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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 리뷰 (고립, 생존본능, 좀비아파트)

Stv 2026. 8. 28. 09:30

목차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상상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밖에서 좀비 사태가 터지면 나는 이 집에서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저는 이 상상을 하고 나면 꼭 찬장을 열어 라면 개수를 세는 버릇이 있는데, #살아있다는 정확히 그 상상을 두 시간짜리 영화로 만든 물건입니다. 유아인과 박신혜가 아파트 두 동에서 벌이는 생존기이고, 이 글은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



    #살아있다 리뷰: 원룸에서 시작된 재난

    가족들이 외출한 아침, 게이머이자 BJ인 준우(유아인)는 여느 때처럼 늦잠에서 일어나 방송을 켭니다. 그런데 시청자들의 채팅이 이상합니다. 밖을 보라고. 창밖은 이미 아비규환입니다. 사람을 공격하고, 비명을 지르고, 눈에 핏발이 선 채 달려드는 감염자들. 물리면 옮는다는 뉴스 브리핑이 흐르고 통제 불능이라는 자막이 뜹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초반의 가장 서늘한 장면 하나. 옆집 403호 남자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와 화장실만 쓰겠다고 하는데, 그가 이미 물린 상태였던 겁니다. 눈앞에서 변해가는 이웃을 준우는 필사적으로 문밖으로 밀어냅니다. 그때부터 홀로 버티기가 시작됩니다. 뒤늦게 도착한 어머니의 메시지에 안도하고, 남은 식량을 날짜별로 나누고, SNS에 구조 신호를 올리고, 통신이 끊기자 드론까지 띄워보지만 세상은 응답이 없습니다. 창밖에서는 경찰마저 당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수도가 끊기고, 술로 하루를 버티는 날이 늘어갑니다.

    그리고 생존 20일째, 전기마저 끊긴 밤. 뒤늦게 도착한 가족의 음성 메시지가 그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던 바로 그 순간 — 어디선가 레이저 포인터 불빛이 날아옵니다. 건너편 아파트의 생존자, 유빈(박신혜). 이 영화의 온도가 여기서 바뀝니다.

    홀로 버티기가 둘이 버티기가 되는 순간, 재난물은 생존기에서 연결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레이저 포인터 한 줄기가 이 영화의 진짜 시작입니다.

    결말 포함 줄거리: 해시태그가 응답받기까지

    여기서부터 결말 스포일러입니다. 두 생존자는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줄을 던져 음식을 나누고, 주워 온 무전기로 목소리를 나눕니다. "많이 드세요"라는 평범한 말이 사무치는 안부가 되는 구간이죠. 유빈은 등산 장비와 트랩을 다루는 폼이 예사롭지 않은 생존 고수라, 어리바리한 준우와의 합이 코미디와 액션을 오갑니다. 장비를 그대로 갖춘 소방관 좀비의 위협 같은 장르 유머도 이 구간의 재미고요. 드론으로 시선을 끌고 빈집을 털어 물자를 채우며, 두 사람은 마침내 각자의 동을 건너 엘리베이터에서 합류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아픈 페이지. 위기의 순간 두 사람을 구해준 마스크 쓴 8층 아저씨에게는 차마 포기하지 못한 존재가 방 안에 있었습니다. 좀비가 되어버린 아내. 그는 음식에 약을 섞어 두 사람을 재우고, 아내를 위해 그들을 희생시키려 합니다. 잠긴 방문, 그 안의 존재, 그리고 아저씨 자신의 비극적인 최후까지 — 이 에피소드는 짧지만, 재난 속에서 사람이 무엇까지 놓지 못하는가를 보여주는 이 영화의 가장 무거운 대목입니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두 사람은 옥상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하늘엔 헬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이 꺼져가던 그때, 등 뒤에서 프로펠러 소리가 들립니다. 준우가 세상을 향해 꾸준히 올려둔 그 해시태그, #살아있다가 마침내 응답받는 순간입니다. 구조 신호는 닿고 있었던 겁니다. 아무도 안 보는 것 같던 그 순간에도요. 제목의 샵 기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볼만한가: 좀비보다 무서운 건 고립

