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 우리 동네 놀이터는 엘사로 가득했습니다.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예닐곱 살 여왕님들이 미끄럼틀 위에서 렛잇고를 열창하던 풍경.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최초의 천만 관객이라는 기록은 통계지만, 제게 겨울왕국 1편의 위력은 그 놀이터의 합창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6년 만의 2편을, 이제는 훌쩍 자랐을 그날의 여왕님들과 같은 상영관에서 봤습니다. 엘사 마법의 기원부터 결말의 선택까지 스포일러가 있는 리뷰이니 참고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5점입니다.
겨울왕국 2 리뷰: 6년 만의 겨울
1편이 바꾼 판부터 복기해 둡니다. 한국은 애니메이션의 무덤이라던 징크스와 '애니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함께 녹여버린 영화. 실제로 국내 극장 애니 흥행 상위권이 겨울왕국 전과 후로 나뉠 만큼 시장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그 후광 속에 도착한 2편은 개봉 6일 만에 500만을 돌파했는데, 1편이 17일 걸렸던 기록이니 열흘이나 빠른 속도입니다(출처: IMDb — Frozen II).
2편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영역은 비주얼입니다. 디즈니가 이 영역에서 실망을 준 적이 없다지만 이번엔 정도가 다릅니다. 어둠의 바다를 건너는 엘사의 그 시퀀스,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을 실사로 착각하고 놀랐던 순간, 가을빛 숲과 노을진 산의 풍경이 바뀔 때마다 그저 행복해지는 화면들. 엘사의 머리카락만 40만 가닥을 만들었다는 후일담처럼, 3D 애니메이션 기술이 어떤 완성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전시장 같은 영화입니다. 6년 사이에 이만큼 발전했다면 다음엔 어디까지 갈까 — 그 기대를 품게 하는 것이 디즈니라는 브랜드의 힘이겠죠.
눈과 물과 바람의 화면들은 역대 최고 수준 — 문제는 그 경이로운 그림을 각본이 따라가느냐입니다. 이 리뷰의 저울은 그 사이에 놓입니다.
엘사 마법의 기원: 떡밥 회수와 넓어진 세계관
2편의 가장 큰 미덕은 회수입니다. 원래 속편 계획이 없던 작품이라 1편이 흘려둔 떡밥들이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걷어 올렸습니다. 대표적인 게 엘사 마법의 기원. 1편에서 그냥 타고났다고 넘어갔던 그 힘이, 2편에서는 세계관에 존재하는 자연의 정령들과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설명됩니다. 팬덤의 오랜 논쟁거리였던 부모님의 항해 목적 같은 의문들도 매듭지어져, 더 이상의 떡밥이 남지 않도록 선을 그었죠.
세계관 확장도 영리합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신비의 강 아토할란, 안개에 갇힌 북쪽의 마법 숲, 그곳의 원주민 노덜드라 사람들, 물·불·바람·대지의 4원소 정령, 그리고 다섯 번째 정령의 정체까지. 마법과 왕가와 인간 아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판타지답게 이야깃거리의 잠재력을 아낌없이 꺼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박수받아 마땅한 대목. 원주민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메시지입니다. 엘사와 안나의 할아버지 세대가 노덜드라 사람들에게 저지른 기만 — 선물이라 속인 댐이 사실은 그들의 터전을 옥죄는 장치였다는 것 — 을 손녀 세대가 마주하고, 왕국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댐을 부수어 자연과의 관계를 되돌리는 이야기. 주인공들이 직접 사과 대사를 말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저는 이 연출이 옳았다고 봅니다. 천 마디의 사과보다 한 번의 진실된 행동이 무겁고, 대사로 못 박는 순간 메시지는 설교가 되니까요. 다만 이 정치·외교적 은유를 지금의 영유아 관객들이 얼마나 이해할지는 궁금한 지점이라, 아이와 함께 보신 부모님이 계시다면 댓글로 아이의 반응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쉬운 이유: 크리스토프라는 물음표
아쉬움의 목록입니다. 첫째, OST. 인투 디 언노운과 올 이즈 파운드를 빼면 1편처럼 온종일 맴도는 곡이 없습니다. 특히 크리스토프의 로스트 인 더 우즈는 이 영화 최대의 물음표입니다. 80년대 뮤직비디오풍 연출이 개그 포인트였던 것 같은데 웃기지도 절절하지도 않은 채로, 장면과 장면을 이어야 할 뮤지컬 넘버가 오히려 흐름을 툭툭 끊습니다.
