디 무비 쪽으로 체급을 옮겼습니다. 원작의 결이 궁금하신 분은 소설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Q. 경관의 피 결말은 어떻게 되나요? (스포일러)
A. 강윤과 민재는 어정쩡한 동행 상태로 마약 조직 소탕을 마무리합니다. 강윤의 혐의는 사실상 해소되어 '정의로운 사람'으로, 민재는 감시자에서 파트너로 남는 결말인데, 두 사람의 신념 대립이 명확한 답 없이 봉합되는 탓에 개인적으로는 허탈함이 남았습니다. 이 리뷰에서 5점을 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Q. 최우식의 액션 연기, 진짜 괜찮나요?
A. 이 영화의 확실한 수확입니다. 설정상 격투에 능한 민재를 연기하면서 기존의 여린 이미지를 벗고 단번에 상대를 제압하는 몸을 보여주는데, 표정 연기의 폭도 함께 넓어졌습니다. 조진웅의 묵직함, 박명훈의 서늘한 능글맞음까지, 배우들만큼은 이 영화에서 아쉬울 게 없습니다.
빨간불을 건너며
점수는 10점 만점에 5점입니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볼만한 평작. 초반의 팽팽한 긴장과 배우들의 얼굴값은 분명한데, 혈통은 사라지고 브로맨스만 남았습니다. 정의를 행하는 손은 깨끗해야 하는가라는 좋은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갔다면 수작이 됐을 텐데, 영화는 그 질문 앞에서 먼저 눈을 돌렸습니다.
그날 새벽의 저는 결국 파란불을 기다려 건넜습니다. 지금도 그게 원칙이었는지 겁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이 영화를 보고 하나는 알겠습니다. 회색지대에 서겠다는 말은 멋있지만, 그 회색이 어디까지 어두워져도 되는지 스스로 답하지 못하면 그건 신념이 아니라 핑계가 된다는 것. 경관의 피가 끝까지 물고 늘어졌어야 할 이야기가 바로 그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