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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리뷰 (비하인드, 연출, 액션기법)

Stv 2026. 8. 26. 09:16

목차


    고백하자면 저는 영화에서 옥의 티를 찾아내는 재미로 보는 부류입니다. 시계 방향이 바뀌어 있다든가, 컵의 물 높이가 오락가락한다든가. 그런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제작 비하인드를 파고들다가 완패를 인정했습니다. 제가 옥의 티라고 확신했던 장면이 알고 보니 치밀한 의도였거든요.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이 만든 이 추격극의 촬영 뒷이야기들을 정리했습니다. 줄거리 언급이 있으니 스포일러에 예민하신 분은 관람 후에 읽으시길 권하고, 영화 자체에 대한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비하인드 총정리: 옥의 티 사냥 완패기

    영화부터 짧게. 신세계에서 브라더였던 황정민과 이정재가 7년 만에 지독한 적으로 재회한 추격극입니다. 마지막 청부 임무를 끝내고 파나마로 떠나려던 인남(황정민)이 방콕에서 납치된 딸 유민의 존재를 알게 되어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고, 인남이 처리한 남자의 형이자 인간 백정이라 불리는 레이(이정재)가 복수를 위해 그 뒤를 쫓습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줄거리는 단순한데, 이 단순한 이야기를 담은 그릇이 어마어마하게 공들인 수공예품이라는 게 비하인드의 요지입니다.

    제 완패 목록부터 공개합니다. 딸이 사라진 걸 알고 뛰쳐나가는 영주(최희서)의 풀린 신발 끈 — 옥의 티인 줄 알았는데 급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풀어둔 연출이었습니다. 인천 북성포구의 그 노을 — 당연히 합성인 줄 알았는데, 하루 10분뿐인 노을 타이밍을 잡으려고 사흘을 같은 시간에 나가 찍은 진짜 하늘이었습니다. 감독이 웬만하면 CG 없이 직접 찍자는 주의라고 하네요. 두 번의 완패 후 저는 사냥총을 내려놓고 감탄만 하기로 했습니다. 이 영화의 장소들이 얼마나 진짜인지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도쿄의 별장 — 실제 오래된 전통 료칸, 라멘집은 50년 넘은 실제 노포(시크한 사장님도 진짜 사장님, 미술팀이 손댄 건 벽의 액자 하나)
    • 방콕 — 실제 부촌 저택과 실제 국제학교, 감독이 10년 전 취재 때 묵었던 사하킷 호텔을 그대로 재방문 촬영
    • 철거를 앞두고 비워진 실제 철거촌 거리, 원래 텅 빈 차이나타운을 좌판과 인파까지 전부 섭외해 채운 세팅 — 해외 로케에 도둑 촬영이 단 한 컷도 없음
    • 엔딩의 파나마 — 사실은 태국 후아힌에서 촬영
    촬영 내내 비가 쏟아져 아예 일본 신 전체에 비 설정을 넣고 그레이 톤으로 밀었고, 공중전화 박스는 못 찾아서 설치했으며, 인남의 텅 빈 방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떠돌이의 삶이라는 설정입니다. 우연까지 디자인으로 바꾼 현장이었습니다.

     

    촬영 뒷이야기: 세 배우가 영화를 끌고 간 세 가지 방식

    황정민은 몸과 즉흥으로 갔습니다. 위험한 역주행 운전을 대역 없이 직접 했고 — 스턴트가 하면 얼굴을 못 잡으니까요 — 폭염에 달궈진 사다리를 그냥 빨리 찍자며 후다닥 내려왔습니다. 영주의 명품 지갑은 소품팀 것들이 다 너무 새것이라 본인 아내의 실제 지갑을 가져왔는데, 아들이 붙여둔 스티커 부분만 편집했다고 하죠. 그리고 그 유명한 눈물. 딸에게 마술을 보여주는 장면의 울음은 시나리오에도 없었고 본인도 울 생각이 없었는데, 아역 박소이 양의 얼굴을 보다 저도 모르게 울컥한 것을 그대로 썼답니다. 감정을 누르고 다시 찍어봤지만 결국 처음 그 테이크가 영화에 남았습니다.

    이정재는 설계로 갔습니다. 레이의 시그니처들 — 사람을 처리하고 여유롭게 마시는 커피, 직접 찾아 고른 길고 검은 일본산 담배, 총포상에서의 그 서늘한 해결책, 돈뭉치를 비닐째 시크하게 던지는 동작, 택시 대신 뚝뚝을 타고 나타나는 등장까지 상당수가 배우 본인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시나리오에 없던 방콕 도착 직후의 액션 신은 레이의 위험함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판단에 현장에서 만들어져 사흘을 찍었고요.