    이 영화의 영리함은 좀비를 소재가 아니라 배경으로 쓴 데 있습니다. 진짜 주제는 고립입니다. 부산행이 달리는 열차의 재난이라면 #살아있다는 멈춰버린 원룸의 재난이고, 좀비 사태보다 무서운 건 통신 두절과 혼자라는 감각이라는 걸 이 영화는 압니다. 데이터가 끊기고 배터리가 줄고 구조 신호에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공포. 2020년에 이 영화가 국내외에서 그렇게 흥행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다들 각자의 방에 고립된 채 연결이 곧 생존이라는 걸 몸으로 배우던 해였으니까요. 등산 스틱과 로프의 아날로그 생존자 유빈과 와이파이와 드론의 디지털 생존자 준우가 짝을 이루는 구도는 이 영화가 가장 잘 설계한 부분입니다. 유아인은 찌질함과 절박함 사이를 오가는 원맨쇼 구간을 잘 버텨내고, 박신혜는 등장만으로 영화의 축 처진 어깨를 세웁니다.

    단서도 정직하게 적습니다. 좀비물의 문법 자체는 새로울 게 없습니다. 이웃의 변이, 물자 고갈, 은인인 줄 알았던 제3자의 배신, 마지막 순간의 구조까지 장르의 순서를 착실히 밟는 영화라 좀비물을 많이 본 관객에겐 전개가 훤히 보입니다. 주인공 버프도 확실해서 긴장감의 상한선이 낮고, 중반의 버티기 구간은 다소 늘어지며, 8층 아저씨의 비극은 더 머물렀어야 할 이야기인데 짧게 소비됩니다.

    점수는 6점. 걸작을 기대할 영화는 아니고, 금요일 밤 맥주 하나 놓고 넷플릭스로 보기에 정확히 알맞은 체급입니다. 코믹과 액션과 감정 신이 골고루 들어 있어 시간은 잘 갑니다.


    덧붙이는 질문들

    Q. 부산행, 반도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A. 세계관은 무관하지만 체급과 결이 다릅니다. 부산행이 밀실의 드라마, 반도가 폐허의 물량 오락이라면 #살아있다는 원룸의 심리 생존극입니다. 스케일은 셋 중 가장 작지만 고립의 체감은 가장 현실적이라, 좀비 액션보다 버티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께 맞습니다.


    Q. 8층 아저씨는 왜 두 사람을 속인 건가요? (스포일러)

    A. 좀비가 되어버린 아내를 차마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살아 있는 존재처럼 방에 지키며, 그 곁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존자를 희생시키려 한 것이죠. 악인이라기보다 재난이 만든 비극에 가까운 인물이라,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얼굴이기도 합니다.


    Q. #살아있다, 많이 무섭나요?

    A. 15세 이상 관람가이고, 깜짝 놀래킴보다 쫓기는 긴장과 고립의 갑갑함이 중심이라 공포 내성이 약한 분도 볼 만한 수위입니다. 좀비 묘사가 있긴 하지만 잔혹함을 전시하는 유형은 아니라서, 좀비물 입문용으로도 무난한 편입니다.


    찬장을 닫으며

    영화를 다 보고 저는 예의 그 버릇대로 찬장을 열었습니다. 라면 일곱 개, 참치캔 셋, 생수 두 병. 준우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잠시 흐뭇해하다가, 이 영화가 남기는 게 공포가 아니라 이 귀여운 생존 본능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폰 배터리를 확인했죠. 연결이 곧 생존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실전 팁 하나. 옆집에서 화장실 좀 쓰자고 하면, 일단 손목부터 확인합시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끼리의 농담으로 남겨두기엔, 403호의 그 장면이 꽤 오래 갑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8i0ulxu2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