둘째, 그 크리스토프의 서사 전체. 왕국의 위기와 부모의 진실, 정령들의 시험이라는 거대한 사건들이 진행되는 내내 이 남자 혼자 청혼 타이밍만 재며 겉돕니다. 사건 해결에 기여한 것 없이 러닝타임이 흐르다 마지막에 여왕의 남편 자리에 오르는 걸 보며, 진취적 여성상을 그려온 디즈니가 남자판 신데렐라를 만들어버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대안은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야생 생활에 익숙한 얼음 장수 출신답게, 터전을 잃은 아렌델 주민들에게 불 피우고 천막 치는 법을 가르치며 여왕 자매의 빈자리를 지키는 크리스토프였다면 — 노래도 자연스럽고 국서 승격도 납득됐겠죠.
셋째, 4대 정령의 소비 방식. 화난 정령을 달래서 친구가 되는 패턴이 네 번 반복되는 구조는 엘사를 다섯 번째 자리에 앉히기 위한 절차처럼 기계적입니다. 볼거리로는 훌륭하나 캐릭터로는 남지 않아요. 넷째, 빠른 전개가 남긴 개연성의 구멍들 — 처음 보는 트롤들이 왕국을 대신 지키는데 놀라는 주민이 없고, 수십 년째 전쟁 중이라는 두 세력이 그러기엔 너무 멀쩡하며, 주인공들이 도착하자마자 화해가 이뤄집니다.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넓어진 세계관과 경이로운 그래픽, 그러나 그 속도를 못 따라간 각본. 그래도 후속작 징크스가 유명한 디즈니에서 이 정도면 성공적인 2편이라는 결론에 동의합니다. 점수는 6.5점. 마법 없이도 절망의 바닥에서 다음 옳은 일을 하나씩 해내는 안나의 성장과 올라프의 하드캐리, 최고존엄으로 등극한 엘사의 비주얼만으로도 극장값은 합니다.
함께 궁금할 두 가지
Q. 1편을 안 보고 2편을 봐도 되나요?
A. 이야기 자체는 따라갈 수 있지만 권하지 않습니다. 2편의 핵심 재미가 1편이 남긴 의문들 — 엘사의 힘, 부모님의 비밀 — 을 회수하는 데 있어서, 1편 없이는 감동의 절반이 증발합니다. 두 편을 이어 보면 하나의 큰 이야기로 완성되는 구조라, 겨울마다 정주행하기 좋은 조합입니다.
Q. 겨울왕국 2에도 쿠키 영상이 있나요?
A. 있습니다.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올라프가 등장해 이 영화의 모험담을 특유의 화법으로 재연해주는 쿠키가 나옵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장면이니, 관객이 빠져나가도 끝까지 앉아 계시길 권합니다.
놀이터의 합창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서는데, 앞줄의 꼬마가 하늘색 드레스 자락을 붙잡고 인투 디 언노운을 흥얼거렸습니다. 6년 전 놀이터의 그 합창이 세대를 바꿔 이어지고 있었던 거죠.
각본의 구멍이야 어른들의 셈입니다. 저 아이의 겨울은 이미 완벽할 것이고, 어쩌면 그게 이 시리즈의 진짜 성적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토프의 노래에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다음 겨울왕국이 나오면 저는 또 예매 버튼을 누르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