    그리고 박정민은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취객으로 등장하는 첫 신을 위해 맥주 다섯 병을 연달아 마시고 촬영했고, 유이의 의상을 직접 홍대에서 사 왔으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선배한테 이런 말을 해보겠냐며 필터 없는 애드리브를 쏟아냈고, 역할을 계기로 실제 타투까지 새겼습니다. 조사받는 장면의 수염도 진짜로 길러서 나온 것이고, 촬영장에서 박소이 양이 박정민을 이모라고 불렀다는 대목에서는 저도 웃음이 터졌습니다. 유이와 함께 있을 때 태국어에 일부러 자막을 넣지 않은 것도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인남이 느끼는 답답함을 관객도 똑같이 느끼게 하려는 연출이었다고 하네요.

    기술적으로 기억할 것은 액션입니다. 이 영화의 타격감이 유독 다르게 느껴졌다면, 애니메이션에서 쓰는 스톱모션 기법을 실사에 응용했기 때문입니다. 타격 순간을 느리게 찍고 후반 작업으로 타격감을 얹는 방식인데, 때리는 척과 맞는 리액션을 컷으로 나누는 기존 방식과 달리 맞는 순간의 표정과 근육까지 한 화면에 담깁니다. 감독도 배우도 처음 해보는 시도였고, 좁은 실제 엘리베이터와 복도에 카메라를 우겨넣어가며 찍은 결과물입니다. 총격전은 전부 실제 공포탄으로 촬영했다고 하니, 그 긴장감은 연기만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파이널컷 차이: 15세의 뺄셈과 감독판의 덧셈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 등급을 위해 여러 장면에서 뺄셈을 했습니다. 수위 높은 장면들의 묘사 범위를 줄이고, 상처를 보여주는 정도를 조절하고, 몇몇 컷을 덜어냈죠. 황정민 배우가 인남의 분노를 더 살리기 위해 상처를 더 보여주자는 의견을 냈다가 등급 때문에 접었고, 나중에 파이널컷이 나올 줄 알았으면 찍어둘 걸 후회했다는 대목이 귀엽습니다. 아역 배우를 배려해 수술 준비 장면의 앵글을 조정했다는 이야기처럼, 뺄셈에도 이유가 있었고요.

    그래서 파이널컷(감독판)이 존재합니다. 개봉판에서 덜어냈던 컷들 — 레이의 거울에 비친 모습 같은 — 일부와 함께, 인남과 유민이 노상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 같은 숨결이 추가됐습니다. 그 라면 신을 찍으며 포스터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후일담도 있죠. 관람 팁은 그래서 간단합니다. 이제 볼 거라면 파이널컷으로 보시고, 개봉판으로 이미 봤다면 이 비하인드들을 알고 파이널컷으로 한 번 더 보는 게 이 영화를 가장 맛있게 먹는 순서입니다.

    영화 자체에 대한 짧은 감상도 남깁니다. 서사의 새로움보다 스타일과 밀도로 승부하는 오락물이라 이야기 자체에 놀라움은 없지만, 프레임 뒤의 노동을 알고 나면 액션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입니다. 제 점수는 7점. 옥의 티를 찾으러 들어갔다가 장인의 지문만 잔뜩 발견하고 나온 기분이었습니다.

     

    궁금해할 두 가지

    Q.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촬영지는 실제로 어디인가요?

    A. 도쿄와 방콕에서 대부분을 찍었고, 한국 장면 중 노을 신은 인천 북성포구입니다. 엔딩의 파나마는 사실 태국 후아힌에서 촬영한 것이고요. 특히 방콕은 실제 저택, 국제학교, 오래된 호텔, 철거촌까지 실존 공간을 그대로 살려 찍어서, 여행 좋아하는 분이라면 로케이션을 따라가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Q. 개봉판과 파이널컷, 뭐가 다른가요? 어떤 걸 봐야 하나요?

    A. 파이널컷은 등급 문제로 개봉판에서 덜어냈던 일부 장면의 수위가 복원되고, 라면 신 같은 인물의 숨결이 붙은 감독 의도판입니다. 이야기의 뼈대가 달라지지는 않지만 캐릭터의 밀도가 올라가서, 처음 보신다면 파이널컷을 권합니다. 성인 기준의 수위가 있으니 그 점만 참고하시고요.

     

    사냥을 마치며

    옥의 티 사냥꾼으로 입장해서 빈손으로 나왔지만, 대신 다른 것을 얻었습니다. 풀린 신발 끈 하나, 노을 10분, 벽의 액자 한 점까지 전부 누군가의 결정이었다는 사실. 영화의 디테일이란 결국 보이지 않을 걸 알면서도 해두는 정성이라는 것.

    다음에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저는 아마 액션보다 배경을 볼 것 같습니다. 진짜 라멘집의 김, 진짜 철거촌의 벽, 진짜 노을. 그리고 그 사이를 뛰는 배우들의 진짜 땀. 비하인드를 알고 보는 두 번째 관람은 그래서 언제나 첫 관람보다 부자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ASLLF2CnJk